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노란 문 /이주현
미안하다더니 휴대전화마저 꺼 놓았죠
선생님 집 대문 경첩에 기름칠하고, 녹을 긁어내고,
페인트칠하고 싶어요. 노란색 괜찮죠? 봄이가 좋아할까요
오늘 선생님 집에 들렀다 돌아오던 길, 우리가 처음 만났던 벚나무 앞을 지나갔습니다. 나무 위로 얼음 조각 같은 낮달이 보였고요. 앙상한 가지 아래에는 강아지풀, 웃자란 쑥, 이끼가 제멋대로 피어있었죠. 이끼 위엔 메마른 나뭇잎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고요. 우리가 만났던 계절엔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었던 맥문동은 까만 열매를 달고 있었어요. 고만고만한 풀 사이에 키 큰 털머위가 고개를 길게 뺀 채 노란 꽃을 뽐냈어요. 상큼한 레몬 빛의 꽃은 마치 햇살 좋은 해안 절벽에 핀 듯했고요. 잎은 한적한 시골 밭고랑에 삐져나온 호박잎처럼 정겹게 보였어요. 머위처럼 꽃과 잎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식물이 또 있을까요? 마치 선생님과 제 사이처럼요. 선생님도 기억하고 있나요? 저는 다 외워버린 영화처럼 우리의 첫 만남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웃음이 나옵니다.
*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날 저녁, 저는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온 길이었어요. 전날 봄비가 와서 가지마다 벚꽃이 눈송이처럼 피어있었죠. 꽃이 한가득 핀 벚나무를 쳐다보다 나무 뒤 잡초 속을 휴대전화 플래시로 이리저리 비추던 선생님을 보게 되었어요. 뭔가 소중한 것을 찾는 듯해, 저는 머뭇거리다, “뭐 잃어버리셨어요? 도와드릴까요?”라며 나무 뒤쪽으로 다가갔죠. 그러고는 뭔가 물컹한 것을 밟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저는 허둥대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놀란 선생님은 “어머, 어떡해!”하며, 저의 엉덩이를 휴지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고 미안해요, 아가씨”라고 말함과 동시에, 나무 뒤쪽에 있던 강아지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죠. 안절부절못하던 선생님은 대뜸 저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죠. 제가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댁이 근처라며 선생님 집에서 바지를 갈아입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자, 선생님은 “저 이상한 할머니 아니에요. 우리 집이 코 앞인 데다, 딸 주려고 사둔 새 바지가 있어요.”라고 했죠.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린 탓이었을까요? 대답을 망설이다 저도 모르게 양손을 엉덩이에 갖다 댔죠. 손까지 더럽히게 된 저는 선생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을 따라가던 길, 선생님의 뒷모습과 강아지, 둘 사이에 연결된 강아지 줄과 그 실루엣을 둘러싼 노란 가로등 불빛이 너무도 따스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어깨 위로 떨어지던 꽃비와 선생님과 이어진 그림자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장면으로 제 가슴속에 박혀 있습니다.
사실 꽃비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떠난 후 벚꽃이 피고 버찌가 열릴 때, 선생님을 떠올리며 제 기억 속에서 꽃비를 뿌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선생님 집은 그 골목 끝에 있는 주택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대문을 열며 저더러 먼저 들어가라고 했죠.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저는 밝은 가로등이 새삼 야속했습니다. 양손을 어정쩡하게 든 채 몸을 틀어 게처럼 옆으로 걸어 마당 안으로 들어갔죠. 선생님은 아차 싶었는지 저를 앞질러 가서는 현관문을 연 채 기다려주셨어요. 양손을 쓸 수 없어 발뒤꿈치로 양쪽 운동화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 내부는 목재를 많이 사용해 아늑한 분위기였죠.
선생님의 안내로 욕실에서 손부터 씻었습니다. 손바닥과 손가락을 꼼꼼히 씻었어요. 욕실 장을 여니, 수건이 너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어 한 장을 꺼내기가 미안할 정도였죠. 손을 닦은 다음 수건을 수건걸이에 걸고, 휴지를 여러 겹 말아서 세면대 위에 있는 선반에 두었습니다.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휴지 위에 올려두고는, 소매를 걷어 손 전체와 손목 위, 손톱 사이사이까지 꼼꼼하게 씻었어요. 마치 수술방에 들어가는 의사처럼요.
