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전 남편들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어요.”

이 말은 많은 이들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2005년, 트로트곡 ‘우연히’로 대중 앞에 선 그는 한순간에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과 뚜렷한 무대 매너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다양한 방송과 무대를 넘나들며 활동을 이어갔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했지만, 그녀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생계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고, 어린 나이에 나이트클럽 무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첫 번째 남편이었다.
23살 연상의 유명 편곡가.
음악을 배우고 싶었던 그는 그에게 의지했고, 자연스럽게 사랑이 시작됐다.
결혼까지 이어졌지만 현실은 달랐다.

판잣집에서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버텼고, 생활은 늘 빠듯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이혼 후 재혼했지만, 두 번째 결혼도 길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성격 차이로 결국 다시 혼자가 됐다.

이후의 선택은 예상 밖이었다.
우연이는 지금도 두 명의 전 남편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다.
첫 번째 남편에겐 20년 넘게, 두 번째 남편에게도 5년째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가 아프면 아이가 아파요. 그게 전부예요.”

첫 남편에 대해선 “가수로 설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라며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도 이제 지쳤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요. 나도 내 인생 좀 편하게 살고 싶어요.”
짧은 고백엔 오랜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우연이는 결혼 후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경험도 공개했다.
“돈을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었다.
아이 아빠가 부도가 나서 빚쟁이들에게 돈을 계속 갚아야 했다.
집도 없었고, 버는 족족 다른 데로 들어가니 사는 데 재미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야 했다.

“미국에 계신 부모님께 울면서 부탁드렸어요. 아버지, 노래해야 되는데 아이 데리고 있기가 너무 힘들다고….”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지만, 아이도 생각해야 했고, 나도 살아야 했어요.”
아이와의 이별도 감내해야 했다.
우연이는 여전히 무대에 선다.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그녀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출처= 이미지 속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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