도서관 맞아? 아이들 뒹굴고 "꺄르르르"…눈치 안 주는 '이 나라'
[편집자주] [편집자주]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복부인을 꿈꾸나 역량 부족이라 다음 생으로 미룹니다. 이번 생은 집을 안주 삼아 '집수다'(집에 대한 수다)로 대신합니다. 짬 나는대로 짠 내 나는 '집사람'(공간과 사람) 얘기를 풀어봅니다.
책이 숲처럼 둘러싼 카페트 바닥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목재로 만든 널찍한 슬라이딩 바닥은 미끄럼틀이다. 신발을 벗은 채 뛰어놀지만 눈치주는 사람은 없다. 내 집 거실처럼 아장아장 걷고 기는 아기들이 눈에 띈다. 유모차를 세워둔 아빠 엄마도 눕거나 앉아 책을 보고 보드게임을 즐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 시민들의 거실로 불리는 공공도서관 '오디'의 풍경이다.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2018년 12월 개관한 오디도서관은 건물 전체를 가로지르는 유선형의 곡선과 나무 패널, 자연광을 받아들이는 넓은 창으로 건축적 미학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건물을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건 도서관을 이용하는 헬싱키 시민들의 원칙과 철학이다. 건물의 높이를 맞은편 국회의사당과 똑같이 맞췄는데, 이는 시민과 국회의원이 동등하다는 뜻에서 의도된 설계다.
오디의 제1 원칙은 '차별 금지'. 시민 모두의 거실을 표방하는 만큼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성소수자를 위한 도서열람 공간까지 구비됐다. 누구나 한가로이 노는 것이 '권장'되며 도서관 안에서는 어떤 종류의 차별도 설 자리가 없다. 소규모 친목이나 대규모 모임에도 쓸 수 있게 업무 시설을 예약할 수 있고 대부분 무료이거나 저렴하다.
음원을 녹음하고 싶은데 스튜디오를 빌리기 어려운 학생 혹은 비주류 뮤지션이라면 도서관 내 녹음 스튜디오를 빌릴 수 있다. 3D프린터와 재봉틀이 넉넉하게 구비돼있어 언제든 원하는 디자인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방과 후 온라인게임을 함께 하거나 소규모 친목 및 동아리 활동도 도모할 수 있다. 이렇게 '거실'에서 원하는 만큼 유유자적하다 공동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오디에서 차별 금지 원칙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 중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다. 자연광이 가장 잘 드는 널찍한 3층의 상당 부분이 아이들에게 할애됐다. 카페트가 깔린 넓은 공간은 영락 없이 내 집 거실 같다. 영유아 서적은 물론이고 각종 보드게임, DVD까지 빌릴 수 있다. 목재 장난감이 구비돼있으니 심심할 틈이 없다.
간혹 아이가 울어도 찡그리는 이가 없다. 층고가 높아 소리가 분산되다보니 아이 울음소리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이러니 유모차를 밀며 도서관을 찾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 유모차 주차 공간도 접근성이 뛰어나고 쾌적하다. 한국의 '노키즈 존'(No Kids Zone)이 무색할 정도로 오디도서관은 '모두가 환영받는' 공간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보는 부모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묻어난다.
핀란드는 한국의 3배 넘는 영토에 인구는 고작 553만명으로, 인구 밀도가 1㎢당 19명에 그친다. 하지만 150만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 헬싱키에서는 공공장소 곳곳에서 유모차를 볼 수 있다. 아침 8시 전후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하는 직장맘이 트램정거장마다 눈에 띈다. 단차가 높지 않다보니 유모차를 끌고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헬싱키 디자인미술관 등 유명 갤러리엔 갓난 아기를 품에 안고 전시회를 보는 '라떼파파'들도 눈에 띈다. 한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육아 천국으로 불려온 나라지만 핀란드 역시 출산율 감소가 심각하다. 2010년만 해도 2명이었던 출산율이 지난해 1.2명으로 뚝 떨어졌다. 살라 살로바라 비즈니스 핀란드 국제 홍보 및 미디어 책임자는 이에 대해 "여성의 선택지가 다양해진 시대적 변화 탓"이라고 밝혔다.
여성의 선택지는 다양해진 반면, 엄마의 선택지는 여전히 좁다는 뜻이다.
헬싱키=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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