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K5 시그니처 블랙핏, 3천만원대의 가치.. 프리미엄에 손이 닿다
첫눈에 띈 것은 기아 K5의 세련된 디자인이다. 국산차가 이렇게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던가? 역시 피터 슈라이어의 유산이라서 그런 건가? 확실한 건 그의 부재에서 이뤄진 이번 부분변경에서는 디자인에 손을 많이 대지 않았다는 것. 걸작에 손을 대는 게 겁이 났을 수도 있다. 신형 구분을 위해 바뀐 부분은 스타맵 DRL과 리어램프 디자인, 그릴의 패턴 정도다. 그마저도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고급스러운 소재감과 정교한 마감이 눈에 띈다. 쏘나타와 별반 다를 것 없다. 특히, A-필러부터 적용된 스웨이드 헤드라이닝, 그 위에 떡 하니 보이는 보스 스피커는 동급 분위기를 뛰어넘는 고급감이 나타난다. 확실히 대접받는 느낌은 있다. 오른손이 닿는 곳에는 다이얼식 변속기가 붙어있고, 대시보드는 수평적 기조가 이어진다. 직관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건 두 개의 12.3인치를 엮어 살짝 운전자 쪽으로 기울인 일체형 모니터가 일조했다. 현대차와 기아에서는 이제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새롭게 적용됐다는 ccNC(connected car Navigation Cockpit)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사용자 친화적이며, UI(User Interface)도 UX(User Experience)도 매우 만족스럽다. 시트는 편안하다. 잔뜩 들어간 운전자 보조 기능을 사용하면 장거리 운전에서 그 가치를 발한다.
다만, 공간은 살짝 아쉽다. 폭스바겐의 아주 보통의 북미형 가솔린 중형 세단을 타고 있는 기자에게 K5의 실내 공간은 답답한 편이다. 쏘나타와도 또 다른 공간감이다. 특히, 운전석이 그렇다. 시트를 가장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머리 공간이 부족하다. 야구모자를 쓰고 벗을 때 천장에 닿는다. 널찍하게 쓰고 싶다면 시트를 뒤로 많이 젖혀야 하는데, 그러면 건방진 운전 자세가 나올 거 같은 느낌이다. 차체 실루엣을 날렵하게 뽑아서, 그리고 통풍 시트가 들어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본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교훈이다. 뒤에서도 역시 무릎 공간은 괜찮지만, 머리 공간이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 그래도, 택시 승객으로 만났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신경 쓸 거 같지는 않을 정도다.
K5를 운전하는 것은 매끄럽고 즐거운 경험이다. 시승차는 2.0 가솔린 시그니처 트림 모델이다. 2.0 가솔린 엔진은 빠른 가속과 함께 필요한 힘을 충분히 제공한다. 제원상 최고출력 160마력, 20.0kg·m의 최대토크는 살짝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고속과 추월 등에 부족하지 않은 능력을 발휘한다. 스티어링은 정확하고, 차량의 반응은 예리하다. 다만, 실내 소음과 말랑말랑한 하체는 살짝 불만이다. 나름 이중 접합 유리를 앞뒤로 적용해 풍절음 등을 잡은 거 같지만, 고속도로에서 하부 소음이 공명음처럼 꽤 올라오는 편이다. 여기서 이실직고(利失之苦)는 어울리지 않는다. 서스펜션은 지극히 개인 취향. 뭐든 적절한 것이 좋지만, 기자는 조금은 단단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시승차는 시그니처 트림에 블랙핏 패키지를 적용한 모델이다. 가격은 기본 3447만원에 이런저런 옵션 비용이 추가돼 대략 4000만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고급스러운 실내 재질과 만족스러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만으로도 충분히 돈값을 한다는 생각이다. 프리미엄으로 넘어가지 않는 가격대를 제시해서다. 다만, 라인업 중에서는 고민이 생길 수 있다. 같은 값이라면 파워트레인은 1.6 터보로 가는 것이 나을 거 같다. 조금 더 욕심이 생긴다면 하이브리드도 괜찮은 선택이다. 이들 서로간 가격 차가 크지 않아서다.
육동윤 글로벌모터즈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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