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계약 조항이 KBO리그를 뒤흔들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선택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바로 FA 자격을 포기하며 모두가 잔류를 예상했던 김재환이, 이전 계약에 포함된 옵트아웃 조항을 발동해 두산 베어스를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규정상 정당한 권리 행사였지만, 팬들의 정서와 정면으로 충돌한 결정이었다. 김재환의 이적 이슈는 단순한 선수 이동을 넘어 기존 제도의 취지와 공정성에 관한 논쟁에 불씨를 지폈다. 그러나 옵트아웃이 일상처럼 활용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다. 같은 조항, 다른 온도. 그렇다면 ‘옵트아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제도는 KBO리그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 (2월 26일 작성)
에디터 박대은 사진 KIA 타이거즈, SSG 랜더스

#Opt-out Clauses: 선택의 문
옵트아웃(opt-out)은 장기 계약 속에 숨겨진 ‘선택의 문’이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특정 시점에 선수가 계약을 종료하고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항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문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옵트아웃은 선수가 본인의 커리어를 설계하는 전략부터 구단이 리스크를 계산하는 방식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차원적인 계약 형태다.
선수에게 옵트아웃은 보험과도 같다. 계약 당시보다 가치가 상승했을 때 더 큰 시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권리, 다시 말해 자신의 전성기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장치다. 반대로 구단으로서는 일종의 양보이자 투자다. 스타 선수를 붙잡거나 영입하기 위해 선택권을 내주되, 그 선수가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함께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이 조항이 언제나 행사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수가 압도적인 성과를 내거나, 팀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때 비로소 유의미한 선택지가 된다. 실제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선수가 옵트아웃을 선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옵트아웃은 잘했을 때만 빛을 발하는, 철저히 ‘성과 연동형 권리’인 셈이다.
그래서 옵트아웃은 종종 오해를 부른다. 팬들의 시선에서는 ‘계약을 깨는 장치’로 비치기 쉽지만, 계약 구조의 관점에서는 선수와 구단의 수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합의에 이른 조건이다. 약속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약속 안에 포함된 선택을 실행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 미묘한 간극에서 옵트아웃을 둘러싼 논쟁은 시작된다.
#MLB: Major League ‘Business’
메이저리그(이하 MLB)에서 옵트아웃은 특수한 조항이 아니라 슈퍼스타급 선수와의 계약에 자주 등장하는 ‘표준 옵션’이다. 이번 겨울 김하성이 옵트아웃을 선언한 후 원소속팀이었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1년 2,000만 달러의 재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옵트아웃의 뿌리는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미네소타 트윈스는 당시 FA 신분이 된 우완 투수 잭 모리스를 붙잡기 위해, 단기 계약을 장기 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을 오직 선수에게만 부여하는 계약을 성사한 바 있었다. 당시에는 이를 ‘플레이어 옵션’이라 불렀다.
플레이어 옵션은 2000년 12월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설립한 보라스 코퍼레이션에 의해 지금의 계약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체결한 10년간 2억 5,200만 달러의 계약에 옵트아웃 조항을 삽입하며 대형 계약의 주요 옵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계약을 체결한 이후 7시즌 동안 3번이나 MVP를 수상하며 리그를 지배한 뒤, 2007시즌 종료 후 옵트아웃의 권리를 행사하며 기존 계약보다 더 많은 금액과 더 긴 계약 기간을 보장받았다. 옵트아웃이 단순한 ‘탈출 장치’가 아닌, 전략적 권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처음으로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한 건 로드리게스가 아닌 외야수 J.D. 드류(전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2004년 5년간 5,5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으로 LA 다저스와 계약한 드류는 두 시즌이 지난 2006년 겨울 옵트아웃을 실행했는데, 당시 LA 다저스 단장 네드 콜레티는 해당 결정에 ‘배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공개적으로 반발심을 드러냈다. 여기에 1년 후 로드리게스의 옵트아웃 선언을 향한 여론도 삭막했는데, 옵트아웃 실행 발표가 다름 아닌 월드시리즈 4차전 종료 직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드류에 이은 로드리게스의 결정은 구단과 팬으로 하여금 옵트아웃에 대한 부정적인 첫인상을 심었다.
