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먼저 양해를 구한다. 허접한 표현이 가득한 제목이다. 모쏠, 동료 아내, 슈퍼카…. 막장 드라마에나 어울릴 법한 어휘의 병렬이다. 맞다. 어그로다. 그러나 폄훼할 뜻은 없다. 오히려 반대다. 잡스러움은 이들의 유쾌, 상쾌, 발랄한 이벤트에 대한 추앙의 의미다. 모쪼록 넉넉한 이해를 바란다.
크리스마스 주말의 깜짝 이벤트
어제(한국 시각 24일) 오후였다. 현지 시각은 금요일이다. 크리스마스 주말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가뜩이나 SNS가 활발할 때다. 그중에서도 유독 뜨거운 게시물이 있었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동영상이다.
초인종이 울린다. 택배 도착을 알린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수신자를 확인한다. 집 안의 여성은 빼꼼히 밖을 내다본다. 낯선 차 한 대가 집 앞에 주차됐다. 동시에 뒤에서 누군가 키득거린다. 남편이다. 아마 미리 짐작했던 것 같다.
“저거 당신 차야. 쇼헤이가 준 거야. 오타니가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어 했어.”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가린다. 그리고 남편과 차를 번갈아 본다. 반응은 SNS 멘션으로 나타났다. “문을 열자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고마워요, 오타니.”
동영상의 주인공은 켈리 부부다. 다저스 투수 조 켈리와 아내 애슐리다. 이름만 등장하는 조연은 새로운 팀원 오타니 쇼헤이다.
이 장면은 현지 미디어를 한껏 달궜다. 거의 모든 매체들이 주요 기사로 다뤘다. 아마 오타니의 다저스 입단만큼이나 관심이 집중된 느낌이다. 왜 아니겠나. 크리스마스에 딱 맞는 이벤트다. 깜짝 퍼포먼스와 훈훈한 감동이 모두 담겼다.

미세스 켈리의 캠페인 ‘17번 줄게 다저스로 와라’
이유는 짐작이 간다. 애착 등번호를 양보한 덕이다. 17번은 켈리가 대학(UC 리버사이드) 시절부터 달았던 숫자다. MLB 초기인 카디널스와 레드삭스 시절에는 58, 56번을 써야 했다. 다저스 1기 때에야 백넘버를 되찾았다. 그러니까 2019년부터 5년째 유지하는 17번이다.
물론 선물은 관례다. 등번호를 양보하면, 흔히 물질적인 보답이 뒤따른다. 가장 많은 품목이 시계다. 추신수의 경우가 그랬다. SK 와이번스에 입단할 때, 이태양이 백넘버를 넘겼다(이때도 17번이었다). 당시 명품 시계를 전달해 화제가 됐다. 스위스 브랜드인 로저 드뷔(Roger Dubuis)의 엑스칼리버 에센셜 모델이었다. 시가 200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품이다.
이번 켈리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단순히 번호를 준 것 이상이다.
오타니의 쟁탈전이 한창일 때다. 미세스 켈리가 온라인 캠페인을 벌였다. ‘Ohtake17’라는 해시태그를 건 활동이다. ‘오타니가 17번을 갖게 하자’는 의미다. 그러니까 ‘다저스에 와서 남편 번호를 달아라’는 뜻이다. 허락을 넘어서, 적극인 추천인 셈이다.
이를 위해 8개월 된 넷째(아들)의 이름도 바꿨다. 카이(Kia)를 쇼카이(ShoKai)라고 개명했다. 오타니 쇼헤이를 연상시키는 발음이다. 팔로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물론 진짜 이름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동영상도 제작했다. 17번 유니폼과 각종 물품을 집 앞뜰에 널어놓는 퍼포먼스다. 후반에는 남편도 등장한다. 시무룩한 표정을 돌려세운다. 그러더니 등에 ‘KELLY’라고 쓰고, 숫자 99를 크게 적는다. 17번은 오타니에게 주고, 이제는 99번을 달게 됐다는 표현이다.

캠퍼스 커플…대학시절은 축구 선수 겸 치어리더
아시다시피 오타니 영입을 위해 여러 팀이 총력전을 펼쳤다. 구단 고위층과 감독만 뛰는 게 아니다. 간판급 선수들도 참전한다. 우리 팀에 오라는 설득을 위해서다. 하지만 미세스 켈리의 ‘Ohtake17’ 캠페인이 가장 특별했다는 게 팬들의 평가다.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은 애슐리 팍스다. 부친이 야구 선수였다. 데릭 팍스라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포수였다. 1992~1994년까지 3시즌(45게임)을 뛴 게 메이저리그 경력의 전부다. 조 켈리와의 접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35살 동갑인 둘은 캠퍼스 커플이다. UC 리버사이드를 함께 다녔다. 조 켈리는 야구팀의 그저 그런 불펜 투수였다(후에 빠른 볼의 가능성을 인정한 카디널스가 3번으로 지명했다). 반면 애슐리는 교내 최고의 스타였다. 여자 축구팀의 간판이면서, 치어리더 팀의 인기 멤버였다.
2학년 때 남자가 먼저 데이트 신청을 했다. 로맨틱 영화 ‘PS I Love You’를 함께 본 것이 시작이다. 아마도 꽤 긴장했던 것 같다. 입장권을 끊으려다 줄에 걸려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졸업할 때까지 붙어 다녔다. 마이너리그 2년차였던 2013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바른생활 이미지와 어울리는 전기차 선물
다시 산타클로스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오타니가 선물한 슈퍼카는 세계적인 독일제 명차 포르쉐다. 그런데 구체적인 모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동영상에 얼핏 드러난 모습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네티즌 수사대가 있다. 이들은 타이칸 모델로 강력히 추정한다. 포르쉐가 생산하는 전기차다.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은 한국 시장 기준으로 1억 3000만 원에서 2억 4000만 원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견해는 꽤 설득력이 있다. 일단 오타니는 포르쉐와 연관성이 깊다. 지난 해 8월 홍보 대사 계약을 맺고, 활동 중이다. 일본 내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도 포르쉐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소유 여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또 그의 바른생활 이미지와도 부합한다. 환경을 위해 화석 연료 대신 전기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미국에서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구입한 것이 테슬라의 ‘모델X’ 였다. 일론 머스크도 반색했던 뉴스였다.
한편 조 켈리 본인은 며칠 전까지도 딴청이다. “선물? 생각한 리스트는 있지만 노 코멘트하겠다”며 주변을 웃겼다. 동료 투수인 워커 뷸러의 제보도 있었다. 그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조(켈리)가 요즘 자동차 딜러 샵을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산타 오타니는 전형적인 모쏠(모태 솔로)로 알려졌다. 가끔 열애설이 돌기도 했지만, 대부분 낭설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의 증언도 비슷하다. 초콜릿이나 편지를 받기는 했지만, 누굴 사귄다는 말은 없었다. 조금 야릇한 얘기만 나와도 안색이 굳어지는 스타일이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니혼햄 시절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의 기억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혼자 방망이 가지고 배팅 케이지로 들어가더라. 너무 그래서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 모쏠 치고는 대단하다. 마음(선물)을 전하는 타이밍과 방식, 화끈한 씀씀이. 역시 차원이 다른 MVP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