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향이 남긴 딜레마, 표절 논란 넘어 다시 읽는 tvN '나인'

2013년 전파를 탄 tvN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지금 다시 꺼내 들면 양극단의 평가가 함께 따라붙는다.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소설과 핵심 설정이 겹친다는 표절 의혹이 한 축이고, 치밀한 극본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타임슬립 장르의 한 획을 그었다는 호평이 다른 한 축이다.
이진욱과 조윤희가 호흡을 맞춘 이 드라마는 논란을 덮어두고 마냥 치켜세울 수도, 그렇다고 의혹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통째로 부정할 수도 없는 복합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이야기의 출발선은 명쾌하면서도 강렬하다. 주인공 박선우는 히말라야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한 향 아홉 개를 손에 넣는다. 향 하나를 피우면 정확히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30뿐이다.
횟수와 체류 시간, 돌아가는 시점까지 엄격히 묶여 있다 보니 시간여행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라 쓸수록 줄어드는 유한한 자원이 된다. 박선우가 향에 불을 붙일 때마다 시청자 역시 그 선택의 이유와 함께 남은 기회,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폭풍을 덩달아 셈하게 된다.
극을 끌고 가는 진짜 힘은 과거로 간다는 설정 자체보다, 과거를 건드린 직후 현재가 실시간으로 뒤바뀌는 방식에서 나온다. 가족을 살리고 비극을 바로잡으려는 선한 의도는 정작 현재의 인간관계와 기억, 사랑의 전제마저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방금 전까지 연인이었던 사람이 전혀 딴판인 관계로 바뀌는가 하면, 굳게 믿었던 사건의 진상도 새판으로 짜인다. 과거를 고치면 더 나은 오늘이 오리라는 기대 대신, 하나를 구하려다 다른 하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런 구조 덕분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은 흔한 회귀물과는 결이 다른 긴장감을 빚어낸다. 주인공은 미래를 꿰뚫고 판을 짜는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아니다. 그가 아는 과거란 기껏해야 한 번 겪어본 역사일 뿐이고, 그마저도 개입하는 순간 쓸모가 없어진다.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확신할수록 세상은 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향은 기적을 부르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인과의 사슬을 온전히 틀어쥘 수 없음을 일깨우는 잔인한 장치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논하면서 표절 논란을 사소한 잡음쯤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또한 주인공이 특정 매개체를 통해 수십 년 전으로 건너가 제한된 시간 동안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설정을 취한다.
소설 속 알약이 드라마에서 향으로 바뀌었고 이동 시점이나 체류 시간도 조금씩 다르지만, 소모성 매개체와 시간 제한이라는 핵심 얼개가 닮았다는 지적은 독창성에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당시 제작진은 소설 판권을 정식으로 사들이려 접촉했으나 출판사 사정 등으로 계약이 무산됐고, 기획 과정에서 소설의 아이디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해명했다.
원작자인 기욤 뮈소가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서지 않아 사태가 더 커지지는 않았으나, 법적 다툼이 없었다고 해서 창작 윤리에 대한 물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판권을 타진하고 모티브를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두 작품의 유사성을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있는지 더 날카롭게 되묻게 한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남의 설정 하나를 빌려와 우려먹는 데 그쳤다고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은 제한된 시간 이동을 인과율의 연쇄 붕괴로 밀어붙이며 가족사와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를 하나의 틀 안에서 격돌시킨다.
특히 과거가 바뀔 때마다 박선우와 주민영의 사이가 요동치는 과정은, 사랑을 불변의 감정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조건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관계로 돌아보게 만든다.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과거의 개입 앞에서는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이진욱은 복잡한 시간여행의 규칙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것을 넘어, 선택을 거듭할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박선우의 지친 기색과 집착을 극의 한복판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주민영 역의 조윤희 또한 바뀐 시간의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내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새로 규정될 때마다 멜로의 애틋함과 미스터리의 서스펜스가 맞물려 돌아간다. 두뇌 싸움처럼 설정을 따라가는 재미와 인물의 상실감을 함께 겪어내는 감정이 따로 놀지 않는다는 점이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결말을 두고 분분한 해석 속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은, 모든 사건을 매끈하게 봉합하는 정답 대신 시간 개입의 대가를 끝내 남겨두는 태도다.
드라마는 과거를 부지런히 고치면 애초의 비극을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식의 안도감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바꾼 과거는 또 다른 변수와 불확실성을 낳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눈앞의 현재가 확고한 현실인지 임시로 봉합된 결과일 뿐인지 묻게 만든다.
결국 그 긴 여운은 반전을 노린 눈속임이 아니라, 극 내내 거듭 확인시켜 준 불안정한 인과율의 자연스러운 귀결에 가깝다.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은 흠결 없는 걸작이라는 상찬에도, 표절 시비만으로 모든 성취를 지워버리는 단죄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아이디어의 출처를 둘러싼 한계는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마땅하지만, 그 발상을 아홉 개의 향과 20년의 시차, 30분의 시간제한으로 엮어 매회 뒤바뀌는 현재의 충격으로 키워낸 극본과 연출의 힘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이 불편한 논란과 탁월한 완성도를 나란히 놓고 볼 때, 비로소 이 작품이 왜 아직도 드라마 마니아들의 tvN 추천작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지 그 이유가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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