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을 보라. 수박이 쌓여있는 마트 매대에 ‘수박 고르기는 셀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 밑에는 사실 직원도 잘 모르고 그동안 아는 척해서 미안하다는 내용도 있다.

너무 더운 여름, 시원하고 달달한 과일 생각이 절로 나는데. 간혹 뽑기에 실패해서 마트서 골라온 과일이 전혀 달지 않은, 불상사도 자주 있다.

이건 직접 까보기 전까지 맛을 알 수 없는 과일의 특성 때문인데, 요새는 과일을 잘라보지 않아도 AI 기술을 활용해 맛을 100% 보장한다는 대형마트 광고들이 쏟아진다.

아무리 똑똑한 AI라도 이게 진짜일까? 이메일로 “AI로 과일의 맛을 선별하는 게 정말 가능한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AI 과일 선별 작업은 기본적으로 ‘비파괴검사’다. 과일을 손상하지 않고 당도를 측정한다는 건데, 언뜻보면 가능한 얘긴가 싶다.

근데 그게 가능하다. 바로 근적외선 검사를 이용하면 된다. 근적외선은 적외선 가운데 가시광선에 가까운 영역으로, 물질에 의해 흡수되는 빛의 양이 낮다.

요 검사는 과일에 이런 근적외선을 쏴 표면에 반사되거나, 내부에 투과되는결과로 당도를 측정한다.

어려우니 쉽게 설명해보면, 일단 과일 속에 있는 당분은 근적외선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근적외선을 비췄을 때 흡수되거나 반사되는 양이 많으면 당도가 높은 거다. 이걸 근적외선 분광법이라고 한다.

이 기술은 의외로 오래됐는데, 1965년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의 칼 노리스라는 사람이 근적외선으로 곡물의 수분을 측정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1980년대말에 복숭아 당도 측정 센서가 개발되면서 과일에도 근적외선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지금처럼 상용화된 것.

요 기술을 쓰지 않고 그냥 과일의 당도를 검사할 때는 샘플 과일을 하나 골라 쪼개거나 잘라 과즙을 추출해 측정해야 한다.

이때 굴절식 당도계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즙을 한 두 방울 흘려 넣으면 당도계가 과즙이 빛을 얼마나 굴절시키는지 측정해 당도로 환산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과즙이 필요하기 때문에 과일을 손상시켜야 하는 단점이 있다.

또 농장에서 생산된 모든 과일을 쪼개볼 수 없으니 표본이 될 과일 몇 개만 골라서 검사하기 때문에 전체 과일에 대한 정확한 측정도 어려웠다.근적외선 검사를 통해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된거다.

AI의 진가는 과일이 근적외선 검사를 거친 뒤 발휘된다. AI는 영상 자료를 기반으로 당도 측정이 완료된 과일들을 2차로 분류하게 된다. 근적외선 측정만으로는 과일의 모양, 색, 밀도까지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

이 때문에 미리 품질 좋은 과일들의 데이터를 학습해 둔 AI가 과일 선별 작업을 하게 되는 거다.

[롯데마트 관계자]
AI 선별은 과일의 내형뿐만 아니라 외형의 모습까지 판단해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체크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수박 같은 경우에는 AI 선별 시 8개의 각도에서 촬영해 부피를 계산하고 또 여기에 중량을 더해서 밀도 값을 산출합니다.

밀도 값이 너무 낮은 경우에는 속이 비어 있거나 덜 익은 수박이고, 밀도 값이 높은 경우에는 너무 과도하게 익었거나 육질이 너무 물렁물렁한 상태를 뜻합니다.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 대형마트 말고도 과일 농가들이랑 백화점도 근적외선 검사를 한다.

그런데 백화점은 검사 기준이 대형마트보다 까다롭다. 백화점은 보통 무게도 300g 이상에, 당도도 마트로 가는 과일보다 더 높은 과일들을 들인다.

납품받을 때부터 대형마트보다 단가를 높게 제시하니, 농가들도 백화점 계약 물량을 따로 빼둔다. 거기에 온갖 프리미엄이 추가로 붙으니 백화점 과일이 유독 비싼 것.

최근 들어 대형마트들은 모두 과일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중이다. 여름 시즌이라는 점도 한몫하고, 무엇보다 오프라인 유통에서 신선식품이 갖는 가치가 크기 때문.

[롯데마트 관계자]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특성상 상품의 상태를 직접 보고 구매하시는 경향이 많은데 특히 신선식품이 그런 경향이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분야입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살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강점이기 때문에 그런 강점을 가장 많이 투영하고 있는 신선식품에 대해 좀 집중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프라인 대형마트들이 온라인 시장에 대응할 방안이 과일 같은 신선식품이라는 것.

실제로 올 상반기 온라인 유통업체는 매출이 15.8% 증가한 반면,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매출은 2020년 코로나 시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도 대형마트 3사 모두 과일 매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형마트들은 과일 시장을 확실히 잡기 위해 AI 선별 기술을 도입하고, 과일에 당도를 표기하고, 맛이 없으면 환불해주기도 한다.

이제 과일 고를 때 참고할 만한 기술들도 생겼으니 왱구님들도 맛있는 과일 사드시면서 이번 여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보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