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2·3세, 후유증 상처 안고 싸우다

신다은 기자 2024. 9. 2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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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더 자주 더 심하게 가렵고 심장이 자꾸 아팠다. 가려움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긁고 또 긁어 진물이 줄줄 흐르는 몸을 찢어발겨버리고 싶었다. 숨이 차서 걷기도,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 지은이도 표독스런 표정으로 분풀이를 하듯 제 몸을 박박 긁어댔다. 그때마다 지은이 몸에 여기저기 앉아 있던 딱지들이 떨어져 나가고 피와 고름이 눈물처럼 흘렀다."

한겨레21이 단독으로 확인한 결과, 피해자 연대 회원들은 모두 베트남전 참전군인 아버지를 두었고 아버지와 유사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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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2024년 7월 한국에서도 베트남전 참전군인 후손으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와 3세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고엽제 2세 3세 피해자 연대’ 모임을 꾸렸다. 2024년 9월10일 회원들이 인하대병원에서 단체 진료를 마치고 병원 로비에 모여 있다. 류우종 기자

“몸이 더 자주 더 심하게 가렵고 심장이 자꾸 아팠다. 가려움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긁고 또 긁어 진물이 줄줄 흐르는 몸을 찢어발겨버리고 싶었다. 숨이 차서 걷기도,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 지은이도 표독스런 표정으로 분풀이를 하듯 제 몸을 박박 긁어댔다. 그때마다 지은이 몸에 여기저기 앉아 있던 딱지들이 떨어져 나가고 피와 고름이 눈물처럼 흘렀다.”

정의연 작가의 소설 ‘그 여자’의 한 대목이다. 소설 주인공 ‘김중호’는 베트남전 참전 뒤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퇴역군인, ‘김지은’은 그의 손녀딸이다. 소설 속 두 사람은 거울처럼 서로를 보며 몸을 긁는다. 고엽제로 인한 피부질환이 3세까지 유전된 모습이다.

소설은 소설이 아니었다. 2024년 7월 결성된 단체 ‘고엽제 2세 3세 피해자 연대’는 소설 속 일을 실제로 겪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임이다. 한겨레21이 단독으로 확인한 결과, 피해자 연대 회원들은 모두 베트남전 참전군인 아버지를 두었고 아버지와 유사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3세 아이가 선천성 기형으로 태어난 가정도 여럿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고엽제의 유전 위험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우연히 아버지의 병원 기록을 뒤지다가 혹은 자신의 병명을 검색하다가 고엽제라는 연결고리를 스스로 발견했다.

1세대 참전군인이 고엽제의 유전 위험을 자녀에게 직접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족을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과 전쟁 트라우마 때문이다. 김중호도 사위에게 “고엽제 후유증은 유전된다던데 왜 내가 이 결혼을 유지해야 하느냐, 왜 내 자식들에게 ‘그런 문제 있는 유전자’를 물려줘야 하느냐”는 맹비난을 듣는다. 이 말을 듣던 김중호는 과거 모기 퇴치에 좋다며 미군이 뿌리는 ‘쌀뜨물’(고엽제)을 비처럼 맞던 자신을 떠올리고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고 어리석었고 바보 같았는지” 되뇐다.

그러나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맹독성 제초제에 노출시키고, 병든 피해자를 방치한 건 국가다. 피해자 연대 회원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을 묻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참전군인 후손에게 고엽제 위험을 알리고 체계적인 2·3세 역학조사와 건강 대책을 마련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알려진 피해는 빙산의 일각이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은 고엽제를 일상적으로 취급하며 수색 작전을 펼쳤다. 베트남만이 아니다. 1967~1968년 미군은 한반도 휴전선 주변에도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 인근 군인 중 일부가 2016년 행정소송으로 고엽제 피해를 인정받았고, 2023년 경기 파주 대성마을에선 민간인 집단 피해도 확인됐다. 경북 칠곡에서도 고엽제 수천t을 불법 매립했다는 전직 주한미군의 뒤늦은 양심고백이 2011년 나왔다.

한겨레21은 한 세대로 끝나지 않는 전쟁 피해를 직면하고 평화의 길을 도모하기 위해 피해자 연대가 처한 실태를 고발한다. 2024년 9월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60년이 되는 달이다. 한겨레21과 만난 한 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처럼 피해를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이건 엄청난 사건이 될 거예요. 저는 아이와 함께 역학조사에 직접 참여할 의향도 있어요. 제가 용기 내면 다른 사람도 따라올 것 같아서요. 국가는 신뢰 회복을 위해 뭘 할 건가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제1531호 표지이야기-3대로 이어진 고엽제 후유증

손자의 척추기형, 연결고리는 할아버지의 고엽제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108.html

“고엽제 후유증 인정 받으려 1만5천장 병원기록 봤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109.html

“어린아이에게 고엽제 후유증 유전…국가가 역학조사하고 인정 기준 세워야”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111.html

60년 전 베트남전 고엽제, 3세대 어린이까지 유전된다고? [뉴스크림 ep.9]

https://www.youtube.com/watch?v=fxWIzmYLz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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