제가 손을 닦고 나오자, 선생님은 저를 부엌 옆 방으로 안내하고는 서랍에서 새 바지를 꺼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바지를 세탁해서 돌려주겠다며, 저더러 입었던 바지를 방바닥에 두고 나오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방문을 닫고 나가자, 저는 옷을 갈아입고 방을 한 번 둘러 보았습니다. 짐이 거의 없고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어,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벗은 바지를 든 채, 옷은 제가 가져갈 테니 비닐만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강아지가 제 발을 핥기에, 선생님에게 강아지가 몇 살인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두 살이라고 하자,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강아지는 누가 키우지?’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마치 제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 딸이 타지에 가서 순심이를 돌보고 있다고 했죠. 저는 차를 권하는 선생님의 친절도, 큰길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선생님의 제안도 뿌리치고 집을 나왔습니다. 따님이 타지에 갔다는 얘기에 남편이 떠올라 울컥했거든요.
다음날에야 선생님 집 욕실에 두고 온 반지가 생각났습니다.
‘아, 내가 여태 결혼반지를 안 빼고 있었구나!’ 싶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스스로 빼낼 용기가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잃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찾으러 갈까, 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부딪쳤습니다.
결국, 선생님 집 앞에 찾아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문 앞을 서성였어요. 따님의 바지를 넣은 쇼핑백을 든 채로요. 30분 가량 지났을까요?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쓰스스 치마 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딱, 똑, 똑 상추인지 고추인지 채소 따는 소리도 들렸고요. 저는 초인종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갖다 댔지만, 누르지 못했어요. 다행히 순심이가 검은 철문을 향해 짖기 시작해, 선생님이 밖에 누구냐고 물었죠. 제가 “어젯밤에 집에 방문했던 사람인데요”라고 하자, 선생님은 검은 철문을 열어주며, 환하게 웃어 주셨죠.
선생님에게 한 번도 말 한 적 없지만, 선생님 얼굴에서 돌아가신 제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살짝 까무잡잡한 예쁜 얼굴에 멋쟁이 할머니셨죠.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저에게서 선생님 딸을 보았을까요? 선생님은 제가 궁금하지 않았나요? 결혼은 했는지, 누구와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요.
*
이제야, 선생님에게 제 얘기를 하게 되네요. 저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언젠가부터 연금 부정수급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고, 저는 그런 부정수급자를 찾아내는 일을 해요.
부정수급은 수급자나 그 유족이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연금을 받는 행위를 말해요. 수급자가 사망하면, 유족이 수급자의 사망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데요. 유족이 망인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우편물을 받아 마치 수급자가 살아있는 척 망인의 연금을 계속 받는 예가 있고요. 수급자의 배우자가 재혼 사실을 숨기고 유족연금을 받는 예도 있어요. 저희끼리는 부정수급자를 ‘연금 뤼팽’이라고 불러요. 저희 부서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고, 부정 지급된 연금에 대해 환수 조치를 합니다. 부정수급이 적발되면, 국민연금일 경우 국민연금법위반죄로 처벌받고요. 공무원연금은 사기죄로 처벌받아요. 부정수급에 대하여 사기죄로 재판받게 되면, 통상 부정 지급 받은 연금 1억 원당 징역 1년 정도 선고받고요. 선고받기 전에 일부라도 반환하면 형이 조금 줄어들고, 전부 반환하면 집행유예를 선고받아요.
공단에서는 진료기록과 경찰청 실종 기록 등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부정수급 조사 대상자를 선정해요. 그럼 직원들은 수급자와 통화를 시도합니다. 고령이라 통화가 힘들 경우, 보호자나 의료인이 영상통화로 수급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안 되면, 우편으로 ‘수급자와 연락이 계속 안 되면 연금 지급을 정지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보내요. 그래도 답변이 없으면, 저희 직원들이 주소지로 방문합니다.
얼마 전에는 수년간 안방에 아버지의 시신을 방치한 아들이 뉴스에 나왔는데요. 아버지의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연금을 ‘백골 연금’이라고 불러요. 모든 부정수급에는 제각각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데요. 그 사연을 참작할 권리가 공단 직원에게는 없답니다.
