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설계 전문가가 소개하는 건축조명의 세계_ 8편 : 영화 속 조명
조명이 그저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장치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주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높일 수도 있는 것이 조명이다. 조명설계전문가 차인호 교수를 통해 매월 조명설계의 세계와 실제를 만나본다.
“교수님, 고민할수록 색이 참 어렵네요.”
최근 설계가 한창 진행 중인 골프장 클럽하우스 리뉴얼 현장. 수입 벽지 샘플북과 유명 페인트 업체의 스와치를 보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건축주의 한탄이다. 필자는 건축조명 전문가이기 이전에 공간 기획의 전문설계자이기도 하다. 조명을 중심으로 공간을 기획하면 더 완성도 높은 공간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에 ‘조명 인테리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 설계를 해오고 있다. 공간 인상(이미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조명을 고민한다는 것은, 벽지나 타일 같은 마감재나 가구는 물론이고 공간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층 더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체계적인 조명 계획은 질적으로 수준 높은 주거 공간을 연출하는 데 반드시 점검해야 할 항목이다.

아울러 조명 인테리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감재나 가구의 구성을 조명계획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명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조명이 아닌 것 또한 더 넓고 깊게 살펴야 한다. 직업병인지 영화를 볼 때도 빛의 공간이 주는 인상으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 이번 칼럼은 그 일부의 내용이다.
한국의 백색 인테리어
조명은 공간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간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만 설계된 공간은 설계를 위한 다른 요인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결국 조명의 퀄리티도 낮아지고 어우러지는 다른 공간 구성도 엉성해져 공간의 완성도는 낮아지게 된다.
한국의 주거 공간 인테리어는 ‘화이트 & 우드’, ‘올 화이트’, ‘블랙 & 우드’로 대표되는, 거의 백색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사례가 많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양산화하기 쉬운 인테리어 방식이기에 비전문가도 손쉽고 깔끔하게 정갈한 공간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건축주나 설계·시공자도 선호하는 인테리어 양식이다.
공간은 시대상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실내 공간도 그런 면을 그리고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한국의 현재 주거 공간은 온통 백색 일색이다. 옳고 그름, 좋다 나쁘다는 판단은 내려놓자. 백색 공간 외에도 다양한 실내공간 연출이 가능하기에 이제는 사용자 측면에서 더 다채로운 선택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건축주의 눈과 사고가 깨어날 수 있도록, 기존에 생각지 않았던 다양한 시선에서 공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은 없을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독자들도 평소 영화를 보며 무심코 지나쳤을 장면들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고 더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화 속 장면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선정한 영화에 따라 다양한 시대 공간이 있지만, 20세기에서 현재까지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공간의 시대적 고증이 살아있는 작품으로만 선정했다.

국내 건축주와 조명 인테리어를 진행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이미 백색 마감재에만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영화 장면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공간적, 문화적 체험이 거의 없는 분들을 새로운 조명 방식의 공간으로 안내하기 위함이다. 조명인테리어의 특성으로 다양한 전문 배광 기반의 설계를 하다 보니, 이런 과정이 부족하면 기존 ‘1실1등’ 방식 조명이나 백색 마감재로만 설계를 진행하면 단조롭고 획일적인 공간으로 완성될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영화 장면에서 보는 것처럼 백색으로 인테리어 하지 않더라도, 공간에 다양한 색을 사용하더라도 절대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는다. 색채 전문가와 함께라면 아무 문제 없으니 용기 내 다양한 컬러 마감재에 도전해 봐도 좋을 것이다. 단, 조명인테리어 전문가와 함께 충분히 상담해 진행하기를 바란다. 백색 인테리어보다는 조명과 마감재 특성 등 고민할 분석 요인이 몇 배로 늘어나면서 설계와 시공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실내외 장면을 비교해 보자. 외부 환경의 컬러는 내부환경의 색감과 확산광 중심의 조명에도 서로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외부와 내부는 함께 조명과 소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색채를 공간에 사용하는 유럽 국가들은 다양한 색채를 내외부 할 것 없이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의 색채는 문화적 산물이다. 그래서 디자인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선에는 다양하고 과감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극도로 섬세한 컬러 감각으로 완성되는 공간들이다. 또한 국내 가전업체들이 출시하는 다양한 비스포크, 맞춤형 컬러나 디자인을 가진 제품으로 선택지가 많이 늘었지만 정작 공간에서는 흰색만 고집하는 경우가 아직 많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 스 스로 다양한 컬러를 선택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주 본다.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컬러를 활용하려면 사용자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다면 더욱 세련된 공간을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벽지에 도전
필자에게 따로 고가의 해외 벽지를 선정하고 설계를 요청하는 건축주도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수입 벽지로 설계하는 경우 국내 환경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탈리아 본사에 문양의 크기를 우리나라 휴먼스케일에 맞추어 조정을 요청하게 된다. 현재 설계 중인 복층구조 펜트하우스의 하층에서 상층을 올려다보는 보이드는 높이가 5m를 넘긴다. 이런 공간과 벽지의 디테일도 고려하여 최종 시공까지 주의해야 한다.

