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판사 직선제를 하겠다는데 미국과 캐나다가 왜 반발하나??

[최지윤 칼럼니스트]
셰인바움 신임대통령 "사법부 개혁"
반대여론과 미국등의 반발 속 강행
왜 사법부 개혁까지 추진하게 됐을까
물밑에 흐르는 멕시코 '4차혁명' 역사

10월 공식 취임한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2)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법부 개혁이 멕시코 공직사회를 흔들고 있다. 이미 지난달 1일 멕시코 집권당은 의회 개원과 함께 사법부 개편안 처리를 위한 '개문발차'를 공식화했다.

개혁안은 대법관 정수를 현재 11명에서 9명으로 축소하는 것과 7천명에 이르는 법관을 2025년과 2027년 국민 투표로 선출하는 직선제 실시 등이다. 지난달말 퇴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전 대통령이 판사 직선제를 적극 제안했고, 새로 취임한 셰인바움 대통령이 지지하고 있다. 멕시코는 왜 사상초유의 판사 직선제를 추진하는 것일까.

◇ 멕시코 정체성 회복 운동

매년 10월 12일, 스페인은 국경일을 맞아 성대한 행사를 연다. 이 날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스페인의 주요 정치인과 국왕 내외가 참석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중심을 이룬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사가 준비되었는데 군복이 흠뻑 젖을 만큼 굵은 장대비가 내렸다. 폭우 속에서도 행사는 계속되었고, 군인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행진을 이어갔다.

반면, 멕시코에서는 같은 날인 10월 12일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전 대통령이 제정한 날로, 유럽 식민 지배의 잔혹함과 원주민의 저항을 기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월 12일에 열린 스페인 국경일 행사. 사진=noticias de navarra

전임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019년에 스페인 국왕에게 식민 지배에 대한 공식 사과를 요청한 서한을 보냈지만, 스페인 측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멕시코 측은 이를 외교적 결례로 받아들였다. 10월 새로 취임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러한 맥락에서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를 자신의 취임식에 초대하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에게 가한 폭력과 학대에 대한 사과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와 왕실은 셰인바움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고,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10월 12일을 맞아 스페인이 원주민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여러 나라가 식민지 시절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사례를 언급하며, 스페인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스페인과 멕시코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과거 식민지 역사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두 나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셰인바움의 발언은 멕시코의 정체성 회복과 역사적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원주민 여성과 함께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신임 대통령. 사진=24-horas.mx

그는 전임 대통령인 오브라도르의 '제 4차 개혁'을 이어받아 멕시코를 더 공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제 4차 개혁은 2018년 오브라도르가 당선되며 내세운 야심찬 개혁으로, 멕시코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고질적인 부패를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멕시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차례의 혁명에 이어,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추진한 정치·사회적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 멕시코 독립운동과 개혁들

오브라도르가 말한 첫 번째 개혁은 바로 멕시코 독립운동이다. 1810년, 미겔 이달고 신부의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시작된 멕시코 독립운동은 11년간 계속되었다. 1821년 마침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뤘다.

염원하던 독립을 얻었지만, 멕시코는 여전히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이 혼란 속에서 멕시코는 텍사스를 잃게 되었고, 텍사스는 미국에 합병되었다.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국경으로 주장하며, 영토 문제로 인해 멕시코와 충돌했다. 결국 1846년부터 1848년까지 멕시코-미국 전쟁이 벌어졌고, 이 전쟁에서 멕시코는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 영토 거의 절반을 미국에 뺏기는 굴욕을 당했다.

이후 멕시코는 내부 갈등과 외세의 간섭으로 또다시 고난의 시기를 맞았다. 독립 후 경제 상황은 악화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졌다. 정치권은 보수파와 자유파로 나뉘어 끊임없이 대립했고, 국가 재정은 바닥을 쳤다. 이러한 내부의 혼란을 틈타 유럽 강대국들은 멕시코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특히 프랑스는 멕시코를 발판 삼아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하려는 야심을 드러냈고, 결국 멕시코에 황제를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그 혼란 속에서 베니토 후아레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외세와의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프랑스군과 맞서 싸운 끝에 막시밀리안 황제를 처형하고 프랑스 제국주의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베니토 후아레스는 역대 멕시코 대통령 중 유일하게 백인이 아니었고, 키는 137㎝로 단신이었다. 사진=inehrm.gob.mx

◇ 후아레스 대통령의 2차개혁

후아레스는 멕시코의 근대화를 위해 교회와 국가의 분리, 농지 개혁 등 여러 개혁을 추진했는데, 역사가들은 이를 제2차 개혁으로 여긴다. 그의 개혁은 멕시코의 정치·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후아레스는 멕시코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멕시코의 500페소 지폐에는 후아레스의 초상이 그려져 있으며, 수도 멕시코시티 공항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러나 멕시코는 계속된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집권하며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은 더욱 심해졌다고 역사학자들은 전한다. 디아스는 독재 체제를 유지하며 장기 집권을 꾀했는데, 이는 결국 멕시코 국민의 불만을 극에 달하게 했다. 결국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멕시코 혁명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제3차 개혁으로 불린다.

