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도시농업에서 '힐링'을 얻다
오영록 / 도시농부
현대인의 삶은 복잡하다. 개인주의 확장으로 사람관계는 비교적 단순해졌다지만 개개인의 삶은 여전히 복잡하고 난해하다.
자아실현도 해야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소중하니까’ 즐기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 모두를 다 잘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자기 모순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잘 몰라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생살이 연습이 한번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만이 홀로 대중 속 섬에 갇힌 것 같은 외로움 속에 쓸쓸함을 안고 퇴근한다. 심하면 마음의 병을 얻기도 한다.
사람이란 본디 정도의 차이는 있을뿐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안고 산다. 마음의 병은 감기나 근육통과 같은 일상적인 몸의 병처럼 흔히 생길 수 있다.
필자는 마음의 병을 개인의 독특한 성장경험과 생활습관으로 생긴 뇌신경 회로의 오류로 인한 불편한 마음의 상태라 정의한다.
몸이 아프면 어떤 이는 병원으로 달려 가고, 어떤 이는 민간요법을 써 보고, 또 어떤 이는 쉼을 선택하며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 놓고자 한다.
마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를 찾아 상담과 약물치료를 하거나 친구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으로 마음의 불편을 해소하거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통해 마음을 정화 시키기도 한다.
필자는 농업이 그 마음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필자도 농업에서 힐링을 찾았지만 처음부터 ‘마음치료’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위해 오랜 시간 등산과 운동을 했었던 자연을 좋아하는 개인의 성향이 들판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농업활동을 하면서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는 경험은 필자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했고 전문 분야도 새로 생겨났다.
그래서 농업을 통한 마음의 정화 그것을 '치유농업'이라 부르는 것 같다. 치유농업사라고 하는 전문 국가자격증도 생겼다. 치유농업을 거론하자면 딱딱하고 전문적인 얘기까지 해야 하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내 개인이 농업활동을 통해 어떻게 힐링되었는지에 한해서만 얘기해 보고자 한다.
농업의 첫 번째 힐링은 ‘땀’이다.
대상자에 맞는 적절한 신체활동(치유농업 프로그램은 연령별, 대상자별 특이사항 등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고 계속 개발하고 있다.)을 하면 적당한 땀이 나고 집중을 하게 된다.
적당한 땀과 집중의 시간은 명상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명상은 채우는 시간이 아니고 비우는 시간이다. 적당한 땀흘림과 집중만으로도 마음의 노폐물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농업의 두 번째 힐링은 ‘보람’이다.
농업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자 창조의 영역이다. 식물의 생명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식물 스스로 열매를 맺는 신비로움을 경험하고, 내 자신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식물의 생장에 직접 기여하고 그 결과물을 수확해 보면 무(無)에서 만들어지는 유(有)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다.
농업의 세 번째 힐링은 ‘나눔’이다.
생산된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지 않는 이상 한 가족이 먹을 양 이상의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눌 수 밖에 없다.
필자 역시 생산된 농산물은 내가 사는 아파트 이웃들과 또 사무실옆 사장님들과 나눈다. 모두들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좋아하고 기다린다.
사람들이 나눔을 좋아하는 것은 나의 행위가 상대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도시농업 활동으로 얻게 되는 힐링은 많다.
도시농업공동체 활동을 통한 인간관계의 확장이나 도시농업이라는 특수성이 주는 농업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을 체험하고 창조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수세미를 길렀다고 하자. 그러면 수세미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수세미를 잘 기르는 법 뿐만 아니라 수세미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피부에 좋아 어린 열매는 갈아 바르기도 하고 수세미청을 만들기도 하고 약을 다릴 때 넣기도 한다. 다 자란 수세미는 그릇을 닦는 수세미로 만들어 마을장터에 내다 팔기도 한다.
어떤 작물을 선택하고 그것의 이용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활동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자아실현적 힐링을 경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시농업은 텃밭활동 외에도 다양한 영역으로 외연을 확장중이다. 원예활동, 테라리움 만들기, 숲놀이터 활동, 목공을 통한 나만의 작품만들기, 천연발효제품 만들기 등 참여 대상자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치유와 치료는 다르다. 치료는 병적인 현상에 대한 개선적 행위이지만 치유는 마음의 정화를 목표로 한다. 마음의 정화는 집중과 비움에서 온다. 그런 면에서 농업적 신체적 행위를 통한 창의적 활동이 마음의 정화를 가져오리라 확신한다.
가을농사부터 한번 시작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