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산을 오른다. 누군가는 계곡을 찾는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함양 마천면, 지리산 자락 깊숙이 숨은 칠선계곡은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 첫발을 디딘 순간, 마치 오래된 전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선녀가 목욕했다는 곳, 그러나 ‘죽음의 골짜기’라 불리는 이유

칠선계곡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명의 선녀가 이 계곡에서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 계곡의 이름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이름 뒤에는 또 다른 별칭이 붙는다. ‘죽음의 골짜기’.
이 거칠고도 경이로운 길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고, 하루에 단 60명. 그 제한된 수가 오히려 이곳을 더욱 귀하게 만든다. 마치 자연이 직접 기준을 세운 듯, 가벼운 마음으로는 발을 들이기 어려운 길이다.
붉은 다리를 건너면 시작되는 또 다른 차원

출발은 함양 마천면 추성마을. 붉은 칠선교를 건너며 계곡 길이 시작된다. 이 구간은 비교적 평온하다.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까지는 자유 탐방이 가능한 길이다. 나무 그늘 아래 걷는 이 길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진짜 칠선계곡은 그 너머에 있다. 탐방예약자만 들어갈 수 있는 통제구역. 이곳에 들어서면 숲은 한층 깊어지고, 폭포와 소가 이어지는 협곡은 태고의 자연 그 자체가 된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일곱 폭포, 서른세 개의 소, 그리고 치마폭포

계곡은 하나의 장대한 악보처럼, 폭포와 소(沼)로 구절을 이룬다.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서 첫 등장하는 치마폭포는 이름 그대로 폭 넓게 펼쳐진 치맛자락 같은 곡선을 그린다. 그다음 나타나는 칠선폭포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웅장하진 않지만, 사계절 변치 않는 수량과 음성으로 탐방객을 압도한다.
그 중 대륙폭포는 이름부터 눈길을 끈다. 1964년, 부산 대륙산악회가 이곳을 최초로 발견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 단순한 경관을 넘어, 산악인의 땀과 도전이 깃든 장소다.
이곳에서 느끼는 자연은 감상 대상이 아니다

칠선계곡은 그저 ‘멋지다’, ‘예쁘다’고 감탄하고 끝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외심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발을 잘못 딛으면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 갑작스레 바뀌는 날씨, 그리고 과거 수많은 사고의 흔적이 이 별칭의 무게를 실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안다. 자연을 마주할 땐 겸손해야 한다는 것. 이곳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힘 앞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문을 열어준다.
천왕봉에 닿기 위한 마지막 관문

칠선계곡은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모든 허락된 탐방객들이 천왕봉까지 오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취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험준한 길을 지나온 이들이 천왕봉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아마도 단순한 ‘정상’ 그 이상일 것이다.
성역 같은 계곡, 그리고 인간의 약속

칠선계곡의 ‘탐방 예약제’는 규제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에 대한 존중의 의사 표현이다.
우리가 이 땅을 조금 더 오래도록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이 숲과 계곡을 온전히 넘겨주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그런 점에서 이 계곡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시간과 전설, 도전과 경외심이 함께 숨 쉬는 깊은 자연의 경전과도 같다.
여행 정보 요약

- 위치: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 탐방 가능 시기: 매년 5~10월, 화/금/일 중 사전 예약자에 한해 입장 가능
- 예약 방법: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 통한 ‘가이드 동반 탐방예약제’
- 추천 대상: 숙련된 등산가, 또는 자연의 깊은 울림을 찾는 이들
- 주의사항: 트레킹화, 방수복 등 필수 장비 필요 / 비상시 통신 불가 지역 있음
지리산 칠선계곡은 단순히 절경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자연 앞에 얼마나 작아지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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