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획적인 삶을 살라고 한다. 오늘의 계획, 내일의 계획 그리고 1년 뒤, 10년 뒤…미래를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것 쉽다. 하지만 이를 이루는 것은 어렵다.
노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계획’의 범주를 벗어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계획에는 없던, 계산을 할 수도 없었던 순간 때문에 상상하지 못했던 가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KIA 타이거즈 투수 황동하와 내야수 정현창의 이야기다.
지난겨울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황동하는 “계획대로 되고 있다”면서 웃었다.
2024시즌 마운드에서 전천후 활약을 하면서 우승 멤버로 활약했고, 103.1이닝을 던지면서 다음 성장 단계로 갈 수 있는 경험도 쌓았다. “축하 받을 일밖에 없었다”면서 꿈같던 지난 시즌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새 시즌을 준비했다.
다시 또 그 순간을 맞고 싶어서, 꿈처럼 얻은 것들은 잃고 싶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몸집도 키웠다.
“몸이 좋아진 것 같다”는 말에 황동하는 황동하답게 웃었다.
자신의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 봐주는 게 뿌듯하다던 황동하는 자신감을 이야기했다.
자신감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강점에 부족한 것을 채우면서 부단한 노력으로 만든 여유와 자신감이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황동하는 기대했던 선발 자리에서 시즌 출발을 하지 못했다.
치열한 선발 경쟁에서 김도현에게 5선발 자리를 내줬던 황동하.
실망은 잠시였다. 잘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황동하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윤영철과 양현종 두 토종 좌완 선발이 초반 부진을 이어가면서 KIA 마운드 고민이 생겼고, 황동하는 선발로 역할을 맡게 됐다.
5월 7일 키움전에서 황동하는 5이닝 1실점의 깔끔한 피칭을 선보였다.
선발로 세 번째 등판에서 5이닝을 책임지면서 감을 잡는 것 같았지만 그는 다음 등판을 위해 길고 긴 인내와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키움전 등판 다음 날이었던 5월 8일 황동하는 인천 원정 숙소 근처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허리뼈 2번 3번 횡돌기 골절 진단을 받은 황동하는 병상에서 허망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많은 선수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부상을 당한다. 돌아보면 아쉽고 후회되는 부상도 있지만 황동하의 부상은 예상도 상상도 할 수 없던 것이었다.
시즌을 잘 준비했던 만큼 사고 순간에도 황동하는 야구만 생각했다.
황동하는 “길을 거의 다 건넌 순간 갑자기 차가 보였다. 사고 이후에 바로 일어나서 공을 던질 수 있는지 동작을 해보면서 체크를 했다”며 “병원 이동할 때부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순간에도 야구를 생각했던 황동하지만 긴 기다림의 시간, 잠시 야구를 놓았다.
황동하는 “밥 먹으러 가서 야구가 틀어져 있는 것 말고는 야구를 안 봤다. 너무 야구가 하고 싶고, 못해서 내려간 게 아니라 부상 때문에 어떻게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구를 보면 더 하고 싶고 그럴까 봐 야구를 더 멀리하게 됐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야구와 멀어졌던 황동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힘으로 다시 마운드로 향하는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황동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많은 힘이 됐다. 인천에서 입원을 하고 못 움직이는 상태였기 때문에 멀리 전주에서 부모님이랑 주변 친척분들이 와주셨다. 전주에 사는 친구들도 오고 저한테 신경을 많이 써줘서 힘이 됐고, 잘 버티고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그동안 친구들이 나를 많이 응원해줬다. 몸이 괜찮아지고 나서는 내가 야구 하는 친구들 응원하러 가기도 했다. 이번에 아쉽게 친구들이 드래프트가 안 됐지만 나도 친구들한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보냈다”고 돌아봤다.
또 “쉬면서 어느 정도 괜찮아졌을 때부터는 ‘한 경기라도 나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실력이 안 돼서 못 가면 어쩔 수 없지만 한 경기라도 던지고 싶었다. 한 경기라도 더 등판할 수 있게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한 경기’가 황동하에게는 간절한 목표가 됐다.
그래서 다시 공을 던지게 된 9월 23일 SSG전은 황동하 야구 인생에서 가장 떨린 경기로 남았다.
황동하는 “데뷔전을 했을 때보다 이번이 더 떨렸던 것 같다. 데뷔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막 했다면 이번에는 어느 정도 경험이 있고, 공백이 있었으니까 그걸 메꾸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잘하려다 보니까 긴장이 더 많이 됐던 것 같다”며 “홈런을 맞으니까 정신이 확 들었다(웃음). 그때 다시 정신 차리고 던지니까 괜찮았던 것 같다”고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복귀전 순간을 떠올렸다.
