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만찬’…‘불통’ 윤 대통령에 여권 공멸 위기감

이승준 기자 2024. 9. 2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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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맨 왼쪽), 추경호 원내대표(맨 오른쪽)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지난 24일 ‘빈손 만찬’을 두고 당정의 무능과 무책임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친윤석열계과 친한동훈계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당정·계파 갈등만 증폭되는 모양새다.

한 대표 쪽이 만찬 뒤 독대를 재요청한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대통령실은 ‘묵묵부답’을 이어가며 ‘독대 신경전’도 계속되고 있다.

만찬으로 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른 국민 고통과 민생 현안을 해결할 해법 대신 여권 ‘투 톱’ 간의 불신과 갈등만 확인된 셈이다.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해 정치력의 한계만 노출하는 한 대표도 문제지만, 특히 ‘잘해보자’는 한 대표를 국정 운영의 책임자로서 끌어안지 못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고집하는 윤 대통령이 국정 난맥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격화하는 당정·계파 갈등

25일 대통령실과 여당의 친한동훈계, 친윤석열계 인사들은 의-정 갈등, 김건희 여사 논란 등 국정 현안이 논의되지 않은 전날 만찬에 상이한 평가를 내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만찬에서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발언이 오갔다”고 했지만, 한 친한계 만찬 참석자는 “대통령이 주로 혼자 이야기하고, 나머지 분들이 추임새를 넣는 정도였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친한계와 친윤계의 감정싸움은 더욱 격화하는 모습이다.

친한계 당직자 의원은 “여당 대표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 대통령도 일단 들어야 할 거 아니냐. (만찬에서)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건 치사하다”고 말했다.

반면 친윤계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한 대표도 (만찬에서) 바로 대통령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며 “(한 대표가) 대통령을 자꾸 궁지에 몰아넣는 거라고 대통령실은 생각할 수가 있다”고 했다.

전날 한 대표가 홍철호 정무수석에게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거듭 요청하고 언론에 이를 알린 것을 두고도 비난전이 이어졌다.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은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만나는 게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반면 영남권 친윤계 의원은 “한 대표는 정치부터 배워야 한다. 여당 대표면 물밑 조율을 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언론 플레이를 해선 안 된다”며 “빈손 만찬이 누구 탓이냐”고 한 대표에게 화살을 돌렸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 대표의 독대 요청에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으로 불쾌감을 표출했다.

‘이러다 다 죽는다’ 여권 공멸 위기감

이런 상반된 태도의 밑바탕엔,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히는 의-정 갈등과 김 여사 문제를 둘러싼 양쪽의 뚜렷한 시각차가 자리 잡고 있다.

한 대표는 독대를 통해 윤 대통령에게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을 위해 의대 증원 문제에 ‘유연한 접근’을 하자고 설득하는 한편, 명품 가방 수수, 공개 행보 확대, 공천 개입 의혹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김 여사와 관련한 전향적 조처를 요구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을 자신의 ‘업적’으로 인식하는 윤 대통령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당이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와 국민의힘 지지율이 정부 출범 이후 최저 수준(윤 대통령 20%, 국민의힘 28%, 한국갤럽 지난 10~12일 조사)으로 동반 하락한 주요 원인을 ‘윤-한 갈등’으로 보고 있는 대통령실은 전날 만찬을 ‘당정 화합을 보여줄 상견례’로 준비했다.

평행선을 달리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에, 대통령실의 안이한 판단이 더해져 ‘독대 논란만 남은 빈손 회동’은 이미 예견됐던 셈이다.

국민의힘은 공멸 위기감에 부글부글한 분위기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포용하고 경청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나, ‘독대’를 두고 언론 플레이만 하는 당대표나 둘 다 치졸하고 한심하다.

당과 대통령실의 책임자들 수십명이 다 모인 자리에서 어느 한 사람도 지금의 국정 실패와 민심 이반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니, 정부·여당으로서 최소한의 책임도 직업윤리도 영혼도 없었다”고 일갈했다.

계파색이 옅은 한 영남 의원은 “지금 두 사람이 하는 건 다 같이 망하자는 얘기다. 핵심 지지층인 대구·경북에서도 나라가 어려운데 왜 싸우고만 있냐고 그런다”고 답답해했다.

국정 운영 책임자는 대통령

당 안에선 ‘정치 초보의 한계’라며 한 대표를 탓하는 기류가 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윤상현 의원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에서 “대표 주변에 있는 분들이 어떻게 하면 대표를 잘 모시고 당정 관계를 원활하게 해나갈 수 있는가 고민이 있어야 된다.

이분(한 대표)은 아직까지 모르니까”라며 “한 대표는 ‘여의도 문법’보다 ‘국민 문법’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여의도 문법’ 나름대로의 그게(쓸모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정 기조는 옳다”며 ‘불통 리더십’을 이어가는 윤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 한 당정 관계도, 민생의 고통을 비롯한 국정난맥도 상황이 바뀌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는 11월10일 임기 반환점을 도는 윤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번 만찬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 대표의 차별화 시도→윤 대통령의 거부→당정 간 소모적 갈등 확산→민생 현안 해법 도출 실패→여론 악화’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국정 운영 동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정책은 그러잖아도 대치 중인 192석 야당에 번번이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 대통령이 정당 경험이 없고 검찰에서 상명하복 리더십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기 때문에 자기주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국정 운영 긍정평가 20%에서 당정이 분열하면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해나갈 수 없다. 레임덕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준상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국가 이익을 최우선을 놓고 민심의 바다를 거슬러선 안 된다”며 “빠른 시일 내에 두 사람이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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