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에르메스·자라·유니클로…글로벌 패션재벌의 ‘특별한 공통점’
LVMH·에르메스·자라·유니클로 모두 가족경영 고수…소유·경영 분리한 미국 ‘나이키’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옷이 날개다’는 속담이 있다. 외모를 단정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른 나라에도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속담이 존재한다. 시대가 흐르고 문화가 달라도 ‘외모를 가꾸고 단정하게 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다.
덕분에 옷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업은 오랜 기간 명맥을 유지하며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옷이 단순히 기능적 요소 외에 하나의 표현 도구이자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상징적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의류 사업은 하나의 사업 분야로 분류될 정도로 번창했다. 그 결과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성장한 패션기업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럭셔리 왕국’ 구축한 프랑스 최대 부호 아르노 가문…하이엔드 명품 선구자 에르메스 가문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하 시총)이 가장 큰 패션기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업 LVMH그룹이다. LVMH그룹은 루이비통, 디올 등을 비롯해 무려 70개가 넘는 명품 패션·주류 브랜드를 보유한 명실공히 세계 최대 명품기업이다. 29일 파리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LVMH의 시총은 원화 기준 약 475조원이다. LVMH은 다층형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LVMH의 최대주주는 크리스챤디올SE(41.79%)이다. 이어 크리스챤디올SE의 지분 96%를 투자회사인 피낭시에르아가슈가 보유하고 있다. 피낭시에르 아가슈는 LVMH그룹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설립한 ‘아르노 가문’ 가족투자회사다.
베르나도 아르노 회장은 1949년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오드프랑스에의 부유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의 MIT라 불리는 프랑스 공학 전문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후계 수업을 마친 후 바로 대표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사명을 변경한 뒤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주력 사업을 건설에서 패션으로 대대적으로 변화시켰다.
LVMH의 덩치가 급격하게 커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랑스 사회당의 탄탄한 지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명품사업을 국가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사회당 로랑 파위스 총리는 LVMH가 과거 디올의 모기업이었던 부삭그룹을 인수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등 자금조달과 관련한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해결해줬다. 이후 LVMH는 루이비통, 디올, 지방시 등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들을 차례로 인수하며 명품 제국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LVMH의 성장 덕분에 아르노 회장은 부와 명성을 지닌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당당히 오르게 됐다.
현재 LVMH는 ‘왕자의 게임’이라 불리는 후계경쟁이 한창이다. 현재 장녀 델핀 아르노는 디올 CEO를 역임 중이며 장남 앙투안 아르노는 LVHM그룹 부회장 직을 맡고 있다. 또 차남 알렉산드로 아르노는 티파니 임원을, 삼남 프레드릭 아르노는 가족투자회사인 피낭시에르아가슈 CEO를, 막내 장 아르노는 루이비통 임원을 각각 역임 중이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그룹 전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장남 앙투안 부회장과 삼남 프레데릭 CEO를 차기 총수의 유력 후보로 점치는 분위기다.
글로벌 패션기업 중 시총 2위에 올라 있는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주황색을 상징하는 프랑스의 ‘에르메스’다. 29일 파리 증권거래소 기준 에르메스 시총은 원화 약 336조원에 달한다. 에르메스는 과거 파리에서 유럽 귀족들을 위한 말 안장을 만드는 가게로 역사를 시작했다. 창업주 티에리 에르메스는 가죽 마구 장인이었다. 에르메스 로고에 말과 마부가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굳이 순위를 매길 때는 항상 최상단에 이름을 올린다. 특히 프리미엄 핸드백의 경우 장인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탓에 생산량 자체가 현저하게 적다 보니 가격 또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패션업계에서 회자되는 ‘에르메스는 제품은 선택받은 사람만 구매할 수 있다’는 평가가 등장한 배경이다.
에르메스는 창업 이래 지금까지 오너 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에르메스의 최대주주는 에르메스 오너 일가(66.72%)다. 현재 에르메스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에르메스 가문의 6세 ‘악셀 뒤마’다. 에르메스는 창업주 티에리 에르메스를 시작으로 ▲샤를 에밀 에르메스(2대) ▲에밀 에르메스(3대) ▲로베르 뒤마(4대) ▲장 루이 뒤마(5대) ▲악셀 뒤마(6대) 등 6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4대 회장인 로베르 뒤마는 에밀 에르메스의 사위다. 현 회장인 악셀 뒤마는 직전 회장인 장 루이 뒤마의 조카다. 에르메스는 철저한 혈통 속에서도 직계와 방계 구분은 두지 않고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1970년 파리에서 태어난 악셀 뒤마는 파리정치대학에서 철학과를 전공한 후 같은 대학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5년부터 프랑스 투자은행 BNP파리바에서 8년간 일하며 금융업에 매진했다. 2003년 당시 회장이던 장 루이 뒤마의 추천으로 재무팀 임원으로 에르메스에 입사했다. 이후 ▲에르메스 주얼리 CEO(2006년) ▲에르메스 가죽 부문 CEO(2008년) ▲2012년 에르메스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된 후 2014년 회장 겸 CEO에 올랐다.
스페인 흙수저 신화의 상징 ‘ZARA’, 육상선수가 만든 ‘나이키’와 패션 금수저의 ‘유니클로’
전 세계 패션기업 중 시총이 3번째로 큰 기업은 스페인 패션기업 ‘인디텍스그룹’이다. 인디텍스그룹은 SPA 브랜드 ‘자라(Zara)’로 더욱 유명하다. SPA는 기획,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 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 가성비를 높인 브랜드를 일컫는 말이다.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인디텍스그룹의 시총은 원화 약 252조원에 달한다.
