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간판’ 김영남 사망…정동영 “애도” 박지원 “평양 조문가겠다”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2025. 11. 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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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지난 3일 사망을 계기로 남북 간 '조의(弔意)정치'를 재개했다.

4일 정 장관은 자신의 명의로 낸 조의문을 통해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부고를 접하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 장관은 첫번째 통일부 장관 재직 시절이었던 2005년 10월에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사망 당시 남북 장관급회담 수석대표 명의의 전통문을 보내 조의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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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때 남북대화 물꼬에 기여”
鄭, 김영남 사망 계기로 조의정치 재개
박지원도 “고인은 훤칠한 키에 미남”
2000년 대북특사 언급하며 파견자청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지난 3일 사망을 계기로 남북 간 ‘조의(弔意)정치’를 재개했다.

4일 정 장관은 자신의 명의로 낸 조의문을 통해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부고를 접하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북측 관계자 여러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조의를 표시했다.

정 장관은 “김영남 전 위원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하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바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2006년 6월과 2018년 9월에 평양에서 김영남 전 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대화를 나눴던 것을 떠올리며 개인적인 유대감도 드러냈다.

당초 정 장관은 김영남 위원장 ‘조전’을 보내 애도를 전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 악화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설정으로 남북 간 모든 연락채널이 단절된 점을 고려해 언론을 통해 조의문을 발표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과거에도 조문정치로 관계개선 물꼬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2월 11일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가운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공연 관람을 마치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거 남북한은 핵심 정치지도자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조전과 조문단을 보내는 ‘조문정치’를 펼치며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해왔다. 정 장관이 이번에 김영남 위원장 사망에 즈음해 조의를 밝힌 것도 남북관계가 꽉 막힌 가운데 ‘인지상정’ 차원에서 물꼬를 트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앞서 정 장관은 첫번째 통일부 장관 재직 시절이었던 2005년 10월에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사망 당시 남북 장관급회담 수석대표 명의의 전통문을 보내 조의를 표시했다.

2015년 12월에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이 사망했을 때에는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이 조전을 보내기도 했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에는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민간 조문단의 방북을 허용하기도 했다.

북측도 2009년 8월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북한은 김기남 당중앙위 서기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을 서울로 보내 조의를 표시했다. 그해 5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타개했을 때에는 김정일 위원장 명의 조전을 보냈다.

김씨3대 걸쳐 중용됐던 ‘외교통’ 김영남
한편 김영남 위원장은 북한에서 김씨 3대에 걸쳐 외교·남북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산증인’이었다. 1928년생인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재직 중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가 6·25전쟁 도중인 1952년 귀국해 중앙당학교(김일성고급당학교) 교수를 거쳐 노동당 국제부에서 외교업무를 시작했다.

20대 때부터 당 국제부와 외무성 요직에 기용됐고 일처리와 처신이 뛰어나 3대에 걸친 권력세습 속에서도 빠짐없이 중용됐다. 특히 김정일 정권 당시에는 20년 넘게 헌법상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아 은둔형 지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대신 대외적인 ‘얼굴마담’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7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을 권유하자 자신이 아닌 김영남 위원장을 대신 보낼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2018년 초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해 문재인 정부 초기 한반도 대화의 봄을 여는 데에도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박지원 “김영남 사망에 조의”…대북특사 파견 자청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영남 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시하며 대북특사 파견을 자청했다. 그는 분단 후 첫 남북 정상 간 만남이었던 2000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대북특사로 활동한 바 있다.

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김영남 위원장은) 훤칠한 키에 미남, 조용한 외교관 출신으로 저와는 10여 차례 만났고 김정일·김정은 두 위원장께서도 김 (전) 상임위원장을 깍듯이 모시던 기억이 새롭다”고 회상했다.

그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북한에서 김기남 비서 등 조문 사절단이 오셨고, 김정일 위원장 조문 사절로 고 이희호 여사께서 다녀오셨다”며 조문외교 재개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이어 “북한도 (특사를) 받아들이고, 우리 정부에서도 박지원을 특사로 보내시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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