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반느' 리뷰: 자본의 화려함 이면, 가장 낮고 아픈 곳에서 피어난 ‘인류 구원의 멜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이종필 감독의 신작 '파반느'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이 출간 당시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자본주의의 비정한 속성을 날카로운 메스로 도려냈다면,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는 그 상처 위를 다정한 시선과 온기 있는 영상미로 덮어주며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집중한다.
외모라는 계급, 그 지하에서 시작된 연대

영화는 가장 화려한 소비의 정점인 백화점, 그러나 그 화려함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지하 주차장과 창고를 배경으로 한다. 빼어난 미모를 가졌으나 사랑을 믿지 않는 경록(문상민 분), 세상의 모진 조롱 속에 스스로를 ‘공룡’이라 부르며 숨어 지내는 미정(고아성 분),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며 철학적인 유머로 극의 균형을 잡는 요한(변요한 분)까지.

감독은 원작의 1980년대라는 구체적인 시대상을 지워내고, 대신 어느 시대에나 존재할 법한 ‘소외된 청춘들의 표상’을 스크린에 옮겼다. 특히 미정 역의 고아성은 여배우로서 감내하기 힘든 파격적인 분장과 표정을 통해, 외모라는 굴레에 갇혀 영혼까지 짓눌린 인물의 내면을 처절하고도 고귀하게 그려냈다.
동정에서 사랑으로, 둔탁하지만 진실한 변주

경록이 미정에게 느끼는 첫 감정은 호기심과 연민이다. 영화는 이 ‘동정’이라는 위험한 감정이 어떻게 진정한 ‘사랑’으로 성숙해가는지를 아주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불쌍해서 그런 것"이라며 선을 긋는 요한의 경고는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 투영하는 시선이 과연 그 대상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지, 아니면 나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도구인지 말이다.

이종필 감독 특유의 따뜻한 연출은 자칫 무겁고 우울할 수 있는 서사에 숨통을 틔운다. 세 사람이 라디오를 들으며 나누는 대화, 도시락을 나눠 먹는 사소한 일상들은 자본주의의 차가운 시스템 안에서도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섬을 구축한다.
원작의 비정한 반전 대신 선택한 ‘위로’

원작 소설의 강렬한 문체와 액자식 구성, 그리고 독자를 충격에 빠뜨렸던 결말의 잔상은 영화에서 보다 유연하고 서정적으로 각색되었다. 원작이 사회 비판적 시각이 강한 ‘잔혹 동화’였다면, 영화는 ‘사랑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감독의 신념이 투영된 ‘치유의 멜로’에 가깝다.

하지만 이러한 서정성이 누군가에게는 원작의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희석했다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느린 호흡과 정적인 연출은 자극적인 전개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으며, 후반부의 감정 과잉은 극의 담백함을 해치기도 한다.
총평: 당신이 사랑해야 할, 그리고 사랑받아야 할 이유

영화 '파반느'는 단순히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로맨스가 아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빛나는 순간이 있으며, 그 빛은 오직 누군가의 진심 어린 시선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빠른 속도의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곁의 사람을 똑바로 응시하게 만드는 힘이 이 영화에는 있다.
이종필 감독은 원작의 제목에서 '죽은 왕녀'를 빼고 '파반느(느린 2박자의 춤곡)'만을 남겼다.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느릿하게나마 함께 춤을 추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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