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발 小자 나눠 사실 분”… 배달 음식까지 소분한다
장기화된 고물가에
한 끼 식사비도 쪼개

지난 18일 저녁, 서울 공덕역 인근에 20~30대 여성 3명이 모였다. 잠시 뒤 도착한 배달 기사에게서 한 여성이 갓 조리된 대용량 떡볶이를 포장째 건네받자 나머지 두 명은 집에서 가져온 반찬통과 국자를 꺼냈다. 그러고는 떡볶이를 나눠 담기 시작했다.
세 여성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이날 처음 만났다. 오직 배달 음식을 나누기 위해, 지역 기반 커뮤니티에서 ‘번개 모임’을 만들어 나왔다. 주문자가 먼저 음식값과 배달비를 합한 총 2만2500원을 결제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각자 몫인 7500원씩 주문자 계좌로 송금했다. 이들은 음식을 나눈 후 “맛있게 드세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를 남긴 채 흩어졌다. 요즘 지역 맘카페나 당근마켓 등을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배달 음식 소분(小分) 모임’의 모습이다.
그동안 소분의 대상은 창고형 할인점에서 산 대용량 식재료나 제철 과일, 농산물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라탕이나 족발·보쌈, 치킨 같은 배달 음식으로 그 영역이 넓어졌다. 이들 배달 메뉴는 혼자 주문하기에는 단품 가격이 비싸고 기본 양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너 명이 함께 주문한 뒤 미리 준비해 온 통에 음식을 나눠 담아 가져가는 식이다. 20대 자취생부터 30~40대 직장인, 신혼부부 등 참여층도 다양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뿌링클 치킨 (드실 분) 2명 구해요”, “마라탕 3인 모집”, “족발 소분하실 분” 같은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제안자는 글에 댓글을 단 희망자와 함께 온라인 대화방을 만들어 구체적인 소분 장소와 시간을 협의한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2인 가구는 전체의 65.1%를 차지했다. 전체 평균 가구원 수는 2.19명에 그쳤다. 혼자 또는 둘이 사는 형태가 한국 사회의 주된 거주 방식이 되면서, 한 번에 많은 양이 배달되는 음식은 양과 가격 모두 부담스러워졌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일 또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1인 가구가 밀집한 오피스텔과 원룸촌에서는 아예 같은 건물 주민끼리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만들어 상시적인 ‘배달 셰어(나눔)’를 하기도 한다. “○○호인데 지금 족발 시켜서 반씩 나눌 분 계신가요?” 같은 메시지를 올리고 뜻이 맞는 이웃 주민과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고물가도 중요한 요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을 포함한 개인서비스 물가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2% 상승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6%)을 웃도는 수준으로, 외식비를 비롯한 생활 서비스 비용이 가계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한 번 주문할 때마다 배달비까지 더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외식 비용 압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음식값과 배달비를 나누어 내면, 비용 절감 효과는 즉시 나타난다.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이웃과 함께 주문하면 7000~8000원대로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직장인 황신애(33)씨는 “처음에는 반찬통을 챙겨야 하고 음식을 나눠 담을 장소를 찾는 게 번거로웠지만 당장 지출이 줄어들다 보니 충분히 할 만하더라”고 했다.
고물가 시대의 소비 형태 변화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거지맵’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출시 약 한 달 만에 누적 방문자 수 130만명을 넘긴 이 서비스는 1만원 이하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 정보를 지도에 표시한다. 5000원짜리 돈가스 식당이나 4000원짜리 칼국수 집을 알려 주는 식이다. 점심시간이면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관공서나 대기업, 대학 구내식당을 찾아 나서는 직장인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반찬 나눔 모임에서 가져온 밑반찬으로 도시락을 싸 다니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단순한 ‘궁상 소비’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경기 둔화와 고물가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제한된 소득 안에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가 소비를 위축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며 “점심시간에는 초가성비 식당을 찾아 발품을 팔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배달 음식을 나눠 먹는 등 하루 식사 비용 전체를 최소화하려는 ‘나노형 소비’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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