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무릅쓰기’만으론 이젠 안된다

최상구 기자 2025. 6.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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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보는 게 겁납니다.”

본격적인 여름 장마철을 앞둔 요즘 농촌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하나같이 날씨 걱정을 앞세우며 겁부터 난다는 말을 자주한다. 농민들은 ‘농사는 하늘과의 동업’으로 여기며 불가항력성에 대처해왔지만 최근의 기후변화는 감당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수도권에 117년 만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설로 경기 화성에서 사과밭이 폭삭 주저앉는 피해를 본 농민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복구를 끝내지 못했다. 그는 2022년 이상기후에 따른 탄저병으로 기존 사과나무를 모두 뽑고 새로 심는 기후 피해를 본 지 2년 만에 폭설을 또 겪은 것이다.

평택에서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하다 지난해 폭설로 2곳의 연동하우스 12동이 무너지는 재해를 겪은 농민은 직전 해인 2023년 여름 폭우로 시설하우스가 침수되면서 토마토농사를 망쳤다. 그는 두해 연속 날씨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이제 이런 사례는 화성과 평택 농민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농촌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올해만 해도 3월 영남지역에서 역대 최대 산불이 발생한 데 이어 봄철 이상저온에 따른 언피해를 본 농가들이 속출했다. 연례행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시사철 ‘기후재난’이 농민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반복되는 기후재난에도 대응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재해복구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농작물재해보험 보장 범위는 너무 제한적이다. 이렇다보니 그 빈자리는 고스란히 농가 몫이다. 피해를 본 농민은 빚을 내 농자재를 다시 사고 부서진 시설을 고친다. 그러고도 다음해 농사를 위해 또다시 위험과 부담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촌 현장의 감내만으로 버티긴 힘들어지고 있다. 기후재난이 매년 되풀이되고 그 강도는 더 심각해질 것이란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의 눈빛은 더이상 기대가 아닌 체념에 가까웠다. 기후위기를 농민의 개인 불운으로 치부하거나 근성으로 견뎌내게 해서는 안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근본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미 답은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여전히 사후 처리에 머무른 재해 대응을 사전 대비로 전환하고 재해복구와 농작물재해보험부터 현실화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모두의 과제다. 무릅쓰기로 버텨온 농촌의 시간은 이제 끝나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함께 지켜야 할 때다.

최상구 전국사회부 경기 주재기자sgcho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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