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러니하게 디지털은 잊혀질 권리가 잘 지켜진다. 핸드폰을 바꾸면, 컴퓨터를 바꾸면, 무료로 영원히 무한의 복사가 남는다고 하여 필름을 밀어낸 0과 1들은 그 셀 수 없는 모순에 빠져 빠르게 버려진다. 아니면 온 세상이 기억하도록 미주 대륙의 어느 서버에 저장을 해야한다. 사적 저장은 없다. 밀착인화도 하지 않는 요즘, 필름의 물리적 실존은 그저 전문가들의 손에서 거쳐진 데이터이다. (아직도 밀착인화같이 필름이 상대적 우위를 가진 작업들을 한다면 당신은 어마어마한 변태거나 "공산주의를 그리워하는 건 정상이다. 공산주의가 돌아오길 바란다면 멍청이다" 로 축약하고 싶다.)
오랜만에 낭만을 찾아 떠났다. 공교롭게도 후중을 무겁다고 내쳐버린 지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쩌면 낭만을 찾아 떠난게 아니라 낭만 한 스푼을 입에 강제로 쑤셔졌다 하는게 더 정확한것 같다.
폴라로이드랑 필름만 들고 갔다. 소형으로는 한번도 안써본 프로비아 벨비아50 100, 다 들고 갔다. 한장 한장이 전자는 3천원, 후자는 천원, 심히 부담스럽다. 근데 얘네들을 내가 어찌 잊으리. 디지털 사진들은 외장하드 어디 깊숙히 박아두고 보지도 않는다. 필름 스캔본은 사진앱에 넣어두고 폴라로이드 앨범은 항상 들고다닌다.
비용은 항상 중요하다. 비용은 곧 가치이며, 철학이자, 우선순위이다. 돈이 없을때 더 빛난다. 제한적이기에 남은 것들이 더 소중하다. 폴라로이드는 비싸고, 색감이 뒤틀리며, 사진을 확인하는데 15분이나 걸린다. 하지만 크고 불완전한 폴라로이드를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고 들여다 볼 때 그 사진을 더 좋아하게 된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