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의 계단신이 2시간 동안?…관객에게 아양 떠는 조커라니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0. 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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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조커: 폴리 아 되> 가 앙상하게 느껴지는 이유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빨간 정장 위로 찰랑대는 머리. 계단 위에서 추는 괴상하고 멋진 춤. 전 세계적으로 무수한 짭(?)조커를 양산했던 <조커>(2019)가 5년 만에 돌아왔다. <조커: 폴리 아 되>라는 낯선 이름으로. '폴리 아 되(Folie à Deux)'는 프랑스어로 '둘의 광기'라는 뜻이다. 언론도 앞다퉈 '미친 자'들의 '미친 사랑' 이야기라 일컬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그다지 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니, 오히려 이 영화는 지극히 제정신이며 관객의 이쁨을 받기 위해 치열하다. <조커: 폴리 아 되>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이 영화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얼마나 무가치하게 소모해 버렸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해보려 한다. 아래부터 <조커: 폴리 아 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나온다.
실은 전작 <조커>에 대한 평가도 부풀려진 경향이 있다. 이 영화는 만듦새가 그다지 훌륭하다 말하기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데는 주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 덕이 컸다. 감독 토드 필립스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과 움직임을 잡아내는 데 매달린다. 그러다 보니 영화 자체가 감독의 작품이라기보다 최애를 담은 덕후의 영상같이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이런 영상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고, 영화가 그런 인상을 풍기는 것이 특이하다는 의미다). 이 작전은 오히려 먹혀들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제 몫을 제대로 해냈고, 완성도와 별개로 영화는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
 
<조커>에서 가장 강하게 뇌리에 남는 장면은 단연 조커가 계단에서 춤을 추며 내려오는 장면이다.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춤사위인데, 호아킨 피닉스는 이 움직임을 또 찰떡같이 소화한다. 이 씬은 유튜브 영상, SNS 프로필 등에서 무수히 재생산되며 인기를 입증했다.

전작 <조커>(2019)
조커의 춤이 그다지도 강렬한 것은 단순히 호아킨 피닉스가 느낌 있게 소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아서 플렉의 실패와 좌절, 그로 인한 조커의 탄생, 그 이면에 담긴 슬픔과 짜릿한 해방감을 동시에 뿜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관한 서사가 춤 장면의 앞뒤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 없이 단순히 춤만 덩실덩실 춘다면, 아무리 호아킨 피닉스라 할지라도 폭발적인 사랑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토드 필립스는 <조커>의 성공이 단순히 춤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후속작에 댄스를 꽉꽉 채우고 거기 어울리는 노래까지 가득 담아 가져왔다. 이런 추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영화가 캐릭터 '조커'를 둘러싼 서사나 감정 일체에 무관심한 채로 조커의 춤을 자랑하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조커: 폴리 아 되>는 <조커>의 계단 신을 2시간으로 늘려놓은 작품에 불과하다.
 
사실 조커에 관한 서사는 전작에서 충분히 나왔고, 후속작은 그 서사마저 뛰어넘는 조커만의 세계관을 보여주길 바랐다. 아서 플렉의 사연으로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조커의 광기와 카리스마, 자신만의 철학, 그런 것들 말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가 레전드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런 요소를 예리하고도 풍부하게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헛소리 중 진실은 무엇일까? 그가 말한 '악당의 품격'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윤리적 딜레마를 꼬집는 질문에 우리는 뭐라 대답해야 할까?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무수한 의문과 그 뒤로 이어지는 긴 탄식을 자아냈다.
반면 <조커: 폴리 아 되>의 조커는 어떤가? 그는 아서의 망상 안에서 끊임없이 휘청대고 악쓰듯 노래한다. 그러나 이 유별난 몸부림은 정작 조커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그가 환희에 차있든 사랑에 취해있든 마찬가지다. 그것은 조커가 약간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짓는 약간 다른 표정을 얄팍하게 관찰할 따름이다. 이 소란스러운 장면들은 조커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의 정체성을 탐구하지 못한다. 그저 앙상한 어깨와 메마른 얼굴의 표면에 달라붙어, 우리가 이미 아는 조커의 이미지를 거듭거듭 소진할 뿐이다. 이토록 소모적으로 과시되는 이미지는 공허하다.
 
<조커: 폴리 아 되>가 이런 선택을 내린 이유는, 이런 방식이 관객에게 먹힐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상업 영화는 흥행을 노리고 제작된다. 하지만 캐릭터가 지나치게 흥행에 초점을 맞춘 채로 구성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만일 <조커: 폴리 아 되>가 조커에 대한 자기 만의 해석을 보여줬다면 그 나름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조커에 대한 해석이 앙상하다. 시작부터 캠프파이어를 하듯 조커의 이미지를 불사르고, 후반부에는 이해될 수 없는 이유로 캐릭터를 회수한다. 그렇게 조커 쇼는 막을 내린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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