집권한 제도혁명당(PRI)은 1929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71년간 정권을 잡았다. 오랜 독점적 정치 체제 아래 멕시코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해졌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는 우파 정당인 국민행동당(PAN)이 집권했지만, 2012년에 제도혁명당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었다. 그는 부패 스캔들로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었고, 국민은 분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4년에 설립된 신생 정당 모레나(MORENA)가 급부상했다. 모레나의 지도자였던 오브라도르는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멕시코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24년 대선에서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여당 대통령 후보로 등장했고, 역대 대선 최고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되었다. 모레나는 특히 멕시코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멕시코의 구조적인 문제들

멕시코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뿌리내린 계급 구조와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최근 멕시코에서는 화이트시칸(White + Mexican)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백인과 유사한 외모를 가진 멕시코인이 사회적 권력을 장악하고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현실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이들은 경제적, 정치적 혜택을 누리며 상위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멕시코 인구의 약 80%는 스페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메스티소 중에서도 피부색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존재한다. 특히 피부색이 더 어둡고, 외모가 원주민에 가까운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적 하위 계층에 속하며, 경제적 기회 부족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멕시코 넷플릭스 시리즈 '사고, The accident'의 등장인물. 부잣집에서 일하는 피부색 어두운 가족(위)과 기득권 가족(아래)의 모습이 상반된다. 사진=glue.mx, okdiario

넷플릭스에 공개된 멕시코 드라마만 봐도 사회적 불평등을 알아차릴 수 있다. 원주민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부나 일꾼으로 등장하고, 백인처럼 하얗고 키가 큰 사람들은 부자로 묘사되며 이들을 부린다. 이들 간에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멕시코의 계층 차별은 언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류층은 영어 단어가 섞인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우월함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표출한다. 반면, 하층민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극도로 정중한 표현을 쓴다. 가장 놀라운 점은 가정부가 여전히 집주인을 '주인님'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반면, 스페인에서는 시간이 흐르며 종교적이거나 지나치게 공손한 표현들이 많이 사라졌다.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존댓말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어휘와 존칭이 남아있고, 이는 사회적 계층과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 사법부 부패척결 나선 집권세력

6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을 통해 하원 내 개헌선 의석수를 확보한 멕시코 좌파 집권당 동맹은 상원에서도 야당 소속 당선인 2명을 더 영입하면서, 독자적 정책·입법권을 거머쥐었다.

이런 시점에 오브라도르·셰인바움 대통령와 멕시코 집권당은 사법부 개편안 처리를 위한 '개문발차'를 공식화했다. 집권세력이 사법 개혁을 하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첫째는 사법부의 부패 척결,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판사들의 신변 안전 보장, 그리고 사법부 내의 엘리트주의 방지에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대중 투표를 통해 판사를 직접 선출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재판관과 연방 판사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자는 것 △대법원의 판사 수를 11명에서 9명으로 줄이고 판사의 급여를 제한하는 것 △익명 판사제를 도입해 마약 카르텔 사건을 담당하게 되면, 협박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만큼 신변이 위협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또 이와 함께 사법 감찰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셰인바움이 추진하는 멕시코 사법개혁도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레나는 그동안 멕시코의 사법 체계가 상류층과 엘리트층에 유리하게 작용해 왔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이 사법 불평등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전임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법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9월 16일 발효된 사법 개혁안이 발표되자, 국민의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법의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이 소식을 반겼다. 또한, 법관과 판사를 국민이 뽑는 것은 대통령 투표와 다르지 않으며, 국민이 선출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민주적인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판사를 국민 투표로 선출하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판사들이 정치적 압박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국민 투표로 판사를 선출하면 전문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사법부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 개혁이 궁극적으로 사법부를 정부의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비판한다. 파업에 돌입한 대법관들은 사법개혁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하며, 삼권 분립을 무너뜨려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멕시코 시민들의 시위. 사진=elpais.com

◇ 미국, 캐나다 등 주변국과 외국인 투자자 반발

특히 이번 사법개혁에 대해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당사국인 미국과 캐나다는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 대사는 이 개혁이 멕시코의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며, 두 나라 간 경제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브라도르는 반발하며, 미국과 캐나다와의 외교 관계를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외국 투자자들 역시 이번 사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정치적 압력을 받는 사법부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이는 멕시코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데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다. 유럽연합 또한 멕시코와의 경제 협력에서 법적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사법개혁이 투자자 신뢰를 떨어뜨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멕시코의 사법개혁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까? 무모한 아집에 불과했는지, 국가를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든 소신 있는 결정이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멕시코 사법개혁의 성공 여부는 향후 멕시코의 정치적 미래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입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셰인바움 신임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과감한 행보로 국민의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취임과 동시에 스페인, 미국, 캐나다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는 강한 모습은 멕시코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멕시코가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멕시코의 미래는 셰인바움의 손에 달려 있다.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과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 한국학과에서 교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