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들] 상속한정승인과 소송비용부담 사이 모순 해결이 시급하다

김수빈 2026. 3. 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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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은 고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남은 재산을 승계하는 과정이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빚의 덫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법이 마련한 상속한정승인 제도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상속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피상속인(사망자)의 재산으로만 피상속인의 채무를 갚을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제도입니다(민법 제1028조). 이 제도의 본질적인 취지는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더라도 상속인 자신의 고유재산이 침해되는 것을 막아, 빚더미 상속으로 인한 경제적 파탄을 방지하는 데 있습니다. 상속한정승인을 완료함으로써 상속인은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피상속인의 채권자가 상속한정승인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소송비용은 피고(상속한정승인자)가 부담한다"라는 주문을 내릴 때 발생합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상속채무가 존재하고 원고의 청구가 인용되었으니 피고가 패소한 것이고, 따라서 민사소송법의 일반 원칙에 따라 패소자인 피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주문은 상속한정승인 제도의 핵심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피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한다'는 주문은 곧 상속인 개인이 자신의 고유재산에서 소송비용을 지출해야 함을 의미하게 됩니다.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빚이 자신의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렵게 한정승인 절차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송 당사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소송비용이라는 새로운 채무를 개인 재산으로 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빚의 상속을 막고자 한 상속인의 노력과 의사를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한정승인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이 상속인의 고유재산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정승인 제도가 보호하고자 했던 상속인의 지위가 법원의 형식적인 소송비용 부담 주문 하나로 무력화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법리적 모순에 대해 법원이 일관된 기준 없이 방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하급심 법원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는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피고가 부담한다"는 형식적인 판결을 고수하고 있어 판결의 통일성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법원이 상속한정승인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간과한 채 일반 소송의 패소자 부담 원칙만을 고수하거나, 혹은 이를 알면서도 하급심마다 판결을 달리하는 것은 사법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습니다. 국민들은 법원에 일관된 법 적용을 기대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법률 문제에서마저 예측 불가능한 판결이 이어지는 것은 법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상속한정승인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립니다.

이러한 상황은 상속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줍니다. 빚 상속을 거부하기 위해 한정승인 절차를 밟는 시간과 비용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이거나, 혹은 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다시 법원에 제3자이의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 소모적인 싸움까지 강요받게 됩니다. 소송비용 부담이 상속한정승인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을 다투기 위해 또 다른 소송을 해야 한다는 것은, 법 제도가 오히려 상속인을 괴롭히는 도구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법원은 더 이상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법원은 상속한정승인자가 피고인 채무변제 소송에 대해서는 상속인의 고유재산 보호라는 한정승인의 본래 취지를 살려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는 취지의 명확하고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는 특별한 지위에 있는 상속인을 위한 예외적인 조치가 아니라, 이미 법이 인정한 한정승인 제도의 효력을 완성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당연한 법적 정리입니다. 사법부의 신속하고 책임감 있는 조치가 빚 상속의 딜레마에 빠진 국민들을 법적 혼란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김수빈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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