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고지의 주인이 9일 동안 24번 바뀌었습니다. 그 9일이 한국군 9사단을 '상승백마'로 만들었어요.
1952년 백마고지 전투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 사실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디지털철원문화대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952년 10월 6~15일 — 9일간 12차례 공방·24차례 점령 교체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9일 동안, 철원 북방 395고지(통칭 백마고지)에서 12차례의 정면 공방전이 벌어졌습니다.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 바뀌었다고 기록될 만큼 처절했습니다. 한국전쟁 후반기 가장 치열한 단일 진지전입니다.

한국군 9사단 vs 중공군 38군 — 정예끼리의 전투
백마고지를 지킨 건 국군 제9사단, 공격해온 건 중공군 38군이었습니다. 38군은 중공군 '만세군'으로 불릴 만큼 정예 부대였고, 9사단도 한국군 최정예 사단 중 하나였습니다. 양쪽이 모두 자존심을 걸고 정면 충돌했습니다.

포탄만 27만 5,000발 — 적 5만 5,000 + 아군 22만
9일간 양측이 백마고지에 쏟아부은 포탄은 적 5만 5,000발 + 아군 22만 발, 합 27만 5,000발이었습니다. 좁은 고지 하나에 그만큼의 화력이 집중된 사례는 한국전쟁 통틀어 손에 꼽힙니다. 산이 흰색으로 변할 만큼 포격이 이어졌습니다.

"백마"라는 이름의 유래 — 포격으로 흰 말 모양 생겨
'백마(白馬)고지'라는 이름은 격렬한 포격으로 산 능선의 나무가 모두 사라지고, 높은 곳에서 보면 산 모양이 흰 말처럼 보였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집니다. 전투의 격렬함이 이름에 그대로 새겨진 셈입니다.

중공군 1만 3,000명 격멸 — '상승백마' 칭호 획득
9사단은 백마고지에서 중공군 약 1만 3,000명을 격멸하는 전과를 거뒀고, 이 전투를 계기로 '상승백마(常勝白馬)' 칭호를 받았습니다. 한국군의 단독 작전 능력과 지휘 역량이 국제적으로 처음 입증된 전투로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