황동하는 이번 교통사고로 많은 것을 잃었다. 지난 시즌 경험과 올 시즌 노력을 바탕으로 마운드에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큰 부상을 당했지만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부상으로 그의 4개월은 없던 시간이 됐다. 사고를 낸 당사자로부터 진정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황동하는 원망 대신 후회 없는 야구를 위한 교훈을 배웠다.
황동하는 “야구를 못 해서 그만두는 것과 아파서 그만 두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번에 느낀 게 못해서 야구를 그만두는 것보다 아파서 그만뒀을 때가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아프면 진짜 무조건 손해인 거 같다. 쉬어서 좋아졌다, 그런 것 없이 무조건 손해 절대 안 아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특별한 것 없는 투수’라고 자신을 평가했던 황동하는 특별한 투수가 되기 위해 황동하표 템포를 장착해 1군에서 기회를 잡았다.
올 시즌을 위해서는 힘을 더하기 위해 몸을 키웠다.
그리고 선배의 노하우를 통해서도 황동하는 발전을 위한 방향을 잡았다.
황동하는 “올해부터는 직구 삼진이 늘었다. 이거를 더 늘리면서 구위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선발 준비했을 때 현종 선배님이랑 같이 이동했었는데, 변화구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선배가 직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직구를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준비를 잘해서 시작해서 자신감도 있었는데 병원에 있던 시간이 길기도 했고, 내 기량을 못 보여드린 게 아쉽다. 올해가 끝이 아니다. 내년에 더 준비 잘하겠다. 팬분들이 많이 야구장 찾아와 주시면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미 시작된 황동하의 빛나는 2026시즌을 예고했다.

내야수 정현창도 올 시즌을 생각하면 어리둥절하다.
휴식날 울린 전화벨, 트레이드를 알리는 전화를 받은 뒤 정현창의 첫 반응은 “아빠 나 트레이드 됐대”였다.
정현창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선수다.
이것저것 낯설고 적응할 것 투성이었던 프로 첫 시즌을 보내던 정현창은 ‘프로 유니폼’이 익숙해지기 전에 새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말수도 적고 KIA에 아는 선수도 없었던 만큼 걱정이 컸던 이적이었다.
트레이드라는 깜짝 소식에 이어 정현창은 대표팀 발탁 소식도 접했다.
정현창은 지난 9월 중국 푼젠성에서 열린 제3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선발됐다.
트레이드와 대표팀 선발, 1주일 만에 벌어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트레이드와 대표팀 소식을 갑자기 들으니 실감이 안났다”며 수줍게 소감을 이야기하던 정현창은 대표팀 경험을 한 뒤 조금 더 씩씩해져서 돌아왔다.
정현창은 2025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6경기에 나와 19타수 7안타(타율 0.68) 5타점 5득점을 기록하고 왔다. 2개의 볼넷도 골라낸 정현창의 출루율은 0.429. 도루도 하나 기록했다.
“긴장은 안 했던 것 같다. 잘 즐기고 왔다. 부담도 책임감도 있었는데 잘 되니까 재미있었던 것 같다”며 대표팀에 다녀온 소감을 말한 정현창은 “좋은 경험을 하니까 여유까지는 아니지만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다. 수비는 실책 없이 잘했고, 타격도 하나씩 쳐서 괜찮았는데 도루를 하나밖에 못해서 아쉽다”고 언급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변화의 시즌을 보낸 정현창은 경험을 쌓으면서 한층 더 성장했다.
정현창은 “정신이 없었는데 적응하니까 괜찮은 것 같다”며 “다시 1군에 등록될 수 있을지 몰랐는데 등록된다고 해서 떨렸다. 그 소식을 듣고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웃음). 잘 해야겠단. 패기 있는 모습, 자신 있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정현창은 2일 SSG와의 경기에서 신인답지 않은, 물 흐르듯 한 수비로 7-2 승리의 주역이 됐다.
“오늘 경기는 95점”이라고 말한 정현창은 “선배들에게 칭찬을 들었다”면서 웃었다.
야구의 매력은 ‘예측불허’다.
일방적인 강자도 약자도 없이, 한 방에 승부가 뒤집어지기도 하고 8이닝을 이기다가도 지기도 한다. 그만큼 낮은 확률이지만 어떤 상황도 바꿀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즌 전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을 경험한 황동하와 정현창. 이들은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맞은 두 사람의 가을, 팬들의 마음은 벌써 2026시즌으로 가 있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