현재 인디텍스그룹을 이끌고 있는 장본인은 ‘마르테 오르테가’ 회장이다 1984년생으로 어린 나이에 회장에 올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마르테 오르테가 회장은 창업주인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딸이다.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경영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인디텍스그룹 최대주주 지위는 가지고 있다. 그가 소유한 지분은 올해 6월 기준 59.2%에 달한다. 포보스지에 따르면 31일 현재 아만시아 오르테가의 순자산은 원화 약 178조원 규모다. 스페인 1위이자 전 세계 9번째로 많은 재산이다.
아만시오 오르테가 창업주는 다른 글로벌 패션회사 수장들과 달리 그다지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1936년 스페인 레온의 가난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집안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14세에 정규학교를 그만둬야만 했다. 학교를 중퇴한 그는 셔츠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패션산업에 뛰어 들었다. 그는 당시 가게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점장 됐고 이후 27세가 되던 해 직접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직접 제작한 의류를 상인이나 소매업체에 납품하는 식으로 회사를 운영했으나 그로부터 10년 후 직접 판매까지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선 ‘자라(ZARA)’의 시작이었다. 당시 그의 머릿속엔 옷이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문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가득 차있었다. 결국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유통 과정에 본인이 직접 참여하고 광고를 철저하게 지양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판매하기로 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유럽 현지에선 아만시오 오르테가와 유럽 최고의 부자인 LVMH그룹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와 비교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유럽 최대 부호로 손꼽히는 두 사람이 모두 패션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명은 재벌 2세 출신이자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한 반면 다른 한 명은 흑수저 출신에 서민을 상대로 한 브랜드로 성공한 부분이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여론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글로벌 패션기업 시총 4위는 미국의 스포츠 의류 제조기업 ‘나이키’다. 나이키는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29일 뉴욕 증권거래소 기준 나이키의 시총은 원화 약 157조원에 달한다. 나이키는 1964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 육상 선수 필 나이트와 코치 빌 바우어만이 함께 설립한 ‘블루리본 스포츠’가 시초다. 당시 그들은 아식스로부터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을 납품받아 오프라인으로 직접 판매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1971년 아식스로부터 제품을 공급 받기 어려워지자 사명을 나이키로 바꾸면서 직접 신발을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나이키 브랜드의 심볼인 ‘스우시’ 로고는 이때 만들어졌다. 당시 스우시 로고를 제작한 사람은 포틀랜드 주립대 디자인과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으로 육상트랙 코너에서 영감을 받아 지금의 나이키 로고를 만들었다. 지금은 수십조원의 가치를 지닌 전설적인 로고로 평가되지만 당시 나이키가 로고 구매 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은 단돈 35달러에 불과했다.
올해 6월 기준 나이키의 최대주주는 창업주 필 나이트의 가족 재단으로 보유 지분율은 16.1%에 달한다. 필 나이트는 개인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나이키 지분 2.6%를 직접 보유한 상태다. 이어 ▲마크 파커 전 CEO(0.2%) ▲존 도나호 2세 전 CEO (0.1%) 등도 나이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나이키는 전문경영인체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1938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리건 대학교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뒤 스탠포드 대학교에 입학해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전 육상 코치 빌 바우어만과 함께 나이키를 설립한 그는 미국의 조깅 붐에 맞춰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이키 신발의 대표 모델 ‘코르테즈’를 출시했다. 이후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 등을 통해 자타공인 미국 운동화 시장 1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1964년부터 2004년까지 40년간 나이키 경영 일선에서 활동한 뒤 은퇴했다. 현재 나이키의 수장은 30년 넘게 나이키에 몸담아 온 엘리엇 힐 CEO다.
글로벌 패션회사 시총 5위는 일본 유니클로의 모회사 ‘패스트리테일링’이다. 도쿄 거래소에 상장된 패스트리테일링의 시총은 29일 기준 원화 약 142조원에 달한다. 유니클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SPA 브랜드로 한국에서는 롯데쇼핑이 일본 본사와 합작으로 한국 유니클로를 설립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현재 유니클로의 모회사인 패스트 리테일링을 이끌고 있는 수장은 창업주인 야나이 타다시 회장이다. 올해 6월 기준 개인 최대주주인 야나이 타다시 소유 지분은 21.78%에 달한다. 그의 자녀인 ▲장남 야나이 카즈미(8.9%) ▲차남 야나이 고지(7.9%) 등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패스트리테일링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1949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야나이 타다시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1972년 부친이 설립한 의류회사인 오고리상사에 입사한다. 그는 약 10년간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1984년 부친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다. 야나이 타다시 회장은 회사를 물려받은 직후 주력 판매 상품을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주력 제품이었지만 재고량이 많았던 신사복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회전율이 좋은 캐주얼 의류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그는 히로시마에 오늘날 유니클로의 전신이 되는 ‘Unique Clothing Warehouse’라는 이름의 1호점을 오픈한 뒤 일본 전역에 약 30개의 매장을 열었다. 1991명 회사명을 오고리상사에서 패스트리테일링으로 바꾸고 1994년에는 회사를 니케이 증시에 상장시켰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후리스와 히트택 등이 히트를 치면서 일본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랐다. 포보스지에 따르면 지난해 야나이 히토시의 순자산은 원화 약 51조원 규모로 일본 부자 순위 1위에 올라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여러 산업 분야 가운데 패션 기업들이 유독 오너 경영 체제가 강하다”며 “장인정신과 브랜드 이미지가 특히 중요한 패션산업 특성상 해외 유명 브랜드 대부분 창업주로부터 바통을 물려받아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는 기조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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