여론은 등을 돌렸지만, MLB에서 옵트아웃은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리그 전반으로 확산해 정착됐다. 그 배경에는 FA 시장의 성장을 포함해 MLB 비즈니스 구조의 변화가 있었다. 선수의 몸값이 급등하고 계약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악성 계약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는 장기 계약은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부담이 됐다. 구단으로서는 옵트아웃을 통해 위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선수에게 FA에 도전할 수 있는 심리적 동기부여를 제공할 수 있고, 선수로서는 가치가 상승할 시 재평가받을 기회를 얻게 됐다. 옵트아웃이 구단과 선수 간 이해관계의 접점으로서 작용한 것이다.
옵트아웃은 계약 협상의 진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에이전트 중심의 협상 구조가 강화되면서 계약은 단순한 연봉 조정 과정을 넘어 금융 설계에 가까워졌다. 기간, 보장 금액, 옵트아웃을 비롯한 각종 옵션이 하나의 패키지로 자리매김했다. 구단은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총액 조정, 보장 구조 변경 등으로 균형을 맞췄다.
구단 역시 옵트아웃을 위협 요소로만 보지 않기 시작했다. 선수의 전성기 구간을 확보하거나, ‘윈나우’를 위한 단기 고효율 투자의 방법으로 옵트아웃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옵트아웃은 연봉 총액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좋은 기량을 유지한다면 잔류 혹은 재협상, 기대 이하의 활약이라면 계약 유지 혹은 큰 고민 없는 이적 허용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옵트아웃은 기본적으로 선수에게 유리한 성격을 띠지만, 역설적으로 구단에도 완전히 불리한 장치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젠 옵트아웃이 하나의 문화로 수용된 부분도 있다. 옵트아웃이 대중에게 낯설게 다가왔을 때, 보라스는 ‘사업상의 결정’이라는 한마디로 논란을 정리했다. 이에 시간이 흐르며 팬과 미디어는 옵트아웃을 ‘비즈니스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FA 제도, 트레이드, 연봉 조정과 마찬가지로 리그 구조 속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결국 MLB에서 옵트아웃이 정착하게 된 것은 규정의 승리가 아닌, 시장 논리와 현실이 타협한 결과다. 이는 계약의 안정성보다 유연성이 더 큰 가치를 갖게 된 시대 변화를 의미한다. 옵트아웃은 거대한 자본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계약 구조의 진화가 만들어 낸 산물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KBO가 마주한 혼란의 본질이 드러난다. 제도는 동일하나, 이를 둘러싼 환경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권리 행사인가 배신인가
KBO리그의 옵트아웃 논쟁은 결국 김재환의 선택에서 커졌다. FA 자격을 포기하며 잔류가 유력해 보였던 상황에서 전례가 드문 권리를 행사해 두산을 떠난다는 소식은 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제도적으로는 정당한 권리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두산 팬들의 지지를 등에 업었던 김재환이 보상선수도, 보상금도 없이 이적한다는 결정에 ‘배신감’이라는 정서가 여론을 덮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KBO리그에서 옵트아웃 조항을 공식 계약서에 처음 등장시킨 건 김재환이 아닌 안치홍이다. 2020년 안치홍이 롯데 자이언츠와 체결한 2+2 FA 계약에는 구단과 선수 모두 2년 뒤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 잔여 계약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권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안치홍은 옵트아웃 조항을 행사하지 않았고, 연장 옵션을 택해 잔여 계약을 모두 소화했다.
처음으로 옵트아웃을 실행한 것 역시 김재환이 아니었다. 지난 11월, 투수 홍건희가 두산과의 남은 계약 기간 2년과 잔여 연봉 15억을 포기하고 옵트아웃을 선언했다. 이후 그는 KIA 타이거즈와 1년 총액 7억 원에 계약했다. 며칠 뒤, 4년 간의 FA 계약 기간이 만료된 김재환은 ‘FA 자격을 포기하면 우선 협상하되, 협상이 무산되는 조건 없이 방출한다’라는 특수 조항을 발동시켜 방출 선수 신분이 됐고, SSG와 2년 총액 22억 원에 계약했다.
