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원전 르네상스론’…대박 시작인가, 환상인가
탈원전 국가들, 원전 활용 잇단 선회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큰 전환점
탄소중립·AI 전력수요 대처 현실론도
건설비 급증·경제성 상실…회의론 우세
UAE 수주 때도 “1천조 시장” 헛물켜
세계 재생에너지 투자, 원전의 10배
“체코 원전 24조 수주 잭팟…세계는 원전 르네상스”
‘원전 르네상스(부흥)론’이 요란하다. 체코의 두코바니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24조 잭팟’ 축포에 이어 원전 르네상스론이 쏟아지고 있다. 체코를 공식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0일 현지에서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포럼에서 “한국과 체코가 ‘팀 체코리아’가 되어 ‘원전 르네상스’를 함께 이뤄나가자”고 분위기를 띄웠다.
잭팟론은 덤핑·적자 수주 우려에 이어 한국 원전 모델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주장하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이 재차 불거지며 다소 수그러드는 분위기이다. 반면 원전 르네상스론은 스위스·이탈리아 등 기존 ‘탈원전’ 국가의 잇따른 신규 원전 추진과 맞물리며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원전은 이미 경제성을 상실해 르네상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론이 많다. 독일·대만·스페인 등의 탈원전 정책에는 변함이 없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세계 에너지시장 흐름은 더욱 강화하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론은 대박의 시작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원전 확대론 러시
스위스 에너지부 장관은 8월 말 “에너지 공급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을 가능하게 할 원자력법 개정안을 올해 말까지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위스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했고, 2017년 국민투표로 탈원전 정책을 확정했다. 이탈리아의 환경에너지부 장관도 지난 7월 “10년 내 가동을 목표로 소형모듈원전(SMR) 투자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2050년까지 원전이 전체 전력의 11% 이상을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1987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을 결정한 데 이어 1990년 마지막 원전 가동을 멈춘 ‘탈원전 1호국’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보다 앞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은 2030년까지 원전을 1개만 남기고 모두 폐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전 비중을 15%에서 25%로 높이고, 2050년까지 최대 8기의 원전을 더 짓기로 했다. 원전이 전체 전력의 70%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2021년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신규 원전 14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노후 원전을 폐쇄해 원전 비중을 50%로 낮추겠다고 한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스웨덴도 2023년 우파 정부 주도로 2045년까지 최소 10기의 재래식 원전과 다수의 소형모듈원전 건설 방침을 밝혔다. 1980년 국민투표에서 단계적 원전 폐기를 결정한 뒤 12개의 원자로 중 6기를 폐쇄한 탈원전 정책을 43년 만에 포기했다. 벨기에는 2003년 탈원전 선언으로 2025년까지 원전 가동을 모두 중단하기로 한 결정을 뒤집고, 2022년 원전을 10년 더 가동하기로 했다. 네덜란드는 2022년 현재 1기인 원전을 3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원전 확대론이 본격화하고 있다. 2022년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해 원전 투자 확대의 길을 열었다. 택소노미는 탄소중립에 맞는 친환경 산업분류 체계로, 기업의 투자지침서 역할을 한다. 지난해 12월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미국·일본 등 22개국은 2050년까지 원전 발전량을 2010년 대비 3배로 늘리기로 결의했다. 올해 3월에는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원자력 정상회의’가 열렸다. 미국·중국 등 30여개국은 공동성명에서 기존 원자로 수명 연장, 원전 투자금 조달 등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전환점
원전은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이어지며 가동 중단과 폐기, 신규 건설 포기 등 탈원전의 거센 태풍에 직면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에 따른 에너지 안보 불안이 겹치면서 발전 비용이 싸고, 좁은 면적에서 대규모 전력 생산이 가능하며, 날씨와 밤낮에 상관없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원전이 ‘구원투수’로 급부상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아직 충분하지 못한 현실도 무탄소 전원인 원전의 몸값을 올렸다. 인공지능(AI) 등의 발달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 전망도 원전에 힘을 싣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원자력 정상회의에서 “원전의 안전한 가동 연장은 청정 에너지원의 대규모 확보를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들은 “과거 부정적이었던 원전에 대한 인식이 최근 몇년 사이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로 인해 역전됐다”고 평가했다.