제가 적발한 사례 중에는, 여자가 남편이 죽고 나서 유족연금을 받고 있었는데, 재혼하고서도 유족연금을 계속 받고 있던 경우가 있었어요. 유족연금은 수급자가 사망해도, 배우자가 본래 연금의 40~60% 상당액을 받는 것인데요. 재혼하면 받을 수 없어요. 그 부정수급자는 재혼은 했지만, 전 남편 자녀의 양육비 명목으로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 부정수급자는 유족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법원에 혼인무효소송까지 제기했어요. 새 남편 사이에 혼인 신고는 하였지만,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어요. 혼인 신고만 안 했더라면, 유족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저는 그때 법이란 게 얼마나 엉성한지 깨달았어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 동료가 부정수급 조사 대상자에게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고, ‘수급자와 연락이 계속 안 되면 연금 지급을 정지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보냈음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동료가 집으로 찾아갔지만, 가족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경찰과 함께 방문했고, 그래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결국 경찰이 부른 소방대원이 강제로 문을 열었어요. 집에서는 악취가 진동했고, 작은 방에서 이불에 돌돌 싸인 백골 상태의 시체가 발견되었어요. 시체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문틈에 초록색 박스 테이프가 여러 겹 발라져 있었대요.
아내가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연금 전액을 받고 있었는데요. 발각되었지만, 부정수급자는 받은 연금을 돌려줄 돈이 없었습니다. 결국,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부정수급자에게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아들이 있어, 어머니가 일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교도소에 가야 했기에, 모자는 생이별하고, 아들은 장애인 시설로 보내졌어요. 아들은 성인이었지만 지체 장애가 있어 정신 연령이 아이와 다름없었다고 해요.
그 아들이 장애인 시설로 보내지던 날, 제 동료는 그 집에 찾아갔었나 봐요. 동료는 자기 일을 했을 뿐인데요. 자기가 한 일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현실에 괴로워했습니다. 동료는 부정수급자의 아들 사진과 함께 아들의 일상을 적어 부정수급자에게 편지를 보냈는데요. 교도소에서 온 답장은 제 동료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대요. 그래도 제 동료는 계속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부정수급자는 모범수로 선정되어 형기의 3분의 2를 채웠을 때 가석방 되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제 동료는 무척 기뻐했어요. 모자가 근 2년 만에 상봉하게 되었죠. 근데, 참 이상한 일이에요. 제 동료는 그 부정수급자의 출소 직후에 퇴직했습니다.
그 동료가 제 남편이었어요. 남편은 저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떠나는 날 전화로 통보했어요. 어느 자연휴양림에 있는 숲속의 집 청소 일을 하기로 했다면서요. 미안하다더니 휴대전화마저 꺼 놓았죠. 그냥 한순간에 남편이 제 인생에서 증발해버린 거예요. 처음엔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났어요. ‘찾기만 해봐!’라고 별렀죠. 그러다가 제가 너무 미운 거예요. ‘괜찮다는 남편 말을 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지? 남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는데, 미련한 내가 눈치를 못 챘던 걸까?’라는 생각들이 조금씩 단어와 어조를 바꾸어서 머릿속에서 요동쳤어요. 머릿속 회로가 저에 대한 원망, 분노, 후회 외엔 다른 생각은 못 하도록 구조가 바뀐 것처럼요. 그냥 제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어요.
얼마 뒤 저는 요양 명목으로 6개월간 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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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당받은 부정수급 조사 대상자 중 한 사람이 임현옥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떠난 지 1년 만에 선생님의 이름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죠. 주소지도 제가 알던 그 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하셨고, 매월 연금 수령액은 370만 원이며, 1년 전부터 의료기록이 없다고 되어 있었어요. 예상 부정수령액은 1년 동안 4,440만 원이었습니다.
저는 놀라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기품있는 말투라던지, 제가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찬찬히 하라며 기다려주시던 모습이 떠올라, ‘아, 선생님이셨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라도 선생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희미한 기대에 설레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무실 전화기로 제가 알던 그 번호로 전화했습니다. 한참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아, 끊으려는데 “여보세요?”하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젊은 여자분 목소리였어요. 저는 “안녕하세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수급권 확인 차 전화했습니다. 임현옥 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를 바꿔드리겠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어요. 얼마 뒤, “전화 바꿨습니다”하는 주름진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자, 천천히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고 묻는 말에 조곤조곤 대답했습니다.
