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당구 팀 리그의 역사가 다시 쓰인 밤이었다. 2026년 1월 21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파이널 6차전은 단순한 우승 결정전이 아니었다. 하나카드가 팀 리그 사상 최초로 2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순간이었고, 그 중심에는 단연 김가영이 있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팀 하나카드’였지만,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우승 서사의 중심축은 결국 김가영으로 수렴된다.

이번 파이널은 여러 면에서 극적이었다. 하나카드는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입했다. 가장 유리한 위치도 아니었고, 상대는 정규리그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 SK렌터카였다. 객관적인 전력, 시즌 성적, 흐름만 놓고 보면 SK렌터카의 우세를 점치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팀 스포츠의 묘미는 늘 예상 밖에서 터진다. 하나카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크라운해태를, 플레이오프에서 웰컴저축은행을 차례로 넘기며 점점 단단해졌고, 그 과정에서 김가영의 존재감은 갈수록 또렷해졌다.
김가영은 이번 파이널에서 단순히 ‘여자 에이스’가 아니었다. 파이널 전 경기 통틀어 9세트에 출전해 6승 3패, 숫자만 보면 아주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겼느냐다. 시리즈 초반 1·2차전에서 김가영은 여자 복식과 단식에서 연달아 승리를 챙기며 하나카드가 주도권을 쥐게 만들었다. 팀 리그에서 초반 흐름은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오더 싸움, 심리전, 벤치의 선택까지 전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김가영은 그 흐름을 가장 먼저 하나카드 쪽으로 끌어왔다.

사실 김가영이라는 이름에는 이미 ‘설명’이 필요 없는 무게가 있다. 여자 프로당구, 정확히 말하면 LPBA의 역사는 김가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투어에서 쌓아 올린 우승 트로피, 상금 랭킹 1위, 압도적인 승률은 이미 수없이 반복해서 언급됐다. 그런데도 김가영이 팀 리그에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개인전과 팀전이 요구하는 능력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팀 리그에서 김가영은 ‘이겨야 하는 선수’인 동시에 ‘팀을 안정시키는 선수’다.
이번 파이널에서도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하나카드는 5차전에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우승을 눈앞에 두고 SK렌터카의 반격을 허용하며 흐름이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점수를 내는 선수 이전에, 분위기를 다시 잡아줄 축이다. 김가영은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했다. 공격 성공 여부를 떠나, 테이블 위에서 보여주는 침착함, 상대의 흐름을 끊는 선택, 복식 파트너와의 호흡에서 나오는 안정감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김가영이 팀 리그에서 갖는 가치는 단순히 ‘여자 경기에서 한 세트를 책임진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상대 팀 입장에서 김가영이 오더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압박이다. 어느 세트에 김가영이 나올지, 단식인지 복식인지에 따라 전체 전략이 바뀐다. 이는 곧 하나카드가 오더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번 파이널에서 하나카드는 신정주, 응우옌, 초클루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SK렌터카의 계산을 계속 흔들었는데, 그 바탕에는 김가영이라는 확실한 축이 있었다.
MVP 선정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파이널 MVP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팀을 승리로 이끈 선수, 그리고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바꾼 선수에게 주어진다. 김가영은 파이널 초반부터 끝까지 하나카드의 중심을 잡았고, 팀 리그 최초 2회 우승이라는 상징적인 기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이 우승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하나카드의 팀 컬러와도 맞닿아 있다. 하나카드는 화려한 개인 스타만으로 굴러가는 팀이 아니다. 응우옌의 포스트시즌 폭발력, 초클루의 결정력, 신정주의 깜짝 카드까지 모두 살아나야 비로소 완성되는 팀이다. 그 다양한 조각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김가영이 해냈다. 개인 투어에서 보여주던 ‘절대 강자’의 모습 위에, 팀 스포츠의 리더십까지 더해진 장면이었다.
돌아보면 김가영의 커리어는 늘 ‘증명’의 연속이었다. 여자 선수로서, 개인전 강자로서, 그리고 이제는 팀 리그의 상징으로서까지. 이번 우승으로 김가영은 또 하나의 질문에 답을 내놓았다. “팀 리그에서도 김가영이 통하는가?”라는 질문에, 결과로 답했다. 그것도 PBA 역사상 최초의 2회 우승 팀이라는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하나카드의 이번 우승은 기록으로 남겠지만, 김가영의 존재감은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몇 년 뒤 이 파이널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세트 스코어보다도 ‘김가영이 중심을 잡던 장면’을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그만큼 이번 우승은 한 선수의 이름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 팀 리그의 역사에 ‘V2’라는 숫자를 새긴 하나카드,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당구 여제 김가영. 이 조합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PBA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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