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일본 도쿄대학 연구생]
최근 적지 않은 중국 전문가들이 통계 데이터를 언급하며 중국의 성장세를 어필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문제의식은 조금 다르다. 그중 단순히 "중국은 대학을 이렇게 지원하는데 한국은 연구자를 천시하고 지원을 안 해준다"라며 읍소하는 식은 안 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고등교육 정책 구상이 가진 진정한 문제는 "동원 및 자원 투입을 중국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이라 착각하는 것으로 본다.
중국은 박정희를 거름 삼아 극복했다
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선정적인 구호를 볼 때마다, 이 나라가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은 자유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책들이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동원-투입’ 모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권위주의 모델 아래에서 오히려 박정희식 모델을 거름 삼아 응용하며 극복했다고 본다. 그들의 고등교육 정책은 단순한 정부의 지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박정희의 유신이나 중국이나 국가에 의한 “투입"임은 자명하나, 중국의 투입 모델은 나름의 대전략을 가지고 중앙정부-지방정부-민간-동급의 기관등 다양한 레벨의 후원자들이 참여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더 나아가 중국은 자신의 정책이 불러오는 명확한 결점을 인식하면서도 큰 그림을 그리며 그 결점을 정면 돌파하자고 주장하는 등 마치 계획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형식을 취한다. 반면 (추후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한국은 중국의 내부 전략은 보지 못한 채, 모두 지원하자는 식의 구호성 캠페인만 반복하는 것이 문제다.

중국 대학의 민낯: 체급에 못 미치는 질적 수준
중국의 성장세와 대전략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중국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실질적인 체급부터 따져보자. 중국은 연간 대학수험생이 1,400만 명에 달하는 문명 단위의 국가다. 고작 40만 명대인 한국이 양적으로 비할 바가 아니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각 성(省)마다 대학 하나씩만 제대로 키워도 서울대 비슷한 것이 스무 개는 나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다르다. 광둥성만 해도 인구 1억 2천만 명에 총생산은 한국을 넘어선 지 오래된 초거대 경제권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은 없다. 그나마 외국에서 알아주는 중산(中山)대학이 QS랭킹 270위권 언저리다. (참고로 연세대, 성균관대는 70위권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대학이 중국 내에서는 무려 10위권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국의 최상위권 대학조차 아직 세계적 수준과는 거리가 있으며, 그 아래 대학들의 질적 수준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국 대학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강조할 때 인용되는 대학평가로는 네이쳐 인덱스 등이 있지만, 이는 연구의 규모나 수준만 대표할 뿐, 전체적인 기관의 수준을 대변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 대학의 질적 문제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충격적인 것은 중산대학 급의 대학도 가지지 못한 자치구/성이 14개나 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허난성인데, 허난성은 9,800만 명의 인구를 가졌지만, 허난성을 대표하는 허난대학이나 허난이공대학은 교육부 직할이 아닌 지방정부 아래 있는 대학이다. 결국 중국 대학의 부상은 자신의 경제적 체급에 맞는 위치를 이제야 힘겹게 찾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가 서울대에 투자하듯, 응당 했어야 할 투자를 뒤늦게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왜 대학을 경시했는가: 3가지 구조적 원인
그렇다면 중국은 왜 지금까지 자국 대학을 이토록 방치해 왔을까? 내가 보는 원인은 ① 나이브한 인재관, ②프로젝트 중심의 운영, ③대학 재정의 이원화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나이브한 인재관: 덩샤오핑은 마오쩌둥과 달리, 해외로 나간 인재가 돌아오지 않아도 그것이 결국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나이브한 인재관'을 가졌다. 이 때문에 중국 대학은 세계와 경쟁하기보다 내수용 인력을 기르고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하위 기관 역할에 만족했다.
② 프로젝트 중심의 운영: 당시 중국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일을 처리했다. 특정 과제가 생기면 해외 학자나 기업 인력을 동원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들을 차버린다. 그들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일쑤였다. 해외에서는 이를 두고 "중국이 인재를 이용만 하고 버린다"고 비판했지만, 실상은 시스템 자체가 유명무실에 가깝다. 중앙정부의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지방정부나 기업 입장에선 굳이 그들을 붙잡아 둘 이유도, 능력도 없었다.
③ 대학 재정의 이원화: 대학 관리 체계는 교육부 소속과 지방정부 소속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지방정부는 교육부 소속의 명문 대학 운영에 크게 참여할 수 없었지만, 이들 절대다수의 대학은 지방정부 소속이었고, 해당 지방정부로부터만 재정을 지원받는 것이 원칙이었다. 문제는 덩샤오핑의 분권화 이후 중국 중앙정부의 예산 규모는 지방정부 전체 총지출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다는 점이다.
