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와 대법원의 20년 넘은 갈등 재현되나

박용필 기자 입력 2022. 6. 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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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도 위헌성이 있다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한 헌법재판소의 30일 결정으로 두 기관 간 해묵은 갈등이 1997년 이후 24년 만에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헌재의 이날 결정 취지는 ‘재판 과정에서의 법률의 해석’도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판결에 적용된 법 조항의 위헌성 여부만이 아니라 법원이 법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해서도 헌재가 위헌성 여부를 따질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판결을 취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헌재는 “어떤 조항은 위헌”이라고 선언하고 통째로 없애버리는 ‘단순 위헌’ 결정뿐 아니라 “법 조항 자체는 위헌이 아니지만 위헌적으로 해석할 경우에 한해 위헌”이라는 ‘한정위헌’ 역시 위헌 결정의 한 종류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의 재판은 그 자체로 헌재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런 재판에 대해 예외적으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헌재의 이번 결정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헌재는 1997년에도 이길범 전 의원이 제기한 소득세법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한정위헌을 존중하지 않은 대법원 확정 판결을 취소한 바 있다. 사상 초유의 재판 취소 사태였다. 당시 대법원은 ‘헌재는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따질 수 있을 뿐, 헌법상 법률 해석에 대한 권한은 대법원에 속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또 한정위헌은 헌법재판소법에 명시되지 않은 변형 결정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한정위헌은 법률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는 취지의 결정인 만큼 위헌이 아니라 합헌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두고 ‘헌재가 대법원의 상급기관임을 선언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한다.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헌재가 취소할 수 있게 되면 ‘4심제’가 도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헌재의 결정이 오히려 위헌’이라고 반박한다. 수도권의 한 고참 부장판사는 “헌재가 실효성 없는 선언을 반복한 것은 국민은 뒷전으로 하고 자기 기관의 지위를 공고히하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재판이 장기간 공전될 수 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의 피고인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적법하게 판결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재심을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 헌재는 법원의 기각 결정을 ‘위헌’이라며 다시 취소하고,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피고인이 심리 지연에 대해 다시 헌법소원을 내는 식의 절차가 다람쥐 쳇바퀴 무한 반복될 수 있다. 헌재가 이날 위헌 결정한 사건 청구인의 상황이 그와 비슷한 경우이다.

문제는 헌재와 대법원 간 갈등을 정리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위헌이라고 주장해도 대법원은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낼 수 없다. 대법원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것도 헌재가 다툼의 당사자라 불가능하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문제의 핵심은 국민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합리적이냐 하는 것이다. 3심제냐, 4심제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대법원 판단과 헌재 판단이 다른) 판결 불일치로 국민들이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한 방법은 대법원과 헌재의 상호존중 뿐”이라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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