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프로듀서 '250', 뽕에서 한국 가요의 뿌리를 찾다

* 해당 아티클은 23년 5월에 집필되었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에서 가장 진지한 음악상입니다. 음악성에 집중해 수상을 결정하죠. 이 시상식에서 한 명의 뮤지션이 수상을 독점하다시피 한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오공이 프로듀싱한 뉴진스의 수상까지 따지면 사실상 7개 분야 수상입니다. 그러니 이오공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가’로 부르는 건 과장이 아닙니다.

그의 대표작은 2022년 발표한 자신의 첫 앨범 <뽕>입니다. 트로트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결합했어요. “한국 대중음악의 통시적 고찰”, “그야말로 새로운 한국적 사운드”… 시상식에서 쏟아진 극찬입니다. 「더 가디언」은 이오공을 “국제적 보물”로 불렀고, 일본의 음악잡지 「뮤직 매거진」은 ‘올해의 음반 10선’에 <뽕>을 올렸죠.

작업실 문이 열리자 <뽕>의 앨범 커버에서 봤던 표정 그대로의 이오공이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어둑한 작업실에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편안한 소파에 기대고 이오공은 딱딱한 의자에 정자세로 앉은 채로요.


Chapter 1.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책임지는 음악을 꿈꾸다

한국의 음악계는 영재들의 놀이터입니다. 많은 뮤지션이 학창 시절부터 음악을 배우고 밴드를 시작해요. 하지만 이호형*은 고3 때까지도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악기를 다루지도, 노래를 배우지도 않았죠.
*250이란 이름은 그의 본명을 따라 만들었다.

“당시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너 노래 잘해? 너 악기 잘해?'라고 물었어요.

전 다 못 했죠. 그런데도 막연하게 외국 힙합과 록을 들으면서 ‘내가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우연히 PC용 미디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많은 게 달라집니다. 모든 게 영어로 쓰여있던 그 투박한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은 이호형의 취미가 됐죠. 모든 조작을 직접 경험하며 익혔습니다. 음악의 마디와 마디를 일일이 잘라 붙이는 작업. 거의 막노동이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연주 음악을 내려받아 밤새 혼자 노래를 만들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돈을 받지 않아도 평생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어요. 동시에 ‘악기도 노래도 못하는 내가 음악을 하려면 이 방법밖엔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온전한 내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곡부터 연주까지 모든 걸 혼자 완성했던 서태지나 신해철처럼요.”

실용음악과에 진학합니다. 전자음악에 더욱 빠져들었죠. 때마침 이태원을 중심으로 디제잉과 파티 문화가 시작되고 있었어요. 이오공도 이태원 파티에서 노래를 플레잉 하곤 했습니다.

당시 이태원은 신인 뮤지션 발탁의 장이었습니다. 대형 기획사의 A&R 담당자 눈에 이오공이 들어왔죠. 그렇게 프로듀싱 활동이 시작됐어요.

이후 그는 보아부터 NCT 127, ITZY 같은 신세대 그룹, 이센스나 김심야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의 곡을 작곡하며 K팝 시장에서 이름을 알립니다. 독특한 건, 이오공은 곡 작업을 할 때 레퍼런스를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때도 지금도, 누군가 ‘레퍼런스’라는 걸 주면 제가 잘 못 맞춰요. 똑같이 흉내를 내거나, 아니면 너무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하죠.

그때 저에게 왔던 요구도 ‘일단 당신이 잘 하는 걸 하라’는 거였어요. 어떤 스타일을 흉내 내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죠. 그게 결과적으로 다행이었어요.”

그는 뉴진스 작업을 하며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뉴진스의 네 곡 중, “하입 보이”는 MZ의 밈이 됐죠. 어떤 질문을 하든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대답하는 대중적인 밈 말이에요. 그 정도로 ‘당대 최고 인기 곡’을 상징하는 작곡가가 된 겁니다.

