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가 속았다! 천하 쥔 왕이 코 큰 이방인 40명 거둔 1가지 이유

어두컴컴한 무덤 속, 천오백 년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랜턴 불빛에 드러난 벽화는 그야말로 기괴함 그 자체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쌍꺼풀 없는 담백한 얼굴의 고구려인이 아니었다. 부리부리한 눈매, 매부리처럼 우뚝 솟은 큰 코, 심지어 텁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서역의 사내들이 무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하를 호령하며 무적의 철갑기병을 이끌던 고구려의 한복판에, 도대체 왜 머나먼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온 이방인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단순한 포로나 노예가 아니었다. 멸망한 이웃 나라에서 수만 명의 난민이 쏟아져 들어올 때, 고구려의 왕은 빗장을 걸어 잠그는 대신 오히려 그들을 거침없이 품어 안았다. 출신과 핏줄을 묻지 않고 철저하게 능력을 빨아들여 제국의 심장부에 꽂아 넣은 1500년 전의 '다문화 외인구단' 전략. 우물 안 개구리처럼 끼리끼리 뭉치다 결국 도태되고 마는 현대의 수많은 조직들에게, 고구려의 낯설고도 소름 돋는 이 개방성은 살아남기 위해 오늘 당장 우리가 버려야 할 헛된 고집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경고하고 있다.

철갑기병의 나라? 아니, 1500년 전의 '글로벌 멜팅팟' 고구려

흔히 고구려라고 하면 말갈기와 철갑을 두른 무시무시한 기병대나 굳건한 성벽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최근 고분 벽화에서 발견된 수많은 증거들은 고구려가 아시아 그 어느 나라보다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국가였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천 1호분 벽화인 '백희기악도'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기록에 '고비(코가 높고 크다는 뜻)'라고 묘사된 40명의 인물 중 아홉 명이 서역계(중앙아시아 및 인도 계통)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레를 끌거나 원숭이 쇼를 하고, 무거운 공 여덟 개를 공중으로 던져 올리는 고난도의 서커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난민 80리 행렬 속에서 진주를 캐내다

그렇다면 머나먼 서쪽 땅의 사람들이 어떻게 고구려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5세기 중엽, 중국 동북부를 차지하고 있던 '북연'이라는 나라가 멸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수많은 북연의 백성들이 고구려로 망명하게 되는데,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그 피난 행렬이 무려 80리(약 31km)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난민들 속에 한족과 선비족뿐만 아니라, 일찍이 서역에서 건너와 중국 동북부에 자리 잡았던 '갈족' 등 다양한 유목 계통 종족들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고구려는 이 거대한 이방인 무리를 내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가의 노동력과 새로운 문화적 자양분으로 삼았습니다.

인도의 악기와 사마르칸트의 춤이 국내성에서 울려 퍼지다

이방인들이 가져온 문화는 고구려의 예술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황해도 안악 3호분의 '대행렬도'를 보면 수십 명의 악대가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이들이 연주하는 타악기 중에는 인도에서 유래한 '다마루'라는 악기가 있습니다. 이 악기는 양쪽이 둥글고 허리가 잘록한 형태로, 고구려에서는 '요고'라고 불렸습니다. 최근 하남 이성산성에서 밤나무를 깎아 만든 요고의 실물이 발굴되면서, 벽화 속 서역의 악기가 고구려인들의 실제 삶 속에서 깊숙이 쓰였음이 완벽하게 증명되었습니다.

또한, 고구려 무용수들이 발을 꼬고 제자리에서 회오리바람처럼 빠르게 도는 춤사위 역시 인도의 전통 무용이나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의 '호선무(胡旋舞)'와 그 형태가 소름 돋도록 일치합니다. 고구려는 외국의 문물을 그저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역의 악기인 요고와 고구려 고유의 현악기인 거문고를 함께 앙상블로 연주하게 하여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교향악을 창조해 낸 것입니다.

실크로드가 막히자 '초원의 고속도로'를 개척한 사신들

중국 대륙이 통일 왕조(수나라, 당나라) 시대로 접어들며 고구려와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높아지자, 고구려가 서역으로 가는 길목인 실크로드는 사실상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결코 고립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몽골 초원을 장악한 돌궐 등 유목민족과 비밀리에 군사 동맹을 맺고, 중국 북방을 우회하는 거대한 '초원의 길'을 적극적으로 개척했습니다.

그 결실은 머나먼 타국 땅의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 위치한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에는 고구려 고유의 깃털 모자인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사신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몽골 오르혼강 인근에 세워진 돌궐의 비문에도 고구려 사신(백클리)이 다녀갔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끝없이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생존의 활로를 뚫어낸 진정한 '글로벌 제국'이었음을 말해주는 움직일 수 없는 팩트입니다.

[에디터의 노트]

"다르다고 밀어내는 자는 멸망하고, 낯선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자만이 700년 제국의 주인이 된다."

글/기획 : 역사 만화 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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