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이 선택한 IP 리스크와 그 전략적 딜레마를 짚어봅니다.

‘포켓몬 닮은 게임’ 논란을 안고 있는 ‘팰월드(Palworld)’에 크래프톤이 모바일 퍼블리셔로 올라탔다. 콘솔·PC에서 이미 글로벌 흥행을 입증한 지식재산권(IP)이지만 닌텐도·포켓몬컴퍼니와 특허 침해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법적 불확실성도 크다.
‘어비스 오브 던전’으로 한 차례 논란 IP의 무게를 경험한 크래프톤이 또다시 논란 한복판의 IP에 베팅한 셈이다. ‘IP 수호자’를 자처해 온 회사가 왜 이런 선택을 반복하게 된 걸까.
특허 소송 한가운데 선 ‘팰월드’
팰월드는 일본 개발사 포켓페어(Pocketpair)가 만든 서바이벌 액션 게임이다. 몬스터를 포획·육성하고 전투·제작·건설에 활용하는 구조로 올해 초 글로벌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콘솔 게임기 엑스박스(Xbox)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출시 직후 단기간에 1000만장 이상이 판매됐고 1년 내 3000만명의 이용자를 모으며 ‘2024년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흥행과 동시에 논란도 커졌다. 일부 몬스터 디자인과 설정이 포켓몬 시리즈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일본과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포켓몬 표절 게임’이라는 비판이 확산됐다. 결국 닌텐도와 포켓몬컴퍼니는 2024년 9월 도쿄지방재판소에 포켓페어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단순히 ‘닮았다/안 닮았다’가 아니다. 닌텐도가 문제 삼은 것은 몬스터 포획, 탑승·이동, 전투에 이르는 일련의 시스템에 관한 특허다. 캐릭터 외형이나 그래픽 같은 저작권 영역이 아니라, 게임 메커니즘 자체를 특허로 보호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닌텐도는 2021년 출원된 특허를 2024년 팰월드 출시 이후 분할 출원 형태로 세분화해, 팰월드 구조를 정밀하게 겨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송 청구액은 닌텐도·포켓몬컴퍼니 합산 1000만엔(약 9400만원) 수준으로 크지 않다. 업계에서는 손해배상보다는 팰월드 서비스·판매 정지를 목표로 한 전략적 소송으로 본다. 패소 시 콘솔·PC는 물론, 이후 출시될 모바일 버전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다만 올해 10월 일본 특허청이 닌텐도가 추가로 신청한 특허 일부를 '독창성 부족'을 이유로 기각하면서 소송은 장기전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1심 판결까지 2~3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고, 그 사이 팰월드는 계속 서비스를 이어가며 매출과 팬덤을 축적하고 있다.

크래프톤이 논란 IP에 다시 올라탄 이유
이런 상황에서 크래프톤은 작년 10월 포켓페어와 ‘팰월드 모바일’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크래프톤이 팰월드 IP 자체를 인수한 것은 아니고, 포켓페어가 가진 권리 범위 안에서 모바일 버전을 개발·서비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받은 구조다. 법적 분쟁의 직접 당사자는 여전히 닌텐도와 포켓페어지만, 크래프톤은 서브라이선스에 가까운 위치에 서 있다.
당시 크래프톤 측은 "크래프톤은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잠재력이 있는 IP를 적극적으로 발굴 중"이라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적절한 절차와 방식을 통해 해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크래프톤이 감수할 리스크는 적지 않다. 닌텐도 소송의 핵심이 ‘서비스 중단’에 있는 만큼 포켓페어가 패소해 팰월드 서비스 금지·판매 중단 판결이 내려질 경우 모바일 버전도 운영이 어렵다. 판결이 나기까지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기간 내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불확실성을 안고 개발·마케팅·인프라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크래프톤이 팰월드를 택한 데는 나름의 계산이 있다. 먼저 콘솔·PC에서 흥행을 증명한 IP라는 점이다. 수천만 장 판매와 높은 동시접속자 수는 팰월드가 단순 ‘이슈 게임’이 아니라, 글로벌 팬덤과 매출 잠재력을 동시에 입증했다는 신호다. 모바일로 확장할 경우 초기 인지도와 이용자 유입에서 강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크래프톤의 구조적 한계도 작용했다. 크래프톤은 '펍지(PUBG):배틀그라운드'의 뒤를 이을 글로벌 신작 IP를 발굴하고 있다. 내부 파이프라인만으로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콘솔·PC에서 검증된 외부 IP를 들여와 모바일로 재해석하고, 이를 새로운 매출 축으로 삼는 전략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에서 이미 경험한 방식이다. 팰월드는 그 공식을 다시 한 번 적용해 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 가운데 하나였다.
시장 환경도 영향을 미친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중대형 신작 하나를 5년 이상 개발해도 성공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다. 반면 이미 검증된 IP를 활용하면 리스크는 줄고 속도는 빨라진다. 최근 크래프톤이 선보인 신작들이 줄줄이 부진한 성적을 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팰월드를 택한 배경에는 ‘불확실한 오리지널 신작’보다 ‘위험하지만 숫자가 보이는 외부 IP’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내부 사정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IP 수호자’의 역설…크래프톤이 풀어야 할 숙제
문제는 크래프톤이 단순 퍼블리셔가 아니라 그간 업계에서 ‘IP 수호자’ 이미지를 쌓아 온 회사라는 점이다. PUBG: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이후 크래프톤은 카피캣 게임과 플랫폼을 상대로 적극적인 소송과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때 크래프톤은 “우리 IP는 끝까지 지킨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저작권·부정경쟁 분쟁에서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런 회사가 다크앤다커 모바일에서 출발한 ‘어비스 오브 던전’을 선보였다가 논란 속에 조기 종료하기로 결정했고 닌텐도 소송이 진행 중인 팰월드 모바일의 퍼블리셔를 맡았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IP 침해에는 엄격하면서 논란이 붙은 남의 IP에는 과감히 올라탄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에 크래프톤 앞에는 두 가지 과제가 놓였다. 자체 IP 파이프라인 구축, 그리고 'IP 수호자' 이미지와 현재 전략 사이의 정합성 확보다.
이철우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 겸 문화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최근에는 게임 콘텐츠 자체뿐 아니라 제작사 이력, 개발 과정, 분쟁 이력까지 함께 보는 이른바 ‘윤리적 소비’ 관점이 강해지고 있다"며 "영업비밀 침해·성과 도용 논란이 제기된 게임, 혹은 타 IP와의 법적 분쟁에 휩싸인 게임에 대해서는 팬덤 자체가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이담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