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패는 복싱, 비틀고 당기는 레슬링, 호신의 울타리 펜싱 [말록 홈즈]
“누가 여기 통이냐?”
“대가리 나와!”
강함에 대한 인류의 열망과 호기심은 투기(鬪技: 싸울 투, 재주 기) 스포츠로 이어졌습니다. 전들의 강인한 신체능력은 소속 국가나 사회의 위세를 상징해, 외부의 침략이나 괴롭힘을 사전에 막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나아가 단순한 대결을 넘어, 꾸준한 심신수련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다양한 무도(武道: 굳셀 무, 길 도)로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격투기(格鬪技: 칠 격, 싸울 투, 재주 기) 경기에는 선수를 보호하는 규칙과 장비가 필수입니다. 사람이 상하면 안 되니까요. 인간에 대한 존중의 정신이 있고, 자산 보호라는 성격도 있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인간은 노동력과 군사력의 최고 원천이었다고 하네요. 오늘은 올림픽의 격투기 종목들의 어원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격투기의 대명사 같은 종목 ‘복싱(boxing)’으로 가봅니다. 주먹으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경기로, ‘한 방(a blow)’이란 뜻의 중세 네덜란드어 ‘boke’, 중세 고지 독일어 ‘buc’, 덴마크어 ‘bask’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타격할 때 나는 소리 “퍽”에서 나온 것 같다고 상상해 봅니다. ‘주먹이나 손으로 때리다’란 의미는 14세기에 나타났습니다. ‘네모난 상자’ 모양 경기장에서 시작해 ‘때리다’란 의미가 붙었다는 추정도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피그마키아(υγμαχία)’라고 불렀는데, 주먹(πυγμή)과 전투(μάχη)의 합성어로 복싱의 한자어 ‘권투(拳鬪: 주먹 권, 싸움 투)’와 구조가 같습니다. 결국 복싱의 뜻은 “빡!빡!” 주먹으로 때리는 싸움이군요.
레슬링(wrestling)은 원래 상대방을 던지고, 넘어뜨리고, 꺾고, 조르는 스포츠입니다. 단어의 핵심인 ‘wrestle’은, ‘비틀다, 렌치로 돌리다’란 뜻의 동사 ‘wrest’와 연관 있습니다. ‘돌리다, 구부리다’를 의미하는 인도유럽조어(Proto-Indo-European)인 ‘wer’에서 왔습니다. 올림픽 레슬링은 크게 그레코로만(Greco-Roman)형과 자유형(freestyle)로 나뉩니다. 그레코로만은 ‘그리스와 로마’를 뜻하며, 조르기와 꺾기가 금지되고 허리 위로만 공격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다소 지루해지면 소극적 선수에게 ‘패시브(passif: 프랑스어. 소극적인)’ 판정을 내리는데, 이 때 바닥에 엎드리는 벌칙 자세를 ‘파테르(parterre. 일명 빠떼루)’라고 부릅니다. ‘~으로’를 뜻하는 par와 ‘땅바닥’을 의미하는 terre로 구성된 말로 “바닥으로”를 뜻합니다. 자유형은 그레코로만과 달리 상하체를 모두 사용하며, 상대방의 하체도 공격할 수 있어 경기가 더 활기찹니다.
자, 이번엔 동양 격투기로 가보죠. 우리나라의 국기(國伎: 나라 국, 재주 기. 종주국 스포츠) 태권도(跆拳道: 밟을 태, 주먹 권, 길 도)는 발차기와 주먹치기의 입식(立式: 설 립, 기준 식) 타격무술(打擊武術: 때릴 타, 칠 격, 굳셀 무, 재주 술. striking martial arts)입니다. 본래 발과 주먹을 고루 사용하는 실용적 무술이었는데, 발차기 중심의 스포츠로 특화시켜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태권도가 세계 종합격투기 무대에서도 주특기로 쓰이는 실용적이고 막강한 무술로 강화되면 좋겠습니다.
유도(柔道: 부드러울 유, 길 도)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하는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울 유, 할 수 있을 능, 누를 제, 억셀 강)’의 무술입니다. 고대부터 전투에서 병장기와 맨몸으로 싸우던 유술이 무도로 자리잡은 스포츠입니다. 영어로는 쥬도(Judo)라고 쓰는데, 종주국 일본이 ‘부드러울 유(柔)’자를 ‘쥬(じゅう)’로 발음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무기를 들어볼까요? ‘서양 검술’로 알고 있는 ‘펜싱(fencing)’은 뜻밖에도 울타리를 치는 ‘펜스(fence)’에서 왔습니다. 펜스는 방어를 뜻하는 디펜스(defence)의 단축형입니다. 칼로 찌르는 공격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 무술의 의미가 큽니다. 펜싱 종목에는 플뢰레(Fleuret), 에페(Épée), 사브르(Sabre)가 있습니다. 플뢰레(Fleuret)는 ‘작은 꽃무늬’를 뜻합니다. 검의 끝이 생긴 모양에서 유래했습니다. 플라워(flower)의 인도유럽조어인 ‘bhel-‘의 뜻은 ’성장하다, 번성하다‘입니다. 상대방의 상체만 찌르기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에페(Épée)’는 말 그대로 검(sword)를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신체 부위 어디든 찌를 수 있습니다. 사브르(Sabre)는 자르기 위한 도구를 뜻하는 헝거리어 ’szablya’가 17세기에 ‘구부러진 검’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sabre로 자리잡아 생긴 말입니다. 상체, 얼굴, 팔 등을 공격하여 득점하는데, 사브르 경기에서는 찌르기 외에 베기 공격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대표적인 올림픽 투기 스포츠를 풀어봤습니다. 이야기한 김에 몇 가지만 더 살펴봅니다. 무술을 뜻하는 영어 ‘마샬 아츠(martial arts)’는 로마신화의 군신(軍神) ‘마르스(Mars)의 재주/기예’를 뜻합니다. 서양에서는 ‘싸움신의 재주’가 동양에서는 ‘굳세고 용맹한 재주’입니다. 투기는 아니지만 양궁(洋)은 영어로 아처리(Archery)입니다. 우리말로는 서양의 활쏘기인데, 서양에서는 그냥 활쏘기입니다. Archery는 라틴어로 활을 뜻하는 arcus에서 비롯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활과 활쏘기가 있어 서양의 활쏘기라는 의미로 양궁이라고 부릅니다. 재밌는 건 그 서양 활쏘기에서 우리나라가 항상 최강입니다.
격투기도 마쳤습니다. 아직 체조와 수영과 탑승경주 종목들이 남았는데, 이번주 금요일에 드디어 파리 올림픽의 막이 걷히는군요! 올림픽 끝나기 전에 시리즈 마치겠습니다.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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