다른 직원은 모르겠지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요. 초보 연극배우의 어설픈 성대모사를 듣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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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처음 만났을 때는 남편이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무렵이었어요. 반지를 찾으러 선생님 집에 다시 방문했던 날, 선생님은 따뜻한 차를 주셨죠. 그때 식탁 의자에 쌓인 건강용품 상자를 보고 선생님이 처한 상황을 짐작했어요. 그 건강용품 업체가 어르신들을 상대로 강매를 한다는 건, 제가 직업상 어르신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정보였습니다.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신용카드와 구매 영수증을 받아, 카드사에 할부항변권을 신청한 후 판매처에 내용증명을 보냈죠. 일주일 후 카드사 민원담당자가 처리되었다는 연락을 줬고, 저와 선생님은 물품을 들고 판매처에 돌려주러 갔습니다. 선생님은 고맙다며, 제게 뭘 먹고 싶냐고 물었죠. 조금 더워지기 시작했고, 땀을 흘린 뒤라 저는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린 프랜차이즈 빙숫집에 갔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팥빙수가 너무 달았을 텐데, 선생님은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서 저는 외할머니가 직접 쑨 팥으로 만든 팥빙수 얘기를 꺼냈죠.
얼마 후 선생님은 저를 집으로 초대해 직접 끓인 팥과 손수 찐 찰떡을 올린 팥빙수를 주셨습니다. 그 팥빙수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은 팥알 같은 땀을 흘리셨겠지요. 선생님의 요리 솜씨에 감탄하며, 저는 달걀부침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고 했어요. 선생님과 마주 앉아 말없이 팥빙수를 먹는 게 어색해서 꺼낸 말이었는데, 선생님은 제게 요리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어요.
선생님과 요리하는 날은 휴직 당시 제가 유일하게 타인과 교류하던 시간이었어요.
그즈음 선생님 집 길 건너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차량 통행량이 많아졌습니다. 선생님은 순심이랑 산책할 때 불안하다고 하셨죠. 선생님 집에 방문하는 길에, 한 아이가 그 도로를 지나가는 걸 보게 되었어요. 위험해 보였어요. 저는 민원 앱에 선생님 집골목 끝 사거리 사진을 올리고 건널목이 필요한 이유를 썼습니다.
한 달 뒤 사거리에 건널목이 생겼죠. 공사가 시작되고 도로 위에 하얀 페인트가 기계로 뿌려지던 날, 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건널목이 완성되던 날 우리는 순심이와 함께 그 건널목을 건너고 또 건넜죠. 선생님은 저를 민망할 정도로 치켜세웠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날씨가 좀 시원해지면 선생님 집 대문을 노란색으로 칠하기로 한 거 기억하세요?
선생님이 알려준 많은 요리 중, 조개를 잘게 다져 볶은 걸 나물 무칠 때 넣는 것과 김치전을 할 때 대패 삼겹살을 먼저 굽고 그 위에 김치 반죽을 얇게 올리는 건 최고의 비법이에요. 식초가 단백질을 단단하게 한다며, 생선을 구울 때 식초에 헹궈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셨죠. 제가 “그래서 요리를 과학이라고 하는군요!”라고 하니, 선생님이 크게 웃으셨죠. 제 외할머니처럼 저의 사소한 말에도 크게 웃어 주셨어요.
감자조림을 만들 때는, 제일 먼저 감자에 물엿만 넣고 볶으셨어요. 그때 감자에서 물이 빠져나오는 걸 보고, 왜 이러냐고 물었죠. 선생님은 삼투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삼투압은 소금이랑 연관된 원리인 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지식수준이 드러날까 봐 차마 선생님에겐 묻지 못하고,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했어요. 삼투현상은 농도가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용액이 있을 때,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농도가 높은 쪽으로 용매가 이동하는 현상을 말하는 거래요. 삼투압이 안과 밖의 농도를 서로 맞추게 되는 작용이라면, 요리를 배우는 시간 동안 선생님과 저 사이에도 삼투압이 작용되었을까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은 저에게 옮겨가고, 저의 뾰족한 마음은 선생님에게 옮겨 갔을까요? 선생님은 제가 카드사에 연락하고, 민원 앱을 이용하는 걸 보면서 제도를 이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 여름의 싱그러운 요리들 뒤로 작년 가을 이맘때쯤 선생님 집을 방문했을 때, 집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화 연락도 되지 않았어요. 그날은 같이 김치를 담그기로 한 날이었죠. 다음 날도 찾아갔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문자를 여러 차례 보내니,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연락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선생님과의 이별이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올지 몰랐어요. 김치 담그기 전날, 선생님은 미리 배추를 절여 두겠다고 하셨어요. 배추 절이는 일이 선생님께 무리가 되었던 게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행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한동안 선생님이 순심이와 산책하는 길을 맴돌았어요. 하지만, 선생님도 순심이도 만날 수 없었어요.