아직 불확실한 탈원전 포기
하지만 원전으로 돌아서는 유럽 국가들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탈원전 철회를 단정 짓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스위스 에너지부 장관의 신규 원전 추진 발언은 연립내각 전체의 의사로 보기 힘들다. 스위스는 내각제이지만, 총리는 큰 권한이 없고, 각료들이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는 집단지도체제이다. 에너지부 장관은 원전에 찬성하는 우파 스위스국민당 소속이다. 또 스위스는 국가의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서 결정한다. 탈원전은 2017년 국민투표에서 결정됐다. 올해 6월 국민투표에서도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는 태양광전기법안이 찬성 69%로 가결됐다.
이탈리아의 원전 재추진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 시절에 국민투표까지 시행했으나, 국민의 90% 이상이 반대해 무산됐다. 현재의 원전 재추진 정책은 2022년 집권한 우파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의 최대 환경단체인 레감비엔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탈원전 포기에 회의적이다. 프랑스의 신규 원전 추진도 공수표가 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번째 원전 공사를 2028년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그의 임기는 2027년으로 끝난다. 원전의 운명은 차기 정부의 손에 달린 셈이다.
르네상스 회의론
원전이 에너지 위기 해결의 ‘구원투수’로 급부상하면서, 향후 원전 활용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이전과 같은 원전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원전 르네상스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원전 사고 위험성, 방사성 폐기물 처리 어려움 같은 안전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기준 강화 등으로 원전 건설비가 대폭 증가하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원전 건설은 경제성을 이미 상실했다”며 “앞으로 미국과 서유럽에서 신규 원전시장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유럽의 주요 원전건설 사업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면서 잇달아 좌초하고 있다. 일본의 히타치제작소는 영국 중부 앵글시섬에 원전 2기를 짓다가 공사비가 30조원 이상으로 급증하자 2019년 포기했다. 히타치는 이 사업으로 3조원의 손실을 보았다. 미쓰비시중공업도 2013년 수주한 튀르키예 시노프 원전 4기 건설의 비용이 2배로 급증하자, 2019년 두 손을 들었다. 프랑스 국영 전력회사(EDF)가 짓는 영국 힝클리 포인트 시(C) 원전도 완공 목표가 2025년에서 2030년으로 미뤄지고 건설비가 2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파티흐 비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유럽연합 내 원전 인프라 붕괴 등을 이유로 “(원전 르네상스는) 확실히 늦은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경제성 상실로 원전 사업을 포기한 미국의 지이(GE), 일본의 히타치·미쓰비시·도시바, 독일의 지멘스가 신규 원전 사업에 다시 뛰어들지 않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외국계 에너지기업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 기업들은 원전 기술과 핵심 인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지만, 원전 사업 중단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원전 르네상스가 맞다면 그들이 왜 시장에 뛰어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원전 투자 확대의 기대를 낳은 유럽연합 그린 택소노미가 확정된 이후 전세계 에너지시장 흐름도 회의론에 힘을 싣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6월 발표한 ‘2024 세계 에너지 투자’를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듬해인 2023년 재생에너지 투자는 7350억달러로, 원전의 660억달러를 압도했다. 올해 원전의 투자 전망은 78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8% 증가가 예상되지만, 재생에너지도 7710억달러로 늘어나 10배 전후의 격차는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세계 발전시장 비중도 2020년 재생에너지가 11.7%로, 원전의 10%를 처음 앞지른 이후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2023년에는 재생에너지가 15.9%로, 원전의 9.1%보다 6.8%포인트 많다. 오는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 33.3%, 원전 9.4%로 격차가 23.9%포인트에 이를 전망이다.
