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천’ 시골마을이 찾은 저출생 해법…‘미래 부모’들의 일자리

곽정수 기자 2024. 10. 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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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아시아미래포럼
인구 3천명선 올해 처음 깨졌지만
이웃 마을 비해 감소세 완만 평가
마을기업 ‘전원플라자’ 자리 매김
일자리 제공·인구 유입 ‘선순환’
교육·주거 지원 등 삶의 질도 힘써
“정부 예산 적재적소에 배분 필요”
지난 3월 일본 군마현 가와바촌 신축 청사에서 열린 ‘가와바 페스(티벌)’ 에서 참석자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행사는 마을 이주를 희망하는 외부 주민들을 위해 열렸다. 가와바촌 제공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저출생 위기를 정책 과제로 처음 인식한 것은 지난 1989년의 ‘1.57쇼크’ 때다.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가능한 15~49살 사이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종전 최저치였던 1966년의 1.58명보다 더 떨어지자, 일본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후 1994년 첫 종합대책인 ’엔젤 플랜’ 수립, 2003년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 제정 등 위기 극복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2명으로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간 출생아 수도 2022년 사상 처음으로 80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한국은 일본과 10~20년의 시차를 두고 저출생, 인구감소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도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 이후 20년 가까이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러다간 인구축소를 넘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결혼·출산·양육 지원 뿐만 아니라 출산휴가·육아휴직 활성화 등 일∙가정 양립이 필요하다. 또 주거·고용·교육 등 사회구조 개선은 물론 성평등을 포함한 사회문화 환경과 가치관 변화까지 전방위적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은 사회구조, 문화, 의식 등에서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일본의 성공과 실패, 시행착오가 한국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한겨레는 그 답을 찾아 지난 9월 초 일본을 방문했다.

“우리 마을에는 자녀가 서너명인 가정이 많아요.”

일본 군마현 가와바촌에 사는 사토 구니코(38)는 다섯 아이의 엄마이다. <한겨레>는 지난 9월4일 가와바 마을 신축 청사에서 그를 만났다. 사토의 자녀는 9살부터 2살 쌍둥이까지 4남1녀다. 그는 자녀를 여럿 둔 이유에 대해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마을 분위기인 것 같다”고 미소지었다. “주변에서 아이를 많이 낳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결혼 초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포기하려 했는데, 5년차에 첫아이가 생기고, 이후 세째아이까지 쉽게 이어졌다. 그렇게 끝나나보다 생각했는데, 2년 전 쌍둥이까지 얻었다. 그는 “출산축하금으로 넷째, 다섯째 아이를 합쳐 130만엔(한화 1200만원·현재는 축하금이 150만엔으로 증액됐다)을 받았다”고 말했다.

간호사 출신인 사토는 전업 주부를 하다가, 3년 전부터 마을 요양병원에서 주 3일 일한다. 그는 원래 도쿄의 종합병원에서 일했다. 13년 전 결혼과 동시에 전원마을인 가와바로 이주했다. 경찰인 남편은 도쿄 인근 출신인데, 전원생활을 동경하다가 군마현으로 근무지 변경을 자원했다고 한다.