얼마 후, 저는 복직했습니다.
*
오늘 이미 상부에는 임현옥 씨와 통화가 되었다고 보고했지만, 저는 선생님 집에 방문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생님 집으로 향했습니다. 제 가슴에 박혀 있는 그 아름다운 장면이 변질될까 두려웠어요. 선생님을 따라 처음 걸었던 그 골목을 피해, 동네를 빙 둘러 다른 길로 갔습니다. 작년에 반지를 찾기 위해 선생님 집 앞에서 서성일 때가 떠올랐어요.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냥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미 임현옥 씨는 부정수급 조사 대상자에서 제외된 이후니까요. 발걸음을 돌리는데, 순심이가 멀리서 저를 보고 짖는 거예요. 순심이는 처음 보는 여자분과 함께 있었어요. 그녀는 잠을 못 잤는지 눈이 퀭하고 아파 보였죠.
“순심아, 오랜만이야.”
그녀가 순심이를 아느냐고 물었어요.
“여기 사는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어요”
저는 그녀의 양쪽 입매가 긴장으로 어긋나는 것을 봤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니는 아파서 강원도에 요양하러 가셨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임현옥 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따님의 옷 주머니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죠.
뒤늦게 제 소개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나온 박은영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 전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지금 강원도에 계신다는 임현옥 씨가 전화를 받으셨는데요.”
따님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저는 따님의 눈에서 두려움인지 홀가분함인지 혹은 둘 다인 것 같은 빛을 본 것 같았습니다.
따님은 저를 집 안으로 안내했어요. 생채기 많은 검은 철문이 끼이이 하며 힘겹게 열렸어요. 제가 철문을 잡고 마당으로 들어가는데, 문에서 녹이 묻어나왔어요. 양손을 부딪쳐 녹을 털어내려다, 양손 다 붉은 녹이 묻었습니다.
선생님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양손을 어정쩡하게 들고 마당을 지나, 현관에서 발뒤꿈치로 양쪽 구두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았어요.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빨래 바구니는 지저분한 빨래로 넘쳐났어요.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꼼꼼하게 씻는데, 반지가 없어 손 씻기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실 장을 여니 수건이 하나도 없었어요. 휴지를 뜯어 손을 닦고는, 휴지를 옷 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따님의 안내에 따라 부엌 식탁에 앉았어요. 싱크대에는 그릇이 잔뜩 쌓여있었고, 식탁은 잡다한 물건으로 빈틈이 없었죠. 따님은 지저분한 그릇을 몇 개 치우고, 컵 하나를 찾아 설거지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기다리는 동안 식탁을 대충 정리했습니다.
예전에 반지를 찾으러 왔던 날, 식탁 의자에 쌓여있던 건강용품이 떠올랐어요.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살갑게 구는 영업사원을 보며, 따님 생각이 나서 카드를 건네셨을 텐데, 제가 오지랖 넓게 나섰다는 걸 깨달았어요.
선생님과 함께 도라지를 다듬고 고구마 줄기를 벗기던 그 식탁에, 저는 따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따님이 머뭇거리기에,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따님은 지난 시간 동안 힘들었던 탓인지, 제가 선생님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간의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사람이 있었어요.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그 사람과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엄마를 볼 용기가 없어서 집을 나갔어요. 미혼모 시설에 있었는데….”
따님은 울음을 참아가며 말을 이었어요.
“엄마가 저를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몇 달 뒤,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안고 엉엉 울었어요.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을 잤어요. 다음날 늦게 눈을 떴는데, 엄마 몸이 너무 차가웠어요. 저 때문이에요. 제가 엄마 속을 너무 …. 엄마 머리맡에 편지가 있었어요. 여기 이 편지에요.”하며,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따님이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잠시만요. 편지 읽고 계세요.”라며, 따님이 후다닥 부엌 옆 방으로 달려갔어요.
