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나누는 가족, 파산만으로 재기 쉽지 않다"

2022. 9. 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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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소장 인터뷰
고령층의 빚 문제는 청년의 빚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고령 채무자 중에는 자식의 빚을 떠안은 이가 적지 않고, 부모의 빚을 대신 감당하는 청년 채무자 역시 적지 않다. 어떤 가족은 부를 물려주며 경제공동체의 이점을 누리는 반면, 어떤 가족은 빚을 나누고 물려준다. 갚지 못하는 빚은 세대의 문제라기보다는 계급의 문제에 가깝다.

사진/ 이효상 기자


감당 못 할 빚을 이고 있는 노인과 청년은 안정적인 소득원이 없다는 점에서 닮았다. 노인은 근로 능력이 없고, 청년은 질 좋은 일자리가 없다. IMF 때 지게 된 빚을 수십년째 갚지 못하고 고령층에 이르러 파산하게 된 노인들의 문제는 코로나19 기간 빚을 지게 된 청년들의 미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20대 가구주의 평균 부채액은 8801만원으로 2017년 대비 24% 증가했고, 같은 기간 30대 가구주의 평균 부채액도 62% 증가했다.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렸지만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차주 비중은 2030세대에서 6.6%로 여타 연령층(5.8%)보다 높게 나타났다(한국은행, 2021년 4분기 기준).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소장은 금융상담과 교육 등을 통해 10년 넘게 사람들의 빚 문제를 들여다봤다. 그중에서도 청년들이 생활부채를 갚지 못하고 ‘채무노예 상태’로 떨어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지난 9월 26일 서울 창신동에서 만난 한 소장은 “노인파산이든 청년파산이든 단순히 부채를 파산시킨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기존의 채무조정제도를 통한 신속한 채무조정뿐 아니라 이들이 장기간의 전망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인내 자본 성격의 금융 공급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등으로 발생한 부채의 책임소재를 따져 개인이 진 부채가 아니라 ‘사회적 부채’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고 했다.

-노인파산 문제를 취재하다 보니 노인의 부채와 청년의 부채를 떼놓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당 못 할 빚이 가족 안에서 돌고 도는 경향이 있다.

“노인 세대 중 일부가 자녀 세대로 인해 부채를 안게 됐듯이, 자녀들도 부모의 부채를 떠안는 친구들이 있다. 청년도 경제위기가 오면 그 위기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되고 가족의 문제를 떠안게 된다. 부채 문제는 가족 전체의 문제다.”

-청년 부채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본적인 원인으로 고비용 구조, 저소득, 사회보장 부족을 꼽는다. 한국사회는 삶의 이행에 필요한 수요를 금융으로 조달하게 돼 있다. 학자금 대출, 주거 대출, 생계비 대출 등이 대표적이다. 삶의 필요를 사회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화된 방식으로 조달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부채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취약계층일수록 은행권 대출은 받기가 어렵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필연적이다. 어떤 계층은 금융 때문에 망가지지만, 어떤 계층은 금융 때문에 자산이 증식된다. 모두가 건강한 금융으로 부채를 조달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일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혹은 단기 일자리만 전전하는 청년들은 정상적인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렵다. 고령층도 똑같다. 노인들도 소득원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금융을 공급받는다. 제1금융권은 적극적으로 이들을 배제한다.”

-고령층 파산자의 경우 비교적 소액의 부채를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장기간 씨름하다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젊었을 때 채무조정이나 면책 등의 제도를 이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한국은 빚을 잘 갚는 나라다. 빚을 갚지 않으면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대부분이 빚을 갚지 않는다는 건 실상과 다르다. 청년들을 상담하면서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을 하자고 하면 실제로 응하는 사람은 10분의 1 정도다. 실제 파산·회생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라고 봐야 한다. 빚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감당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일을 몇개라도 더 해서 갚으려고 하는데, 노력해도 가망이 없어 보이면 최소한 연체가 안 될 정도만 갚고 손을 놔버린다. 부채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사람이 위축되니까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그 상태에서 10년, 20년이 흘러 고령층이 돼서야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파산 이후에 재기할 수 있다고 보나.

“노인파산이든 청년파산이든 단순히 부채를 파산시킨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재기할 가능성은 없다. 채무조정이나 파산 이후에 대상자를 도와주는 제도가 하나도 없다. 환경 자체가 다른 점도 문제다. 강의를 많이 하는데 ‘작업대출’이나 ‘휴대폰깡’ 같은 이야기를 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분들의 경우에는 내용을 잘 모른다. 반면 불안정한 일을 하는 분들은 이 내용을 알고, 실제 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개인의 도덕관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 등 가지고 있는 자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불안정 금융을 이용한 사람들은 변제 기간이 짧으니까 삶의 호흡도 굉장히 짧아진다. 장기간의 어떤 전망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할 수가 없다. 금융 압박에 묻지 마 취업을 하는 등 삶의 진로나 계획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현재 빚을 진 청년들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고통받다 파산하는 노인파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청년 부채로 인해 더 큰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청년들에게 조금 더 신속하게 채무조정을 해준다든지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은 파산제도가 잘 돼 있다. 파산을 해줘야 이 사람이 회생할 수 있고,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세금이라도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년들이 파산을 신청해도 재판부가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지 멀쩡하니 파산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면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이 사람들은 일을 할 수 없어서 부채가 쌓인 사람들이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인데 바로잡기 위해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가계부채 총량 줄이기와 사회안전망 확충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기 어렵다. 취약계층에게는 금융이 필요한 게 아니라 복지가 필요하다. 중산층이 부채를 통해 자산을 매입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은 안정적인 소득 공급원이 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에게는 국가가 안정적인 공급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사회적 부채라는 개념도 필요하다. 부채는 개인의 잘못만으로 발생하지 않고, 국가가 본연의 책임을 회피해 발생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부채가 과연 누구의 책임에 의해 발생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국가의 방역 실패가 원인이라면 개인들의 부채를 국가가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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