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럴링크보다 먼저…BMI 빠른 현실화 위해 스위스에서 뭉친 '어벤저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보다도 먼저 임상시험을 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네온사인은 일론 머스크에게 보내는 윙크 같은 겁니다.” 이달 3일(현지 시각) 스위스 로잔연방공대에서 만난 그레고아르 쿠르틴 교수가 사무실 한쪽에 보이는 독특한 네온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깜빡이는 네온사인에는 영어로 ‘일론’이라고 쓰여 있었다.
쿠르틴 교수는 뉴럴링크보다 먼저, 더 자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MI)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한 신경과학자다. 2023년 5월에는 하반신 마비 환자의 뇌와 척수에 전극을 이식해 다시 걸을 수 있게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같은해 11월에는 30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던 환자의 척수에 전극을 삽입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하고 척수-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쿠르틴 교수는 “신경과학자와 공학자, 신경 외과의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진정한 결합을 이룬 게 성과의 핵심이었다”고 했다. BMI 기술이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어찌보면 머스크의 뉴럴링크일 수 있겠지만 기초과학부터 다져온 역량으로 임상시험을 먼저 시작하고 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쿠르틴 교수가 언급한 ‘한 지붕 아래’는 뉴로X 연구소를 뜻한다. 뉴로X 연구소는 2022년 스위스 로잔연방공대에 문을 연 연구소의 이름이다. 생명과학부, 공과대, 컴퓨터 및 커뮤니케이션 과학부 3개의 단과대학이 일부 합쳐진 구조다. 메인 캠퍼스는 제네바 캠퍼스 바이오텍에 있고, 일부는 로잔연방공대 로잔 캠퍼스에 흩어져 있다. 소속 교수는 총 14명으로, 신경과학자, 컴퓨터과학자, 기계공학자, 신경외과 의사 등 전문 분야가 다양하다. 그야말로 BMI를 위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마치 '어벤저스'처럼 힙을 합쳐 새로운 기술혁신을 이뤄내고 있었다.
● 다방면 과학자들 힘 합쳤다
3개 단과대학의 과학자들이 힘을 합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뇌-기계 인터페이스'나 '척수-기계 인터페이스'를 연구하는 데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필요한 탓이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한 장치를 뜻한다. 전기 신호 형태로 전달되는 뇌신경 신호를 해석하고 이를 컴퓨터로 전송, 컴퓨터가 해석해 특정 행위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척수-컴퓨터 인터페이스도 이와 비슷하다. 걸을 때 필요한 신경 신호를 뇌에서 척수로, 척수가 다시 다리로 전달한다. 척수에 심은 장치가 이 신경 신호를 대신 다리로 전달하면 척수 손상으로 걷지 못했던 환자가 다시 걸을 수 있다. 이때 우리 몸의 신경신호 연구는 신경과학자가, 뇌나 척수에 심을 칩은 기계공학자가, 신경 신호를 컴퓨터가 해석하도록 하는 알고리즘 개발은 컴퓨터공학자가 연구한다. 칩을 이식하는 수술은 신경외과 의사가 담당한다.
뉴로X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스테파니 라쿠르 로잔연방공대 교수는 “뉴로X 연구소는 꽤 최근에 생긴 독특한 컨소시엄”이라고 설명했다. 10여 년 전부터 신경보철센터를 만들어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활용한 신경 재활 연구를 해온 로잔연방공대는 2년 전 뉴로X 연구소를 새로 열었다. 라쿠르 교수는 “신경보철센터에서 연구해 보니 전문가들이 서로의 전문 지식을 수용할 수 있는 더 장기적인 구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 "인재 풀 확대하고 실제 환자 적용 앞당길 것"
라쿠르 교수가 언급한 장기적인 구조는 인재 양성이 한 축이다. 뉴로X 연구소를 열면서 동시에 석사 프로그램도 운영하기 시작했고 올해 초 첫 석사 졸업생을 배출했다. 기초과학을 연구할 젊은 과학자도 영입했다. 2023년 6월 뉴로X 연구소에 합류한 마틴 쉬림프 교수가 대표적이다. 쉬림프 교수는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옮긴 컴퓨터 모델 ‘디지털 트윈’을 개발하는 컴퓨터 과학자다.
지금까지 전 세계 연구자들이 측정한 뇌 신경신호 데이터를 모아 AI 모델에 학습시키고 우리 뇌와 닮은 모델을 만드는 연구를 한다. 로잔에서 만난 쉬림프 교수는 “지금 하는 연구의 첫 번째 목적은 기초과학”이라며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세상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은 신경보철이나 치료에 활용할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해 하는 연구란 뜻이다.
현지에서 만난 모든 연구자의 공통 목표는 임상시험과 실제 환자 적용이다. 쉬림프 교수도 “가장 기대하고 있는 목표는 개발한 AI 모델을 뉴로X 연구소에서 임상에 적용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젊은 과학자 마사 쇼아란 로잔연방공대 교수도 “개발하고 있는 초소형 칩으로 몇 년 안에 임상시험을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뉴로X 연구소가 얼마나 앞서갈 것이라 보냐는 질문에 라쿠르 교수는 “얼마나 앞서갈 것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없지만 뉴로X 연구소의 밀접한 다학제 연구는 큰 차이이자 장점”이라며 “다양한 학문 간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교환하고 필요한 게 뭔지, 기회가 뭔지 공유하는 게 뉴로X 연구소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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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신수빈 기자 soob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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