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자책은 싸게 팔지 않을까?

이건 종이도 안 쓰는데 별로 싸지도 않다는 전자책을 향한 불만들인데, 또 그렇게 산 전자책 퀄리티가 저질이라 그 돈 내고 보기 아깝다는 이야기도 있다. 유튜브 댓글로 “전자책 가격이 종이책보다 별로 싸지 않은 거 같은데 이유를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전자책을 향한 사람들의 불만은 결국 기대보다 비싸다는 거다. 한국소비자원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설문에서 평균 종이책 값의 39.2% 정도가 전자책 가격으로 적당하다고 답했다.

반면에 우리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권의 인터넷 판매가를 분석해보니 10권 중 8권에서 전자책 가격은 종이책의 70~80%에 팔리고 있어서 출판사와 소비자의 생각이 확연히 달랐다.

비용을 따져봐도 전자책은 재고를 쌓아놓을 필요가 없고, 유통·관리비도 서버나 플랫폼 비용 말고 딱히 없는데다 무한복제까지 가능할텐데 그 이익까지 감안하면 더 싸게 팔 수 있지 않을까? 한 대형 출판사에선 가격을 확 떨어뜨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출판사 관계자
“아예 전자책만 내면 그럴 수 있죠. 문제는 전자책을 너무 싸게 팔면 종이책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종이책 1만원, 전자책 1000원 이렇게 팔면 종이책 인쇄해 둔 걸 아무도 안 살텐데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긴 어렵죠.”

좀 납득하긴 어려운 설명인데 전자책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하는건 곤란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건 국내 전자책 가격은 종이책 그것도 양장본에 연동돼 있다는 거고 종이책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출판사는 그 가격을 기준으로 전자책 가격도 책정하고 있다는 것.

기존 종이책 시장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일단 여기서 얻는 매출 비중이 압도적이라서다. 한국출판문화콘텐츠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출판시장 매출 중 종이책 매출은 2021년 기준으로 58.2%였는데, 2017년 69.2%였던 데 비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크다.

출판사들은 이렇게 종이책 시장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자칫 손실이 나고, 자칫 전자책 시장 수익으로 그걸 메우는 데 실패까지 한다면 곤란해진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안정적인 매출을 위해 출판사들은 일단 종이책 시장을 우선하는 보수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거다.

출판사 관계자
"일단 종이책을 내는 이상 인건비가 엄청 들어요. (책을 판 돈의) 30~40%는 서점이 가져가고 남은 돈 가지고 출판사 관계자랑 인쇄소, 제본소, 물류창고에 있는 모든 직원이 나눠먹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거거든요. 이 업계 사람 전부가 그 판매수익으로만 먹고 사니까요. 책에 광고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 기대치와 현실 차이가 이렇게 커서야 장기적으로 전체 출판시장에 득이 될 리 없다. 독자들은 구입이 쉽고 싼 전자책을 사고 싶어도 가격이 비싸고, 그래서 전자책을 사지 않아 시장규모는 충분히 늘지 못하고, 그래서 출판계는 또다시 종이책 시장에만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그럼 외국은 상황이 크게 다른가 살펴보니 꼭 그렇진 않아 보였다. 우리가 지난해 아마존 베스트셀러 10권의 종이책(하드커버) 가격과 전자책 가격을 직접 비교해봤더니, 전자책이 종이책 가격의 70%보다 낮은 건 10권 중 2권뿐이었다. 어이없게도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비싼 경우도 10권 중 4권이나 됐다. 물론 영어권 출판시장은 전자책 가격을 낮추지 않아도 이미 시장이 크고 수요도 크니까 직접 비교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만약 전자책 가격을 깎으려고 맘 먹으면 어디까지 깎을 수 있을까. 국내 한 대형 출판사에서 최근 출판된 책 2권 원가를 어떻게 책정했는지 계산한 내부자료를 입수해서 살펴봤다. 종이 때문에 드는 비용, 그러니까 ‘용지비’와 ‘인쇄/제본비’는 전체 비용의 약 40% 정도였는데, 이것만 보면 상당히 여지가 많은 셈이다.

그럼 STEAM에서 게임 팔듯이 이벤트용 반값할인이라도 해주면 안될까. 그건 도서정가제가 가로막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도서의 할인 최대비율을 정한 법이다. 이 법 때문에 전자책은 이미 허울뿐인 정가가 따로 정해져 있고 실제로는 평소에 그걸 법적 최대한도인 10% 할인한 가격에 팔고 있는 실정이다. 웹소설 역시 이 규제에 묶여있어서, 예외로 해달라고 최근에 한 웹소설 작가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냈지만 지난해 기각당했다.

의도치 않은 풍선효과도 있다. 전자책 수요가 구입 쪽이 아닌 ‘밀리의 서재’ 같은 대여·구독사업으로 쏠리는 거다. 도서정가제가 규제하는 게 ‘판매가’이지 ‘대여료’나 ‘구독료’는 아니다보니 훨씬 싼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선데, 출판사들로서는 전자책을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놓치는 셈이니까 아쉽다면 아쉬운 상황이다.

결론 내리자면 전자책 가격이 우리 기대치보다 많이 비싼 건 종이책을 토대로 구성된 기존 출판시장, 그리고 도서정가제 등 기존 제도까지 더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가격이 충분히 떨어져서 시장이 커져야 전자책의 질이나 플랫폼 성능도 빨리 발전할 것 같은데, 아직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