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따고 주민들과 어울리고…시골살이 나름 매력있네
농사법 설명 듣고 정미소서 공정 견학
임진강 댑싸리공원 절경에 탄성 절로
예비 귀농·귀촌인 예행연습 제공 역할
여유 혹은 제2의 인생을 찾아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나는 요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선 농촌에서 살아보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짧게는 1박2일부터 일주일, 한달, 최장 6개월까지 농촌에서 살며 귀농·귀촌에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비용도 대부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니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겐 절호의 기회다. 경기 연천군이 진행하는 ‘연천에서 한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기자가 사흘간 참여해봤다.
● 첫째 날=이른 아침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에 있는 농촌체험마을 ‘나룻배마을’로 향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민간인출입통제선이 나올 만큼 북한 땅과 가까운 곳이다. 나룻배마을엔 9월30일부터 한달살이 참가자 5명이 머물고 있어 이들과 합류했다.
첫 일정으로 나룻배마을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자방키농장’에 가 사과 따기 체험을 했다. 사과농장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겨온다. 붉게 물들어 수확을 앞둔 것부터 아직은 초록빛이 돌아 첫서리가 내릴 때쯤 딸 것까지 알알이 영근 사과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사과를 딸 땐 한 손으로 잡고 검지를 뻗어 사과 꼭지 뒷부분을 받친 후 뒤로 들어 올리면 된다. 그러면 ‘똑’ 하고 가지가 부러진다. 아삭아삭하면서 다디단 사과는 농장에서 따서 바로 먹으니 그 맛이 배가 되는 듯하다.
조계원 자방키농장 대표는 10년 전 연천군이 진행한 ‘기후변화 대비 신소득 전략사업’에 참여하며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천엔 사과농장이 많지 않았지만 조 대표는 일본으로까지 가서 농법을 배웠고, 현재는 안정적으로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조 대표는 “밤 기온이 낮아야 사과 당도가 올라가 달아지기 때문에 연천이 사과 재배 최적지”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저녁엔 참가자들과 함께하는 돼지고기 파티가 열렸다. 경기 양주에서 온 정하정씨(54)는 “연천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할까 생각 중인데 우선 어떤 곳인지 파악하기 위해 왔다”며 “숙박과 식사까지 무료로 지원되니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전유리 나룻배마을 실장은 “지난해 9월 연천 한달 살기를 한 후 이곳의 자연에 반해 4월부터 정착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자 연천에서 꿈꾸는 미래를 얘기하며 밤이 깊어갔다.
● 둘째 날=“황 기자님, 고구마 캐러 나오세요.”
박영관 나룻배마을 대표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겨우 세수만 하고 밖으로 나선다. 목적지는 숙소 바로 뒤편에 있는 고구마밭. 초등학생 시절 체험학습에 가서 해봤던 고구마 캐기를 근 20년 만에 다시 하게 됐다. 박 대표는 고구마 농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고구마 줄기를 15㎝ 정도 간격으로 비스듬하게 심는다. 간격을 너무 띄우거나 수직으로 심으면 고구마가 크게 자라 오히려 상품성이 떨어진단다. 고구마를 캘 땐 무턱대고 호미질했다간 표면에 상처를 내기 십상이다. 장갑 낀 손으로 고구마 주변 흙을 훑어내며 조심스레 꺼내야 한다. 은퇴 후 텃밭 농사를 시작하며 농법과 판로 개척에 대해 배우러 온 최성진씨(62)는 “고구마 농법에 대한 설명을 농민에게 직접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한달 살기 프로그램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고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후엔 연천의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 ‘임진강 댑싸리공원’으로 향했다. 댐이 생긴 후 생태계 교란 식물이 번식하던 수몰지 주변에 마을주민들이 나서 댑싸리·백일홍·코스모스 등을 심어 약 4만㎡(1만2000평) 규모의 공원으로 탄생시켰다. 빨갛게 물든 댑싸리는 온몸으로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저마다 댑싸리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기 바쁘다. 눈 감았다 뜨면 끝나버릴 이 가을을 사진으로라도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듯하다.
● 셋째 날=‘백학쌀닷컴’ 정미소로 견학을 떠났다. 백학쌀닷컴은 연천에서 난 쌀을 도정해 ‘백학참쌀’이라는 브랜드로 판매한다. 햅쌀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요즘, 정미소 안에선 성인 키 3배 정도는 되는 커다란 도정 기계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탈곡한 벼를 부으면 기계는 이물질을 거르고 쌀겨를 벗겨 백미를 쏟아낸다. 문제가 있는 쌀알은 색채선별공정을 통해 자동으로 분리한다. 백학쌀닷컴 관계자는 “백학쌀닷컴은 쌀 재배부터 정미·배송까지 모두 책임지고 있어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연천에서의 마지막은 리조트 ‘알멕스랜드’에 있는 카페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보냈다. 평소라면 답답한 사무실에 있었을 시간에 통창 너머로 노랗게 익은 벼를 보니 ‘연천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귀농이나 귀촌을 하게 된다면 이때 추억을 가지고 연천을 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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