각국이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하는 소형모듈원전의 전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의 블룸버그는 “여러 국가가 소형모듈원전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대량 생산 시스템 구축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인해 개발 비용이 늘어나, 투자자들이 소형모듈원전 기술의 실현 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지난해와 올해 준공한 보글 원전 3·4호기와 핀란드가 지난해 4월 가동에 들어간 올킬루오토 원전 3호기를 2022년 이후 원전 르네상스와 직접 연결짓는 한국 보수언론의 보도는 전형적인 아전인수 격의 부풀리기라고 할 수 있다. 보글 3·4호기는 2012년 사업을 시작해 2016년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건설비가 2배로 폭증하고 투자사인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하면서 7~8년 늦어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글 원전이 ‘원전 부흥’의 시작이 아니라, 미국의 마지막 대형 원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올킬루오토 3호기도 애초 2009년에 완료됐지만, 각종 기술 결함 등으로 가동이 14년 늦어졌다.
기회와 위기의 공존
한국은 26기의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에 이은 원전 5위 국가다. 건설 중인 울산 울주군의 새울 3·4호기와 윤석열 정부가 최근 건설을 재개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까지 완료되면 총 30기로 늘어난다. 한국은 뛰어난 원전 건설 실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프랑스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원전 활용론의 부상은 한국 원전산업계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한국이 경쟁국과 달리 원전 건설에서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원전 10기 수출과 일자리 10만개 창출’을 목표로 내세웠다. 보수언론은 체코를 시작으로 목표 달성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앞서간다. 체코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 뒤 “현지 기업의 60% 참여”를 요구했다. 에너지업계의 한 임원은 “체코 원전의 계약금액이 24조원이라고 해도, 체코 요구를 수용하면 순수하게 한국에 돌아올 몫은 10조원 정도”라며 “공사 기간 10년을 감안하면 연간 순수출 효과가 1조원 정도로, 올해 수출 목표 6800억달러(한화 920조원)의 0.1%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 원전 생태계에 미치는 긍정 효과와 향후 추가 수주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체코 사업의 경제적 가치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보다 크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원전 르네상스론에 취해서 김칫국부터 마시다가는 또 다른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일부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체코 방문에 맞춰 “2035년까지 1600조 원전시장이 열린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 수주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보수언론은 “1천조 원전시장 열렸다”, “2030년까지 세계 각국이 건설을 추진하는 400기 신규 원전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축배를 들었지만, 결과는 헛물만 들이켠 꼴이 됐다.
한국의 선택
에너지 전문기관들은 원전 르네상스론에 취해 원전에만 ‘올인’하고, 시급한 과제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가장 경계한다. 에너지전환포럼이 최근 발표한 ‘재생에너지 혁명 현황과 시사점’을 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8.7%에 불과하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유럽연합, 중국, 미국은 각각 34.3%, 22.2%, 20.1%로, 한국의 2~4배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시급한데 현실에서는 재생에너지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지는 형국이다. 정부는 송배전 투자 차질로 전력망 운용에 어려움이 가중되자, 지난 5월 호남·충청·제주에서 태양광·풍력 발전의 전력망 접속을 제한하며 사실상 신규 투자를 막았다. 기후위기 대응 엔지오(NGO)인 푸른아시아의 이인형 전문위원은 언론 기고에서 “한국이 원전 르네상스론에 취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불장난과 같다”며 “외국 기업들이 요구하는 알이100(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충당하자는 국제 캠페인) 이행을 충족하지 못하면, 주요 품목의 수출이 3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기관의 경고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지난 7년간 극과 극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부족한 가운데 원전 신규 건설 백지화, 원전 공사 중단, 수명 연장 철회 등 탈원전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았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지상주의’에 빠져 재생에너지는 뒷전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문 정부가 원전에 너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윤 정부는 너무 급가속하는 셈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이 이념과 정치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위험하고, 미래와 후손을 생각해 합리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는 “전세계가 원전을 필요악으로 보고 있어 앞으로 일정 부분 시장 확대가 예상되기 때문에 우리도 수익성 확보를 전제로 원전 산업의 기회를 살릴 필요가 있지만, 과도한 원전 르네상스론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 정책이 ‘탈원전’과 ‘원전 올인’ 중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 조화를 찾아야 하고, 태양광에 이어 풍력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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