가와바는 아이들의 소리가 많이 들리니, 다른 마을처럼 인구감소를 걱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올해 8월 기준 가와바 주민은 2999명으로, 처음으로 3천명선이 깨졌다. 10년 전인 2014년의 3464명에 비하면 13.4%가 줄었다. 일본 전체가 인구 감소로 몸살을 앓지만, 가와바 같은 일본 중산간 지역의 감소 속도는 더 빠르다. 군마현 내 35개 시정촌(일본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2040년까지 20개가 완전히 소멸하고, 가와바를 포함한 15개만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와바의 사정이 다른 마을보다 상대적으로 낫지만,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합계출산율이 일본 전체와 마찬가지로 하락세다. 2015년 2.13명에서 2019년 1.05명까지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0.76명으로 급락했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도야마 교타로(61) 가와바촌장은 “주변 마을에서는 인구 감소세가 완만한 우리 마을을 부러워하지만, 생존에 만족할 수는 없다”면서 “인구감소를 막고 합계출산율을 2022년 수준(1.48명)으로 올리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가와바가 인구 감소를 막고,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게 하려면 해법은 간단하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보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고,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핵심은 미래에 부모가 될 청년들이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와 소득이 있어야 한다. 가와바는 마을기업인 ‘전원플라자’를 중심으로 일자리와 소득 창출에 성공적으로 대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원플라자는 가와바의 주산업인 농업·임업과 관광업을 결합했다. 지역 특산물을 파는 농산물센터,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하는 식당과 치즈·요쿠르트·수제맥주 공장, 관광센터를 운영한다. 지역 명소로 자리잡은 전원플라자를 찾은 관광객은 지난해 260만명에 이른다. 나가이 쇼이치(61) 사장은 “청년들이 마을에서 생활하려면 소득이 있어야 하고, 소득이 있으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전원플라자가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득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올해 준공한 마을 청사는 가와바 발전을 상징한다. ‘100년을 내다보고 자주·자립마을 만들기’를 모토로 지었다. 정부 지원을 받은 400억원이 넘는 건축비는 인구 3천명의 작은 마을로서는 큰 규모다. 이웃 마을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외부 인구의 전입을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가와바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다른 마을에는 없는 차별화된 지원을 한다. 다섯자녀의 엄마인 사토는 자녀 양육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는 지원으로 “마을에서 100% 책임지는 자녀 의료비”라고 말한다. 일본의 다른 지역은 자녀 의료비를 정부가 일부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부모가 부담하지만, 가와바는 마을에서 전액 지급한다. 가와바의 의료비 전액 지원 대상은 원래 출생 이후부터 중학생까지였는데, 지난해부터 고등학생까지로 확대됐다. 가와바는 초·중학생을 위한 100% 무료급식도 추진하고 있다.

출생률을 높이려면 교육·주거 등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빠질 수 없다. 일본도 한국 못지 않게 교육열, 입시열이 뜨겁다. 자녀 교육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결혼이나 아이 출산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가와바는 교육을 마을의 경쟁력으로 만들려 한다. 현재 초등학생은 141명, 중학생은 85명인데, 학생 수가 계속 줄고 있다. 당장은 학교를 유지할 수 있지만, 향후 5~6년 뒤에는 장담할 수 없다. 미야우치 노부아키 가와바촌 교육장은 “학생 감소로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가와바가 교육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리면, 교육에 관심이 큰 부모들이 가와바에서 살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마현 안에서 이미 4개 학교에서 초·중학교 통합작업을 마쳤다.

가와바는 올해 4월부터 자녀가 있는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와 집을 신축하거나, 집을 사서 리모델링하면 1년에 최대 200만엔(약 1800만원)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3월에는 가와바로 이주를 희망하는 외지인들을 위해 상담해주는 ‘가와바 페스(페스티벌)’ 행사를 열었다. 당장이라도 살 집만 있으면 들어오겠다는 가족이 셋이나 있었다고 한다. 가와바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올해 10월 중에 2차 행사를 열 계획이다. 마을에 외지인이 살 여유 토지가 부족해서, 지난해부터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빈집 66채를 찾아냈다. 집주인에게 매매나 임대 의사를 확인해서, 이주 희망자와 연계시켜줄 계획이다.

가와바에는 고등학교가 없어,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어쩔 수없이 도시의 상급학교로 진학한다. 이는 다시 도시에서의 취업으로 이어진다. 청년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하려면 도시에 필적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과제다. 고바야시 다쿠미 건강복지과장은 “딸이 셋인데 모두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면서 “딸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게 가와바 부근에서는 도쿄 수준의 급여가 나오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전원플라자에도 지속적으로 급여인상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어린이가정청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고 저출생 예산도 크게 늘렸다. 하지만 가와바 같은 작은 행정단위인 시정촌에서는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교타로 촌장은 “학생들 급식지원비나 출산 축하금은 모두 마을 자체 재원으로 주는데, 정부가 예산을 적재적소에 잘 나눠주면 출생율도 자연히 올라갈 것”이라면서 “새로운 일본 총리(인터뷰 뒤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 선출)는 진정으로 어린이 정책에 대한 이해와 의지가 있는 사람이 선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와바/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김효진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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