이는 중앙정부가 수십 개의 직속 대학들을 모두 세계적 수준으로 키울 수 없다는 의미였고, 지원은 결국 최상위 10여 개 대학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정부는 지방정부대로 지방정부에게 소속된 질 낮은 대학들에게 마냥 지원을 퍼줄 수도 없었다. 경쟁도 안 될 뿐만 아니라, 노하우도, 인식도 없었다.

변화의 시작: 지방정부의 갈증과 ‘선택과 집중’ 전략
이러한 구조는 국유기업(SOE)체제가 개혁되고 지방정부가 이익 추구의 주체로 변모하면서 달라졌다. 자치권을 얻은 지방정부들은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 중심의 연구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의 기업을 육성하고 이익 추구를 할 필요가 생겼다. 세계의 연구 성과들을 흡수하고, 교류하고,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청사진을 그리며 기초를 탄탄히 쌓아나갈 필요성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해외에 머무는 중국 인재들을 다시 모셔와야 하고, 세계 기준에 맞는 대학들을 육성할 필요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육분야에서는 불행히도 자기 지역 내 최고 학부를 육성할 권한도, 중앙 소속 대학에 개입할 명분도 없었다. 지방의 끊임없는 요구에, 중앙정부는 마침내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전략을 꺼내 들었다.
첫번째는 성부공건(省部共建) 전략으로, 2004년 중앙은 지방정부가 중앙 소속 대학에 공식적으로 투자할 길을 열었다. 성(省)과 부(部)가 함께 대학을 건설하는 이 '성부공건' 정책이 시행되자, 지방정부들은 사활을 걸고 지원에 나섰다. 중산대학의 경우, 2004~ 2008년 교육부의 투자액(4억 위안)을 훨씬 뛰어넘는 6억 위안을 광둥성 정부가 쏟아부었다. 지방정부가 얼마나 대학 육성을 갈망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부성합건(部省合建)과 쌍일류(双一流) 정책이다. 2018년에는 교육부 직속 대학이 없는 14개 성·자치구의 대표 대학을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하여 ‘준(準) 직속 대학’으로 격상시키는 ‘부성합건’이 시작됐다. 또한 ‘쌍일류’라는 국가적 타이틀을 부여해 대학의 위상을 높이고 외부 투자를 유도했다. 지방 소속이던 윈난대학이 부성합건 대학이 되자, 윈난성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3년간 최소 25억 위안(약 4,700억 원)의 특별 자금을 투입했다.
중국의 방식은 명확하다. 대학 투자의 중요성을 비교적 늦게 깨닫은 후, 이를 빨리 따라잡기 위해 소수의 대학에만 연합하여 자금을 집중하는 대신, 절대다수의 대학은 소외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인재들이 기회를 찾아 해외로 떠난다.
중국에 비해 미국은 어떨까
또 우리는 정부 지원의 측면에서 중국 대학 성장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중국 대학 성장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구매력(PPP)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미 국방부가 중국의 국방비가 명목상으로는 적지만 구매력으로는 이미 미국을 넘었다고 매년 불평하는 것과 사정은 비슷하다. 같은 1억 달러를 투자해도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연구 인력과 장비를 확보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해도 여전히 중국 지방 거점 대학들은 아직도 부진하다. 대학이라는 게 돈만 투입한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게다가 미국은 중국과의 효율성 격차를 엄청난 돈으로 메운다. 그러한 돈은 정부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3억 명 언저리에 가까운 인구로도 미국의 대학이 강한 이유는 미국이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미국 명문 사립 대학은 기업처럼 움직이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들은 동문 모금을 엄청나게 하고, 연간 수천 명을 수용하는 캐시카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해외에서 그 엄청난 돈을 들고 오는 엘리트들이 수두룩하다. 1년에 10만 달러를 현금으로 내고도 다닌다.
기부를 많이 하면 엘리트들의 자식도 좋게 봐주고, 돈 많은 국제 학생들이 사립/국제 고등학교를 다니면 플러스가 된다. 그것 이외에도 엄청난 보조금도 받는다. 미국의 교육 재단들이 엄청난 자금을 유통할 수 있는 이유는 '구조의 희생'에 있으며, 미국의 패권으로부터 기인한다.