같은 해에 동일한 구단의 두 선수가 동등한 권리를 행사했으나 팬들의 반응은 완전히 상반됐다. 김재환에게는 믿고 응원해 준 팬들을 기만하고 배신했다는 비난과, FA 보상 제도를 무력화하는 편법을 사용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따라왔다. 반면 홍건희의 결정에는 대체로 존중의 목소리가 담겼다. 여론 온도가 극명하게 갈린 건 두 선수의 서사와 배경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홍건희의 사례는 계약 구조 안에서 예견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다. 2+2년 계약, 연장 구간에서의 권리 행사. 물론 잔여 보장 금액을 포기하고 FA 시장에 재진입한 결정은 생소했지만, 논쟁은 제도와 시장 가치 평가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김재환의 옵트아웃은 팬 정서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두산에서만 뛰었던 MVP 출신이라는 상징성에, 과거 징계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해 온 팬들의 신뢰 역시 분노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FA 자격 포기로 상승한 잔류 기대 직후 전해진 옵트아웃 소식은 팬들의 실망감을 배가시켰을 터. 규정상 정당한 권리 행사였음에도 그의 옵트아웃 논쟁은 계약을 넘어 도의적 책임과 신뢰의 문제로 번졌다.
올겨울에 벌어진 두 이적은 옵트아웃이 단순한 계약 조항이 아님을 보여준다. 선수의 위상, 팀 내 상징성,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서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권리는 동일했지만, 해석은 달랐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
김재환의 이적으로 촉발된 옵트아웃 논쟁이 남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규정상 허용된 권리 행사와 정제되지 않는 거부감 사이의 괴리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제도의 결함이라기보다 KBO리그가 축적해 온 계약 문화와 팬 정서의 충돌에 가깝다. 선수에게 계약은 커리어를 설계하는 도구지만, 팬에게는 신뢰와 동행의 약속으로 읽혀 왔다.
김재환의 이적 이후인 지난 12월 15일, KBO 실행위원회에서도 옵트아웃 관련 논의가 이어졌다. 옵트아웃 자체를 제지할 수는 없지만, FA 등급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시장과 계약 구조의 확장은 불가피하다. 옵트아웃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 장치다. 대다수의 여론은 김재환에게 화살을 날렸지만, 옵트아웃 조항은 애초 두산과 선수 간 합의된 계약 조건이었다. 더군다나 KBO 사무국 역시 이를 승인했다. 흥미로운 점은 계약 체결 당시 힘의 균형이다. 1991년의 잭 모리스와 2021년의 김재환. 옵트아웃 삽입을 감수하면서까지 계약이 절실했던 쪽은 공교롭게도 선수보다 구단에 가까웠다. 팬들의 실망과 비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계약 당사자인 구단이 이를 ‘편법’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제도의 존재가 아니라, 이를 감당할 안전장치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준비돼 있냐는 것에 있다. 명확한 기준, 투명한 설명, 그리고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석의 틀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논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재환의 사례는 구단으로서 마주할 수 있는 옵트아웃의 위험성을 드러낸 사건이었고, 동시에 FA 제도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였다. 더 나아가 이번 논쟁은 KBO리그 특유의 ‘FA 4년 재취득 기간’ 제도에 대한 원초적인 비판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감정적 반발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권리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조율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옵트아웃은 KBO를 흔드는 변수가 될 수도, 새로운 균형을 만드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결국엔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조항이 아니다. 제도를 설계하는 리그의 철학, 이를 운용하는 구단의 전략, 그리고 변화를 해석하는 우리의 시선이다. 계약은 숫자 위에 쓰이지만, 야구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80호 (4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DUGOUTMAGAZINE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dugout_mz
유튜브 www.youtube.com/@DUGOUTMZ
네이버TV tv.naver.com/dugoutmz
<더그아웃 매거진>은 대단한미디어가
제작,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포스트 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대단한미디어와 표기된 각 출처에 있습니다.
잡지 기사 전문을 무단 전재, 복사, 배포하는 행위를 금하며,
적발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