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자동차의 신형 SUV '그랑 콜레오스'가 한국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차의 플랫폼 형제인 지리자동차의 '싱위에 L(Xingyue L)'이 중국에서도 SUV 부문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두 시장에서 동일 플랫폼 차량이 쌍끌이 흥행을 기록하는 이례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CPCA(중국승용차협회) 집계에 따르면 싱위에 L은 지난 4월 24,083대 판매를 기록하며 SUV 부문 1위에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 36.4% 성장이다. 이는 테슬라 모델 Y 등 고가 전기차를 제치고 '내연기관 기반 최고 판매 SUV' 타이틀을 차지한 결과이기도 하다.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도 6위, 내연기관 차량으로만 한정하면 닛산 실피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같은 플랫폼을 사용한 르노 그랑 콜레오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르노코리아는 4월 내수 판매 5,252대 가운데 4,375대를 그랑 콜레오스가 담당하며 전년 대비 195%라는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하이브리드 모델만 3,858대가 팔려 내수 판매의 75%를 차지했다.

두 차량의 공통점은 볼보와 지리자동차가 공동 개발한 'CMA(Compact Modular Architecture)'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고급 수입차 못지않은 정숙성과 주행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동급 경쟁 모델 대비 합리적인 가격이 더해져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랑 콜레오스의 성공 요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저 전장 4,780mm, 휠베이스 2,820mm의 넉넉한 실내 공간이 눈에 띈다. 동급 최장 수준의 차체 크기로 2열 공간과 트렁크 용량이 경쟁 차종보다 여유롭다.

파워트레인도 강점이다. 1.5리터 E-Tech 터보 하이브리드는 245마력의 강력한 출력과 복합 15.7km/L의 효율적인 연비를 동시에 제공한다. 31개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가 기본 탑재되고 KNCAP 1등급을 받아 안전성도 입증했다.

가격경쟁력은 그랑 콜레오스의 가장 큰 무기다. 가솔린 모델은 3,442만~4,304만 원, 하이브리드는 3,717만~4,364만 원으로 책정됐다. 국산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최대 1,000만 원까지 저렴하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중국과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시장에서 동시에 성공한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특히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품질 우려가 여전한 한국 시장에서 그랑 콜레오스가 성공했다는 점은 '중국산=저품질'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최근 한국 소비자들은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가성비'를 넘어 가격 대비 감성적 만족도를 뜻하는 '가심(價心)비'까지 고려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랑 콜레오스와 싱위에 L의 성공은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정확히 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한편, 그랑 콜레오스의 성공은 향후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중국 완성차 업체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BYD, 체리, 창안 등 다수의 중국 업체가 한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으나, 단순한 저가 공략보다는 검증된 품질, 현지 맞춤형 디자인과 서비스, 다양한 파워트레인 라인업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테슬라와 같은 기존 강자들의 입지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가격 대비 품질'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신흥 강자들의 약진이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한·중 양국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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