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한국시간) 보스턴 셀틱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원정 선수로 경기장을 찾은 옛 식구를 위한 헌정 영상을 준비했다.
이 선수가 보스턴에서 보낸 시즌은 겨우 네 시즌. 최고 성적은 6.0득점 5.3리바운드에 불과했지만 팬들은 큰 박수를, 옛 동료들은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맞았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 정도 선수였어?”
기록만 본다면 팀에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비중의 선수가 분명하다. 기록만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의 기능적인 측면과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보스턴이 환대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됐다.

그 이름은 바로 루크 코넷. 2025년 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샌안토니오 소속에 합류한 216cm의 빅맨이다.
2022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보스턴과 함께하며 코넷은 2번의 NBA 파이널을 경험했고, 2024년에는 첫 우승을 맛보았다. 처음 보스턴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테스트’ 수준이었지만, ‘수습 기간’과도 같던 2021-2022시즌의 후반기를 잘 극복하자 보스턴은 2년 454만 달러 계약을 안겼다. 루키 계약 이후 처음으로 받아본 정규 계약이었다. 보스턴은 2024년 7월에도 코넷과 계약을 한 번 더 체결했다.
계약 기간 중 코넷은 특유의 수비법으로 화제가 됐다.
슛을 던지는 선수와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수직으로 점프해 훼방을 놓는 이른바 ‘코넷 컨테스트’가 바로 그 수비인데, 통계상으로 ‘코넷 컨테스트’가 슈터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많은 선수들이 이를 따라 하곤 했다. 현재 팀의 동료 빅터 웸반야마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진짜 보스턴이 그를 챙긴 이유는 그 수비 때문이 아니었다. 자리 하나를 잡기 위한 처절한 노력과 결과물 덕분이었다.
쿠퍼 플래그 같은 특급 재능을 가진 선수들은 경기 첫날부터 주전이 된다. 그리고 몇 번의 실수에 대해 구단도 기꺼이 감수한다. 코넷의 팀 동료인 스테폰 캐슬이나 딜런 하퍼도 마찬가지다. 미치 존슨 감독은 “19살, 20살의 신인들이기 때문에”라는 말로 기다림의 이유를 설명한다. 12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전 패배는 젊은 백코트의 성급한 공격에 있었다.
존슨 감독은 캐슬을 승부처에서 빼지 않았고, 기자회견에서는 그들을 변호했다.
“공을 많이 쥐고 플레이할 때, 경기 흐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읽고 그 균형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 공격적으로 나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시간과 스코어 상황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동료들에게 제때, 정확한 패스를 넣어주는 것까지…”
그렇지만 코넷에게는 그런 관대함이 없었다. 시작부터 그는 기회를 찾아야 했다.
코넷은 NBA 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과 같은 밴더빌트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 장점은 블록슛과 3점슛이었다. 216cm의 그는 대학 커리어를 마쳤을 때 NCAA 역대 7피트 선수 중 3점슛을 제일 많이 넣은 선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롤모델도 브룩 로페즈(LA 클리퍼스)였다.
그러나 대학 4년을 다 채운 백인 빅맨은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먼저 지명된 대학 4학년은 가드 포지션의 데릭 화이트로 29순위였다. 그다음 조시 하트가 30순위로 선발됐다.
그 뒤로도 4학년들이 몇몇 더 지명됐지만 대부분 윙 자원이었다. 2라운드에서 지명된 빅맨들은 대부분 비미국인들이었다. 조나 볼든(호주, 36순위), 아이재아 하텐스타인(독일, 43순위), 마티아스 레소르(50순위, 프랑스), 사샤 베첸코프(불가리아, 57순위), 알파 카바(60순위, 기니).
그리고 이 중 현재 NBA 선수로 뛰는 선수는 하텐스타인(오클라호마시티 썬더)밖에 없다. 알파 카바는 돌고 돌아 몇 년 전 KBL에 왔지만 그마저도 생존에 실패했다.
코넷은 아예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뉴욕 닉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어 시카고 불스가 코넷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먼저 코뼈 골절이 발목을 붙잡았다. 수술 후 회복이 100%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면서 경기 중 호흡 루틴에 이상이 생겼고 경기력도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몰입도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수비 시스템이다. 공격적인 수비, 그러니까 2대2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헷지를 나와 핸들러 동선을 제한하는 유형의 수비는 코넷에게 맞지 않았다. 결국 장점인 슈팅과 수비를 모두 보이지 못한 코넷은 로테이션에서 멀어졌다.
코넷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때를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고백했다.
보스턴은 코넷에게 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았다. 보스턴 코칭스태프는 코넷의 정확한 쓰임새를 알아봐줬다. 단순한 스트레치 빅이 아니라 스크리너로 활용하며 내외곽을 연결시키는 역할로 활용한 것이다. 수비에서는 무리한 외곽보다는 드롭 수비를 펼치면서 안쪽에서 높이를 활용해 돌파하는 선수들을 견제하도록 했다.
시키는 것만 한 건 아니었다. 코넷 본인도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보스턴 지역 언론과 디 어슬레틱 등은 코넷을 ‘작은 일의 달인’이라 표현했다. 박스아웃, 스크린, 몸싸움 등이 그것이다.
2024-2025시즌, 그는 18.9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팀 내 스크린 어시스트 1위(2.3개), 어시스트 득점 1위(5.9점)를 기록했다. 분위기가 안 좋을 때는 먼저 나서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농담을 던지며 팀의 공기를 바꿨다.

