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켈 세계 1위, 인구 4위 기회의 땅…현대차도 대웅도 '인도네시안 드림'

2024. 10.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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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첨단기업 인도네시아 진출 열풍
한국과 아세안(ASEAN) 맹주 인도네시아의 교역량은 2020년 139억 달러에서 지난해 213억 달러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사이 인도네시아가 전기차와 바이오·제약 등 첨단산업 전초기지로 급부상하면서다.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니켈 매장량이 세계 1위로 생산거점으로서 매력을 갖췄다. 또 세계 4위 인구 대국이면서 합계출산율 2.22명(지난해 기준)으로 미래까지 밝은 인력·소비시장을 갖췄다. 이에 한국기업들은 최근 첨단산업 분야에서 인도네시아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브카시의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공장(HMMI). 직원 약 2000명이 근무하지만 로봇 팔 등을 통한 자동화 비율이 높다. 이창균 기자
“쿵! 쿵! 쿵! 쿵!” 차체를 조립하는 머니퓰레이터(manipulator·로봇 팔)의 쉴 틈 없는 움직임이 빚어내는 굉음이 공장 안을 가득 채웠다. 현대로보틱스가 만든 410대의 로봇 팔이 100% 조립한 차체는 하나둘씩 줄 서서 천천히 움직이며 다음 공정으로 향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도장(塗裝)과 검사·인도 등 공정에선 아까만 해도 좀처럼 보이지 않던 근로자들이 나타나 부지런히 작업을 이어갔다.
인도네시아 진출 국내 기업 2300곳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오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40㎞ 가량 떨어진 도시 브카시의 델타마스공단 내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공장(HMMI)은 전기차 ‘아이오닉5’ ‘코나EV’ 등을 생산하는 곳답게 높은 자동화 비율의 첨단공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2022년 준공한 이곳은 현재 생산직 약 1500명 등 직원 2000명가량 투입으로 하루 16시간(2교대 8시간) 가동 중이다. 장혜림 HMMI 경영지원실장은 “인도네시아 내수뿐 아니라 아세안과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약 70개국으로 5개 차종을 수출 중”이라며 “연간 15만대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갖췄고 향후 최대 25만대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영역을 넓히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생산량을 점진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계획했다는 얘기다.

계획의 중심엔 아이오닉5를 필두로 한 전기차가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방문한 공장 준공식에서 “인도네시아는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전략의 거점”이라며 전기차 생산거점으로서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와 공급망 구축의 핵심 원재료인 니켈 매장량이 약 5500만t으로 전 세계 매장량의 42%에 달하는 세계 1위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에 전기차 관련 한국기업들은 현대차 외에도 인도네시아 진출에 힘썼고, 그 결과 현지에서 한국 전기차의 밸류체인(가치사슬) 완성을 눈앞에 뒀다. 현지에서 니켈을 직접 확보하면서 원가 절감과 공급망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LX인터내셔널은 올해 1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AKP광산 지분 60%를 1330억원에 인수해 국내 기업 중 최초로 해외 니켈 광산 경영권을 획득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할마헤라섬의 웨다베이공단에 5900억원을 투자해 니켈 제련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준공하면 연간 니켈 중간재 5만2000t을 생산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인 HLI그린파워는 올해 7월 인도네시아 카라왕에 배터리셀 공장을 준공해 연간 10GWh(기가와트시) 규모 생산에 나섰다. 이로써 ‘니켈 채굴(LX인터내셔널)-니켈 제련과 중간재 생산(포스코홀딩스)-전기차 배터리 생산(LG에너지솔루션)-전기차 생산(현대차)’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게 됐다. 현대차 측은 “아직 니켈 채굴과 제련이 본격 시작되지 않아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실질적 원가 절감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우리 정부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박수덕 주인도네시아 대사대리는 “인도네시아는 저렴한 인건비와 세계 최대 섬나라로서 물류거점의 이점 등을 갖춰 과거부터 한국 산업의 진출이 많았지만 봉제와 신발 등 경공업 분야 위주라 경제적 파급 효과도 제한적이었다”며 “하지만 철강과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에 이어 최근 전기차와 바이오·제약 등 첨단산업 진출로 고부가가치 수출 확대가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국의 전기차 등 첨단산업 발전을 노리는 인도네시아 정부도 세제 혜택 제공 등으로 이를 지원 중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약 2억8000만 명)으로서 소비시장의 매력도 갖췄다. 이런 내수 파워를 앞세워 지난 10년간 코로나19 여파가 컸던 2020~21년의 2년을 제외하면 매년 평균 5%가량의 경제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했다. 또 인도네시아 인구의 87%는 가족 형성 등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이라 출산율이 지난해 기준 2.22명으로 높게 유지되고 있어 국가 전반의 성장세와 구매력이 우상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IMF 구매력평가 7위, 한국 넘어서
이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네시아가 2050년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종호 주인도네시아대사관 상무관은 “인도네시아는 양극화가 심해 중산층이 취약한 편이지만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현재만 놓고 봐도 구매력이 강한 인구가 많다”며 “IMF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세계 16위이지만 구매력평가(PPP)에서는 세계 7위”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물론 프랑스·영국보다 국가 전반의 구매력이 강하다고 분석되는 것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에 기업들은 첨단산업의 생산·물류거점 확보뿐 아니라 소비시장을 목표로도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현지 자회사인 대웅바이오로직스인도네시아(DBI)를 통해 신도시인 치카랑의 자바베카산업단지에 연간 150억 줄기세포 생산이 가능한 처리시설을 세우고 지난달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유지민 대웅제약 세포공정센터장은 “인도네시아는 지속적 인구 증가에 비례해 고령화로 인한 난치성 질환도 증가세”라며 “현지 제약 시장 규모가 2022년 13조원에서 2026년 18조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인 만큼 다양한 줄기세포 치료제 R&D로 관련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처럼 한국 첨단산업의 ‘인도네시안 드림’이 무르익어가고 있지만, 우려점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동맹국도 적대국도 두지 않는 이른바 ‘Free and Active’의 실리 추구 외교정책을 고수하는데, 이런 유연함이 한국엔 불안요소다. 인도네시아가 한국의 경쟁상대인 중국에도 파격적인 조건의 첨단산업 진출 기회를 주고 있어서다. 중국이 BYD 같은 자국 전기차 기업을 앞세워 인도네시아에 투자를 약속하자, 인도네시아가 내년까지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2센터장은 “인도네시아는 중립외교를 표방하지만 지난해 투자받은 해외 자본의 30%가 중국 자본이었을 만큼 의존도가 높아 중국의 요구를 외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곽 센터장은 “중국은 또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의 밸류체인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약 2300개 진출 기업들이 구심점 없이 각개전투를 하는 형국”이라며 “우리 정부가 외교적 접근이나 기업 지원 강화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인도네시아 전문가 연수 과정에서 취재한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자카르타·브카시(인도네시아)=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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