저는 편지를 손에 쥐었어요. 편지를 읽을 용기가 없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도 없는 집에 허락 없이 들어와 있는 듯한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습니다. 선생님이 오랜 기간 투병 중이셨다는 부분까지 읽었어요.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저는 편지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텃밭이 있던 자리에 노란 야생 국화가 보였어요. 문득 시든 꽃을 정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심이는 늘 선생님 발치에서 잠들었는데, 노란 국화 사이에서 자고 있더군요. 마치 엄마 품에 안겨 행복한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어요. 다가가 등을 쓰다듬는데, 따님이 아기를 안고 나왔어요.
“죄송해요. 모유가 잘 안 나와서요. 아까 분유 사러 갔었는데, 애가 분유는 잘 먹질 않네요.”
따님이 아기를 추슬러 올리는데, 아기가 저를 보고 방긋 웃는 거예요.
“아, 너무 예뻐요. 이름이 뭐예요?”
“봄이에요”하며 따님이 봄이를 마주 안았는데, 봄이의 귀가 남들과 조금 달라 보였어요. 제 얼굴에서 당혹감을 읽었는지, 따님이 “소이증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따님에게 어떻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지 기억 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소이증에 대해 찾아봤어요. 태아의 귀가 형성될 때 이상이 생겨, 귓바퀴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거래요. 갈비뼈에 있는 늑연골이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그걸로 귀 재건 수술을 할 수 있는데요. 매우 어려운 수술이고, 여러 차례 수술해야 한대요. 저는 늑연골 이식술의 수술비며 수술 방법, 성공률, 회복 과정 등을 알아봤어요. 봄이의 뽀얀 얼굴이 떠올랐어요. 자지러지던 울음소리도요. 모유가 잘 안 나온다고 말하던 따님의 삐쩍 마른 모습도 떠올랐어요. 저도 모르게 모유에 좋은 음식이 뭔지 검색해본 거 있죠.
선생님,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책 읽어보셨어요? 동화책에서 강아지 똥은 민들레를 키우는데요. 우리를 이어준 강아지 똥은 저를 살렸던 걸까요? 선생님은 그때 제게 요리를 가르쳐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저를 먹이고 싶었던 거지요? 그때의 저는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어요. ‘배가 고프다’는 감각조차 없었고, 가끔 내키면 초콜릿이 코팅된 아이스크림 바만 먹곤 했었거든요.
아직 남편에게 연락은 없지만, 그 정 많던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교도소에 있는 부정수급자에게 편지를 보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제가 집에서 요리하다 실패한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세요? 선생님이 저보다 요리를 잘하는 이유는 저보다 실패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저 선생님 덕에 요리사가 다 됐잖아요. 제 요리 못 먹으면 남편만 손해죠.
저는 예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 거 같아요. 조개가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진주질로 에워싸서 만들어 낸 진주처럼요. 비록 남편이 저에게 상처를 줬지만, 선생님이라는 진주질을 만나 저는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그동안 저는 틈날 때마다 전국으로 여행을 다녔어요. 지난 주말에는 부산에 다녀왔어요. 미포에서 송정으로 가는 해변 열차를 탔는데요.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햇빛 조각에 마음을 뺏겼어요. 수많은 물비늘끼리 서로 누가 더 반짝이는지 겨루는 것 같았죠. 짠짠짜라짠, 찬차란찬찬 하면서요. 홀리듯 ‘해월 전망대’ 역에서 내려 벤치에 앉아 윤슬을 넋 놓고 바라봤어요. 해가 넘어가려고 하자, 어느 순간 서로 경쟁하던 물비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모이는 거예요. 한 줄로 줄을 서기에, 줄 맞춰 바닷속으로 들어가나 했더니,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는 거 있죠.
문득 인생은 튜브를 타고 파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파도에 의해 원하는 곳으로 향할 수도, 혹은 멀어질 수도, 꼬르륵 가라앉을 수도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작은 손짓만으로도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고, 누군가는 힘찬 발차기에도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없잖아요.
저는 그동안 튜브에 몸을 맡긴 채, 해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구경만 했던 거 같아요. 이제 힘껏 내 손으로 물을 밀고, 내 발로 파도를 차 볼까 해요.
선생님, 내일 선생님 집 대문 경첩에 기름칠하고, 녹을 긁어내고, 페인트칠하고 싶어요. 노란색 괜찮죠? 봄이가 좋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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