코넷은 계속된 실패로부터 깨달았다고 말했다. 리그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아봐 주길 바라며 뛰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그건 친절한 팀 동료이자 허슬러가 되는 것이었고, 보스턴은 그런 코넷을 위한 최적화된 설계도면을 제공했다.
공식 기록을 살펴봐도 코넷의 변화가 나타난다.
코넷은 첫 4시즌 동안 444개의 3점슛을 던져 144개를 넣어 32.4%를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5시즌간 코넷이 시도한 3점슛은 21개에 불과하다. 3점슛의 시대에 오히려 3점을 안 던지는 것이 의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동료들의 이음새 역할을 해주고 덩커 스팟에서 좋은 찬스를 잡아 덩크를 꽂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보스턴에 오기 전까지 그가 꽂은 덩크는 56개였지만, 보스턴 시절부터 이번 시즌까지 4년간 그가 성공시킨 덩크는 무려 264개로 급증했다.
샌안토니오에서도 그의 역할은 변함이 없다.
미치 존슨 감독은 빅터 웸반야마와 코넷을 동시에 기용하는 울트라 투 빅 라인업도 쓰고 있다. 코넷이 버텨 줌으로써 웸반야마가 코트를 더 폭넓게 쓸 수 있다. 수비에서도 사이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웸반야마가 없을 때는 디애런 팍스, 캐슬, 하퍼 등의 역동적인 플레이의 보조 장치 역할에 충실했다. 덕분에 샌안토니오는 웸반야마가 결장했던 11월 16일부터 12월 10일까지 8승 3패로 버틸 수 있었다. 1월 2일과 3일, 백투백 경기도 승리했다. 하이라이트는 4일 올랜도 매직전이었다. 위닝 블록을 성공시키면서 빈스 카터 세리머니를 따라 했다. 이 장면은 TV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수만 회 재생됐고, 심지어 그 세리머니가 새겨진 티셔츠까지 발매되었다. 선수들조차 이 티셔츠를 구했을 정도다.

이쯤 되면 샌안토니오도 투자 금액(연봉 1,100만 달러)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보스턴도 코넷을 잡고 싶어 했지만 샐러리캡 이슈가 걸림돌이었다)
코넷은 샌안토니오에 오면서 등번호를 7번으로 바꾸었다. 스퍼스의 레전드, 팀 던컨(21번)의 1/3 정도라도 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던컨의 숫자를 대신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라커룸에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맡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리빌딩에 가속을 붙인 샌안토니오에서 코넷이 보일 행보에 주목해보자.
글 - 손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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