한국 고등교육 정책의 새로운 방향
결론적으로, 중국 대학의 부상은 이제껏 못 했던 투자를 뒤늦게 시작하며 제 체급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보며 한국이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읍소하는 담론은 한계가 명확하다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는 중국의 성 하나도 버거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상대적 국력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구매력 차이까지 고려하면, ‘동원-투입’ 경쟁은 우리로선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즉, 박정희식 선전 구호와 정부 주도 동원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국가의 과학기술은 단순히 세계적 학자 몇 명이 있다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질을 갖춘 연구자들이 원하는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며, 투자 미비 상태에 있는 중국 대다수의 대학들보다 양질의 중견 연구자들을 “많이”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을 지방 대학/사립 대학들이 갖추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나의 견해로는 연구기관의 양극화를 야기하는 중국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탄탄한 중견 연구자들이 자리잡을 환경을 마련하는 부분에서 취약할 것이다. (물론 그래도 규모상으로는 우리보다 클 것이다.) 사실 그들은 교육기관의 양극화가 중견 연구자가 부재한 문제를 심화시킬 것을 알면서도, 과거 해안 도시들을 먼저 세계적 도시로 개발하며 서서히 내륙을 발전시킨 것처럼 ‘선택과 집중’의 성공 경험을 믿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것은 헛말이 아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무한정 대학교육에 투입할 수 없으며, 단순히 양질의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떠나 세계 수준의 교류를 위해 세계적 수준의 대학들 한두 개는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선택과 집중 전략은 자명하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에 경쟁자인 중국을 오판하는 것과 중국의 수를 읽지 못함에 있다. 중국의 수를 읽어야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힌다. 중국 고등교육 정책이 어떠한 고육지책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중국 기관들의 엄청난 성장의 이유를 단순히 정부의 동원이나 투입으로만 판단해선 안된다. 그랬다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게 중국을 오판한다면 우린 앞으로 ① "중국과 경쟁 시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기관"들만 지원을 해버리거나, ② 혹은 현재의 이재명 정부가 국립대와 사립대를 포함한 모든 대학을 지원하겠다고 하는 “모두가 만족하는 이상적인 무리수”를 택할 것이 분명하다. 그랬다간 종국적으로 '치킨게임'에서 패배하는 건 우리임이 자명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장점을 활용한 다층적이고 정교한 전략
중국에 비해 우리는 이미 가진 것이 많다. 중국과 달리 민간 자본이 고등교육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유연성은 그 자체로 큰 자산이다. 오히려 최상위 연구기관이 모두 국립대이며, 명문 사립인 와세다-게이오조차 마치 하청업체 같은 옆나라 일본보다도 그 사정이 좋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전반적인 대학의 질적 수준이 양호하며 이미 세계 유수의 기관들과 협력해 온 풍부한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나아가 미국의 동맹이자 자유 진영의 핵심 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중국의 경직된 시스템을 기피하는 글로벌 인재와 기관들에게 매력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가진 구조적 장점을 활용한 다층적이고 정교한 전략을 짜야 한다. 글로컬 사업처럼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고, 국립대학의 지원금을 크게 늘리고, 사립대학의 경우 정부의 지원금을 점점 줄여나가되, 미국처럼 사립대학들이 자금 조달에 더 과감하게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판을 깔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입시의 평등성을 심하게 저해하는 미국 모델(예를 들어 기여입학제 등)의 약점을 미리 알고, 민간 교육 재단이 자금 확보 과정에서 야기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합리적인 양의 자금 획득을 사전에 지정함으로써 감독할 필요도 있겠다.
중국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점점 달러 대비 생산성은 감소할 것이며, 그에 따라 투입의 효용성도 점차 감소할 것이다. 그 상황이 되면 그들은 어디서 새로운 Input을 찾아낼까? 나는 이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이다. 중국은 민간 자본이 체제에 진입하여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에, 안정적일 수는 있어도 민간 자본이 고등교육에 개입할 수 있는 한계 역시 제법 명확할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앞으로 중국 고등교육 체제의 장기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이라는 경직된 체제가 효율성을 쫓으며 놓치는 부분을 찾아 집중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전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정대성은 재미교포 출신으로 UC버클리 정치학과(학부), 중국에서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 석사과정에 국가장학생으로 수석 입학한 후 졸업했다. 현재는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생으로 있다. 그는 9월에 시카고대학 역사학과(동아시아 외교사)에 두번째 석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있으며 앞으로 비교외교정책을 전공하여 외교사와 국제정치, 비교정치를 넘나드는 연구자가 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