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불편한 진실] AI가 열어젖힌 육체노동 전성시대
얼마 전 여성 도배사 두 명이 화제에 올랐다. 배윤슬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도배사가 되었다. 유튜버 김스튜는 영화 관련 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역시 도배사가 되었다. 이들은 책과 방송을 통해 기술직에 뛰어든 과정과 이 직업의 장단점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아직 소장으로 독립하지 못한 일당 도배사이지만 월 500만원 정도를 벌고 있다고 전한다.
나도 비슷한 사례를 알고 있다. 내가 ‘박소장님’이라고 부르는 교육 전문가가 있다. 그는 과거 한때 대치동에서 입시 상담으로 이름을 날리다 그만두고 10여년 전부터 공공적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아들은 일반고를 다니다 자퇴했는데, 자퇴 후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몸을 쓰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건축 목수가 되었다. 지금은 경력 7년차 중견 목수이고, 최근에 수입이 얼마쯤 되냐고 물어보니 월 700만원 정도라고 했다.
나는 대중강연을 할 때 종종 박소장님의 아들을 언급하곤 했다. 일단 소득이 괜찮다. 한국의 개인별 평균 소득(무소득자 제외)이 20대 후반 251만원, 30대 초반 312만원(2019년)임을 고려하면 20대 후반인 그는 벌써 또래의 두세 배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망도 괜찮다. 계절과 경기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산업재해율이 높기로 유명하고 건축 현장도 예외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서 꾸준히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손꼽을 만한 장점이 있다.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많은 일자리를 잠식할 것임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건축 목수의 일 가운데 자동화가 가능한 과업은 많지 않다. 로봇? 로봇이 활동 가능한 경우는 주로 공장이나 물류창고처럼 동선이 단순하고 표준화하기 쉬운 환경이다. 로봇으로서는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겹다. 정확히 말하면 계단을 오르는 건 가능하지만 그런 로봇은 복잡하고 비싸다. 더구나 몸을 틀고 손을 움직여 정교한 작업을 진행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전문가들은 건축이나 인테리어 공사 현장의 주요 직무 가운데 조적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일을 제외하면 한 세대 안에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낮다고 예측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의사와 간호사 중 주로 의사의 업무가 잠식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의사가 환자의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여 병명을 진단하는 일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쉬운 반면, 간호사가 환자를 달래며 붕대를 감고 상처를 처치하는 일은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흔히들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챗GPT로 대표되는 최근의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은, 단순 사무직은 물론 고도의 분석 능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고소득 직군이 광범위하게 위협받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연구 보고서 ‘고용의 미래’(프레이·오즈번, 2013)에 의하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에는 텔레마케터 같은 저소득 일자리뿐만 아니라 회계사 같은 고소득 일자리도 포함되어 있다. 월스트리트에 인공지능이 운영하는 ETF 펀드가 등장한 게 벌써 6년 전인 2017년의 일이다.
건축 현장으로 국한해도 도배, 목수뿐만 아니라 타일, 미장, 도장, 배관 등 인공지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일자리가 적지 않다. 소득 수준도 낮지 않다. 그런데 앞에 소개한 청년들은 일을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비공식적 관계 속에서 알음알음 배웠다. 전국의 특성화고등학교 가운데 이런 일을 배울 수 있는 학과는 극소수이고, 배운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에 이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전체적으로 현장의 요구와 학교 교육 사이에 상당한 불일치가 존재한다. 일반고의 위탁교육 또한 최근 참여율이 뚝 떨어지는 등 비슷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경향신문 1월 연속기사 ‘취업 무방비 일반고 졸업생’ 참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고등학교에서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 비율은 평균 46%(2016년 기준)다. 반면 한국의 직업계고 재학생 비율은 1980년 45%에서 2000년 36%, 2020년 18%로 현저히 낮아졌다. 교육당국이 지난 40년간 해온 일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대책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교육부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인공지능 시대에 직업계고가 ‘괜찮은 일자리’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려면 직업계고 거버넌스의 중심을 교육부에서 고용노동부로 변경하는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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