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애들이 뭘 하겠어?" 30대 법인장 뽑더니…"잘 나가네"
“매일 업무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고 퇴근할 때마다 새삼 ‘내 사업이다’ 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업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이봐, 해봤어?’라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말을 떠올립니다.”
지난해 말 현대코퍼레이션 호주 지게차 판매(HFA) 법인장으로 선임된 사공혁 법인장은 1989년생(만 34세)으로, 2014년 입사한 10년차 직원이다. 대부분의 종합상사를 비롯한 민간 대기업에선 과장급에 불과한 연차지만 ‘상사맨의 꿈’으로 불리는 해외 법인장에 파격 선임됐다.
사공 법인장은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만나는 상대방이 대부분 50대 이상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면서도 “나이가 어려 전문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현대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해외법인 일곱 곳 중 여성 곳의 법인장이 MZ세대인 30대 직원들이다. 영국 외에도 캄보디아, 호주, 미국법인에서 ‘나홀로’ 부임해 발군의 성과를 내고 있다. 사공 법인장을 비롯해 김충기 영국 스미시머시룸 법인장(1984년생), 이명우 캄보디아 현대아그로법인장(1983년생), 이종빈 호주 불라파크법인장(1990년생) 신동진 캄보디아 현대패키징법인장(1983년생) 허결 미국 버섯법인장(1990년생) 등이 주인공이다.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의 모태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이 1976년 설립한 현대종합상사다.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의 주력은 해외 식량사업이다. 고객사와 제조사 간 중개를 통해 제품을 팔고 수수료를 받는 트레이딩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왔다는 판단에서다.
식량사업은 트레이딩과 달리 처음부터 시장을 개척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하는 신사업이다. 기존 종합상사 업무와는 다른 방식의 혁신이 필요했다. 그룹을 이끄는 정몽혁 회장은 MZ세대에 주목했다. 그는 정주영 창업 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 씨의 외아들이다. 정 회장은 상사업체가 지닌 역량과 자원에 더해 비즈니스 트렌드에 민감한 30대 MZ세대 창의력이 더해지면 무한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봤다.
파격 인사실험은 2019년 9월 김충기 매니저를 영국 법인장으로 선임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 캄보디아에서 골판지와 필름을 만드는 패키징법인장으로 신동진 매니저를 발령냈다. 정 회장은 이들에게 “해외 법인을 전 세계에 거점을 둔 스타트업으로 운영해 달라”는 특명을 내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0대 법인장들이 발품을 팔아 거래처를 늘리면서 해외 거점별 매출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김충기 영국 법인장은 코로나19로 영국 주요 도시가 록다운(봉쇄)되는 악조건에서도 글로벌 유통기업인 테스코에 납품하는 점포 수를 800개에서 1150개로 43%나 늘렸다. 고급 유통체인점인 막스앤드스펜서(M&S) 등 영국 주요 할인점 체인 300개 이상의 점포에 버섯을 공급하며 고품질 동양버섯(표고, 새송이, 느타리)을 영국시장에 알리고 있다. 캄보디아와 호주 법인의 매출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당초 회사 내부에선 30대 직원을 법인장으로 보내는 결정에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컸다. “어린 애들이 뭘 하겠느냐”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30대 법인장들이 모두 단기간에 놀라운 성과를 내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인사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은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 계열사인 현대제뉴인의 지게차를 호주에서 판매하기 위한 법인을 설립했다. 법인장으로 건설기계팀에서 근무하던 사공 법인장을 전격 발탁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열정 및 능숙한 외국어 능력만을 봤다고 했다. 신사업을 담당하는 해외 법인 일곱 곳 중 여섯 곳에 30대 해외 지점장을 발령낸 것이다.
사공 법인장은 호주 지게차 판매뿐 아니라 렌탈사업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조금이라도 경쟁사보다 나은 가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경쟁사들을 보면서 위기의식과 함께 사업에 대한 애착과 주인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사공 법인장은 “앞으로 호주 시장에 현대코퍼레이션 입지를 공고히 해 글로벌 톱3 업체로 발돋움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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