앙다문 입술과 그윽한 눈빛의 이오공. ⓒBANA

Chapter 2. 용기 : 뽕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이오공이 자신의 앨범을 만들기 시작한 건 2015년, 바나의 아티스트로 합류하면서입니다. 바나는 이센스, 빈지노 등 색깔이 뚜렷한 아티스트를 영입한 레이블이죠.

‘뽕’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건 소속사 대표였습니다. 어느 날 메시지로 “형, 이번 앨범 뽕 어때요?”라고 보내왔다죠. 오랜 시간 이오공의 음악을 들어온 대표의 감이었을 겁니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바로 오케이했어요. ‘뽕’이라는 단어를 듣는데 느낌이 딱 왔어요. 뽕짝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지금 10대들, 뽕짝을 듣는 세대가 아니지만 이박사의 ‘몽키매직’은 다 알잖아요.

한국의 가장 근본적인 음악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뽕이란 한 글자 안에 섹슈얼한 느낌, 신나는 느낌, 서글픈 느낌까지 모두 담겨 있죠.”

이오공은 뽕짝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대요. 코드와 비트가 단순하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관에 빠집니다.

“뽕짝의 기본을 유지하면서 저만의 색깔을 넣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어요. 내가 하는 음악은 뽕짝일까, 아닐까. 내 안에 뽕이 있는 걸까. 알 수가 없었죠.”

한국 정상급 프로듀서에게 뽕짝이 그렇게 어려운 장르냐고요. 이 질문엔 뽕짝을 가벼이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있습니다.

사실 뽕짝의 감성은 한국인을 지배하고 있어요. 발라드와 댄스, 힙합과 록을 불문하고 한국의 대중음악 밑바닥엔 뽕짝의 정서가 깔려있죠. 하지만 대부분이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합니다. 음악계가 이오공을 높이 사는 건 ‘뽕의 정서’를 정면으로 마주한 용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작곡가, 가요 제작자들은 우리 안에 내재한 뽕의 정서를 이미 알고 있었고, 뽕을 어떻게 새롭게 포장해 히트작을 만들까 골몰해 왔다. 이오공의 <뽕>은 뽕을 에둘러 포장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인 용감한 작품이다.

(중략) K팝이 전 세계를 달구고 있는 지금, ‘그래서 진짜 한국의 음악은 뭔데?’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오공의 <뽕>을 들려주면 된다.”

_권석정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심사평에서

포장 없이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직시한 용기.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요. 이오공은 “멋있어 보이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해요.

“타인의 노래를 만들 때는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멋있어 보일까’, 상상하면서 사운드를 구성해요.

하지만 제 앨범은 다르죠. ‘어떻게 하면 멋있는 척하려는 마음을 버릴 수 있을까’가 중요해요. 음악적으로 폼을 잡을수록 본질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이오공의 첫 앨범 <뽕>. ⓒBANA

Chatper 3. 7년 : 작곡은 결과물이 아닌, 체득의 과정이다

이오공은 이 앨범을 7년 동안 준비했습니다. 아이돌 그룹이 짧게는 6개월 만에 새 앨범을 내는 것을 감안하면, ‘거대한 작업’이라 불릴만합니다.

그냥 음반만 만든 것도 아니에요. 바나는 이오공의 <뽕> 작업기를 유튜브에 담았습니다. 총 6개의 다큐멘터리 형식 영상이 바나 채널에 올라와 있죠. 제목은 ‘뽕을 찾아서’.

영상은 뽕의 원류를 찾아 나서는 이오공의 분투기를 코믹하게 담았습니다. 영상에서 이오공은 동묘에서 빈티지 악기를 고르고, 성인댄스 교습소에서 리듬 댄스를 배우고, 재래시장에서 트로트 가락에 맞춰 춤을 춥니다. 이 모든 것이 ‘뽕을 배우는 과정’이에요.

왜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뽕짝을 배워야 했던 걸까요.

