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 배당주로 불리던 금융그룹들이 자사주 소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배당 확대만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를 설명하기 어려워진 환경에서 금융지주들이 주주환원 전략의 무게중심을 '소각'으로 옮기는 모습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그룹들이 자사주 소각을 강화하는 흐름은 3차 상법 개정안 논의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검토 등 제도 환경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은 지난달 15일 자사주 861만주를 소각했다. 소각 규모는 약 1조2000억원으로 발행주식총수의 2.3%에 이른다.
하나금융그룹도 상반기 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 계획을 내놨다.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2000억원씩 매입한다는 구상이다. 증권가에서는 하나금융의 자사주 매입액이 지난해 7541억원에서 95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방금융그룹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iM금융은 앞서 지난해 8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2027년까지 약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정리할 계획이다. JB금융은 최대주주인 삼양사의 지분 매각에도 불구하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해 왔다. 이달 12일에는 400억원 규모의 보통주 153만1017주를 소각할 예정이다.
이자이익 성장이 둔화한 현재 시점에서 금융그룹이 대규모 환원에 나설 수 있는 배경에는 자본 여력과 사업 구조가 지목된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은 성장 투자 명분이 제한적인 대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있다.
잉여자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기업가치 평가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단순 배당 확대를 넘어 주당 가치를 직접 끌어올리는 자사주 매입·소각이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로 3차 상법 개정안이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취득한 자사주뿐 아니라 경영상 필요에 따라 불가피하게 보유하게 된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소각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는 선택지는 사실상 사라진다. 자사주를 매입해 보유하는 방식이 허용되더라도 소각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주주환원 정책 취지를 설명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금융그룹처럼 잉여자본 규모가 크고 환원 여력이 충분한 업종일수록 자사주 소각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전략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논의 역시 금융그룹의 주주환원 전략을 입체화하는 변수다. 고배당 정책에 대한 세제 부담 완화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배당 확대 여지도 커졌다. 다만 배당은 과세 구조상 개인 투자자의 체감 효과가 제한적인 반면 자사주 소각은 주당 가치 상승으로 직관적으로 반영된다. 금융그룹들이 배당과 소각을 병행하는 구조를 택하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금융그룹의 자사주 소각이 일회성 조치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제도 변화가 자사주 보유보다 소각을 기본값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주주환원 전략 역시 이에 맞춰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은 이제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영역으로 넘어갈 전망"이라며 "배당과 소각을 함께 가져가는 구조가 금융지주 주주환원의 기본 형태로 자리 잡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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