필자의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가 설계하는 국내 주거 공간의 조명인테리어 현장은 늘 마감재 선정에 많은 시간을 들여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컴퓨터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CG로 검토해서는 섬세한 빛 표현을 알 수 없다. 때문에, 벽지와 페인트 샘플을 실제 조명 조건과 자연광 환경에서 수차례 테스트하며 선정하고 있다. 건축주가 요청하는 유럽 제품의 경우 유럽 기준에서, 현지 주거 공간에 맞춰 생산되기에 국내 공간환경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조명 배광도 마찬가지여서 국내 현장에 무턱대고 적용하다가는 큰 실수를 하기 쉽다.
한국은 백색 공간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지만 해외사례에서는 그 반대로 적용되는 경우도 많다.

“벽과 천장 모두 화이트로 하고요, 소파나 가구 같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튀는 컬러의 포인트를 주고 싶어요”
“흰색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꼭 한 번 백색 벽과 우드 톤의 바닥으로 된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아파트 설계에 들어갈 때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색이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잘 모르기 때문에 건축주는 유행하는 색이나 흰색으로만 공간을 구성하고자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지만 설계자가 색을 전문적으로 권해줄 수 있다면 선택의 폭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공간의 표정을 용도와 목적별로 연출할 수 있다.
흰색은 색이 없는 게 아니라, 아주 강한 색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검은색처럼 명도, 휘도 차이를 강하게 발생시키는 색과 함께 쓸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흰색으로만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국내 인테리어 환경에서는 가장 편한 방식이다. 하지만 공간을 구성하는 조명 인테리어는 다양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조명까지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면 고려할 사항이 몇 배로 늘어나 설계 난도는 높아진다. 그래도 다양한 설계가 가능해지면서 공간의 표정을 풍성하게 연출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례로 앞선 두 영화 장면을 보자.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사항과는 반대다. 포인트가 되는 컬러로 벽과 천장을 마감하고 흰색 문, 가구, 인테리어 소품으로 대비를 주어 경쾌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미국의 쿠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스카페이스>에서도 같은 연출 방식의 조명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스탠드 조명 쉐이드의 역할
필자는 그간 다른 저서나 영상을 통해 스탠드 조명만으로도 공간을 충 분하고 쾌적하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공간의 색감은 마감재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명의 빛과 마감재가 함께 어우러져 공간의 인상(이미지)을 연출한다. 가장 쉬운 사례가 바로 앞 영화 두 장면이다. 다양한 스탠드로 조성된 빛의 공간에 쉐이드(갓)의 컬러가 공간의 마감재와 만나 오묘하고 섬세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공간의 부드러운 빛 색감을 연출하기 위해 쉐이드의 컬러와 소재감은 중요하다. 현재 한국처럼 백색 오면체 공간을 선호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조명 쉐이드의 소재와 컬러 선택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러면 백색 공간이 만들어내는 차갑고 높은 긴장을 다소 누그러뜨려 더 쾌적하고 편안한 공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이라서’ ‘선진국이라서’라는 식의 막연한 동경과 무분별한 유형에 맞춰 해외 디자인 사례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사는 우리나라와 해외는 공간과 문화적 상황의 거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다름으로 생기는 문제를 경계하고 있다. 필자도 귀국 초기에 해외에서 전문 건축조명을 공부하고 일했다는 얄팍한 우월감에 해외 조명 사례를 무리하게 국내에 도입하려 했었다. 그런 과거의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적 공간 상황과 문화적 인식에 맞는 조명 인테리어 설계에 대한 방향성을 오래 고민했고, 선진 조명설계 기술을 신중하게 접목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와 다른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더 나은 방식은 없는지 분석하고 일부는 수용하면서 대안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의 가장 처음에 소개한 골프장 클럽하우스 인테리어를 의뢰한 건축주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맞습니다. 공간의 색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20년 넘게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저도 매순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많은 경험치와 노하우로 자신 있게 색상을 고르고 실험실에서도 실제 현장에 설치될 저희 조명 시스템을 테스트하며 진행하니 걱정 마시고 함께 만들어 가시지요.”
이렇게 섬세하게 연출되는 공간의 색과 빛의 표정은 완성 후에 건축주를 미소 짓게 만든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다. 색은 빛이 만드는 공간의 중요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