“성공하고 싶었으니까요. <뽕> 앨범을 완성하는 것이 제 아티스트로서 자아의 첫 출발이자, 큰 산이라고 생각했어요. ‘앨범을 못 낼 것 같다’고 회사에 말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뽕의 근본에 닿을 수 있고, 그 정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 뒤부터는 어떤 곡을 내도 ‘이오공의 곡’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이게 나의 뽕이다’라는 확신이 처음 들었던 곡은 작업을 시작하고 2년 뒤에 완성됐습니다. <뽕>의 네 번째 트랙 ‘이창’이죠.

이창을 듣자마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뽕은 뽕인데, 내가 알던 뽕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뽕짝 비트에 구슬픈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붙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박수 소리가 켜켜이 쌓입니다. 중간중간 이박사가 등장해 ‘좋아’를 연발하기도 하죠. 처량한 멜로디와 겹겹이 쌓였다 사라지는 소리는 한국의 한을 담고 있는 느낌이에요.

“예전엔 ‘뽕짝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창’을 만들 때, 그냥 내 귀만 쫓자고 결심해 봤죠. 의식적으로 ‘이런 장르를 섞고, 이런 공식을 넣어야지’가 아니라요. ‘이 곡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일단 내 귀에는 좋게 만들자’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처음 만든 곡이에요.”

‘이창’을 듣고 팀원들은 모두 “바로 이거다!” 유레카를 외쳤답니다. 학습의 과정을 지나, 이오공이 드디어 뽕을 체득하고 그의 감각만으로 뽕을 만들어 낸 거죠. 그 뒤로 이오공은 “내가 좋으면 남들에게도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창’을 이후로, 기존에 만들었던 곡들을 그의 스타일로 다시 새로 작업했습니다.

바나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연재된 다큐멘터리 콘텐츠 「뽕을 찾아서」. ⓒBANA

Chapter 4. 작곡할 때 장면을 떠올리는 이유

작곡을 할 때 이오공은 장면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오공의 곡은 이론보다 정서를 먼저 생각하기에 울림이 있는 걸지도요. 그래서일까요. 이오공의 곡은 뮤직비디오와 결합될 때 그 정서가 더 잘 전해집니다.

그의 뮤직비디오는 중년의 애달프면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적나라한 모습을 다뤄요. 한 네티즌은 “이오공의 곡은 30대 이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욕구와 욕망은 살아 있다”는 평을 남겼죠.

‘이창’의 뮤직비디오에는 중년 여성이 한 명 나옵니다. 요리를 하고, 몸을 깨끗이 씻은 뒤에, 양초를 켜고 와인을 따릅니다.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죠. 하지만, 상대에게 바람을 맞았는지 와인 대신 소주와 함께 혼자 맨손으로 닭볶음탕을 집어먹습니다.

각종 국제 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은 ‘뱅버스’의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백현진이 등장합니다. 불륜 행위를 하다 들킨 남성이 팬티만 입고 도망 다니는 내용이 전부죠. 쓰레기장에 자빠지기도, 차에 치이기도 해요.

‘뱅버스’는 ‘250 스타일 뽕’을 가장 단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뱅버스는 ‘가장 알기 쉬운 뽕짝’으로 만들었어요. 고속버스에 타면 나오는 비트죠. 그러면서도 한두 군데 코드의 변형을 줘서 제 스타일을 가미했어요.

예를 들어, 보통 EDM에서 빌드업이 한창 된 뒤에 꽝! 하고 터지는 부분이 있다면, 뱅버스에서는 그걸 패러디해 빌드업을 해놓고 그 뒤에 버스 클락션 소리를 넣어서 허무해지도록 만들었죠.”

신나고 경쾌한 한편, 한없이 슬프기도 한 이오공의 뽕. 모든 곡이 각자의 강한 개성을 표현하지만, 묘하게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정서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뮤직비디오. 대중들은 이오공에게 ‘다프트 뽕크'라는 별명도 지어주었습니다. 그럴듯하지 않나요?

<뽕>의 타이틀 싱글인 '뱅버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BANA
첫 앨범 <뽕>으로
엄청난 비평적 성공을 거둔 동시에
가장 트렌디한 K팝 프로듀서,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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