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의 통곡, 민주항쟁의 불씨!-①

[이영훈의 노래가 품은 역사]

오늘은 1987년 6·10민주항쟁이 있은 지 38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 주최로 오전 10시 민주화운동 관계자와 유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완료돼 이를 기념하는 개관식도 함께 진행됐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5년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상임고문 고문 사건과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등 민주인사에 대한 강압적인 조사와 인권 탄압이 자행됐던 장소다.

기념식은 식전 대동놀이 공연을 시작으로 개막 영상 상영, 국민의례, 경과보고, 제막식, 기념사, 기념공연,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공연에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대학생 연합합창단이 '과거와 현재의 광장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의미로 '타는 목마름으로'와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이어 모든 참가자가 '그날이 오면'을 노래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10일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제38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영화 ‘1987’, 그리고 ‘그날이 오면’

2017년 12월 26일 저녁 8시.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CGV 12관에 동아일보 임직원들을 위해 영화 ‘1987’ 무료 시사회 자리가 마련됐다. 개봉 하루 전에 열린 이 시사회는 영화 제작과 관련해 동아일보가 제호 및 당시 기사가 실린 신문 사용을 허락해준 데 대한 제작사 측의 감사 표시였다.

박종철의 죽음과 이어진 6월항쟁을 다룬 영화 ‘1987’ 속에는 기자들의 활약이 많이 녹아있다. 서울대생 박종철의 죽음이 경찰의 물고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이신성 분)과 윤상삼 기자(이희준 분) 등 기자들이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에 맞서 진실을 추적하는 모습이 배우들의 열연으로 주목 받았다.

영화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처음 보도한 윤상삼 기자(이희준 분)가 나온다.

러닝타임 130분이 끝났지만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옆 좌석을 돌아보니 선후배들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이한열 합창단의 ‘그날이 오면’ 노래를 배경으로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엔딩 영상은 당시 실존 인물들과 30년 전 사람들로 가득한 시청광장 모습 등을 담고 있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민중가요 노래패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가장 대중적 성공을 거둔 앨범인 2집에 수록되어 있다. 노찾사의 2집에는 1980~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숙한 노래들인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이 산하에’, ‘잠들지 않는 남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도 함께 실려 있다.

노찾사 2집은 진보적 노래 운동의 성과가 상업적 대중가요 음반시장 안에 의도적으로 진입해 성공한 우리나라 대중가요 사상 최초의 기념비적 음반이다. 2집 음반 출시 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는 당시 가요 순위 프로그램 상위권에 동시에 랭크되기도 했다.

특히 ‘사계’는 MBC 대학생 퀴즈 프로그램 ‘퀴즈 아카데미’의 타이틀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음반은 발매 후 1년 만에 50만장 판매를 돌파했고 이후 1990년대 초중반까지 80만장 이상이 팔렸다.

노찾사 2집 이후 안치환은 솔로 활동을 시작해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을 히트시키며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고, 권진원은 3집 이후 솔로로 나서 ’살다보면‘ 등의 노래로 주목을 받았다.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윤선애 등이 부르는 '그날이 오면',

'턱'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

1985년 2․12 총선 이후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의 민주화 운동 탄압은 극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전의 계기를 가져온 것이 1987년 초에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일명 '탁억 사건' 이었다.

당시 운동권 선배 박종운(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수행팀장)의 행방을 캐묻기 위해 박종철을 연행한 경찰들이 그에게 물고문을 가한 끝에 사망하자 물고문 사실을 은폐할 목적으로 온갖 공작을 펼쳤다. 그래서 생겨난 희대의 망언이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라는 것이다.

박종철의 부친 박정기는 억장이 무너졌다. 부산에서 급히 서울로 올라온 박정기는 벽제화장장에서 화장한 아들의 유골을 임진강 샛강에 뿌리며 오열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동아일보 황열헌 기자의 1987년 1월 17일자 6면 현장칼럼 ‘창(窓)’의 한 대목이다.

“두 시간여 화장이 계속되는 동안 아버지 박정기 씨(57)는 박 군의 영정 앞에서 정신 나간 듯 혼잣말을 계속했고 어머니 정차순 씨(54)는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화장이 끝난 박 군의 유골은 분골실로 옮겨졌고 잠시 뒤 하얀 잿가루로 변해 박 군의 형 종부 씨(29)의 가슴에 안겨졌다.

종부 씨는 아무 말 없이 박 군의 유해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경찰이 마련한 검은 색 승용차에 올랐다. 잠시 후 일행은 화장장 근처의 임진강 지류에 도착했다. 아버지 박 씨는 아들의 유골가루를 싼 흰 종이를 풀고 잿빛 가루를 한 줌 한 줌 쥐어 하염없이 샛강 위로 뿌렸다.

‘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 박 씨는 가슴 속에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박 씨는 끝으로 흰 종이를 강물 위에 띄우며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다이⋯’라고 통곡을 삼키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동아일보 ‘창’에 실린 황열헌 기자의 칼럼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박종철 관련 시위나 추도행사의 플래카드에도 등장했다.

당시 경찰병원은 서울 중부경찰서 관내에 있었다. 중부경찰서를 담당하던 황열헌 기자는 장례식 당일인 16일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는 벽제화장터에 가보기로 했다. 다른 신문기자들은 “기사도 안 나가는데 뭐 하러 가느냐”라며 움직이지 않았다. 황 기자는 평소 죽이 맞던 한국일보 유동희 기자에게 “역사의 현장에 가보자”라고 권유했다. 이렇게 해서 두 기자는 박종철 유골을 뿌리는 임진강 샛강까지 동행하게 된 것이다.

황 기자는 박종철의 아버지가 한 말은 정확히 “철아 잘 가그라이”라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 출신으로 경상도 사투리에 밝은 김차웅 차장이 데스크를 보는 과정에서 ‘잘 가그래이’로 바꿨다.

그날 저녁 동아일보 사회부 데스크와 기자들은 황 기자의 취재 목격담을 들으며 숙연해졌다. “현장에 있던 사건기자 두 명이 모두 울었습니다. 취재고 뭐고 집어치우고 소주나 한 잔 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는데, 취재차에 다시 올라 타 유족들을 뒤따를 때는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②편에 계속


※ 이영훈 가요연구가는 국제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신문기자로 20여 년간 근무하다 방송으로 옮겨 10년째 기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채널A 보도본부에 근무하면서 메인뉴스 편집데스크와 디지털뉴스부장을 지냈고 쾌도난마, 뉴스톱텐 등 여러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데스크로 일해 왔다. 보도본부 선임기자를 거쳐 현재는 심의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벌로 보는 한국야당사>, <한국정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유행가는 역사다>, <그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