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냄새 우습게 여기지 마라…풍미 과학자가 밝힌 ‘맛의 법칙’ [.txt]

이유진 기자 2025. 11. 28. 05: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풍미는 분자…맛과 냄새로 이뤄져”
짠맛은 쓴맛 잡고, 신맛은 짠맛 눌러
다섯가지 맛 조합·변형해 레서피 제안
인체는 특정 분자를 통해 여러 맛을 느낀다. 풍미는 분자고, 맛과 냄새고, 일정한 경향성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3년 3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물가 점검차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방문해 감자 냄새를 맡는 사진이 여러해 동안 화제가 됐다. 과일도 아니고 감자의 냄새를 맡는 것이 우습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고를 때 감자, 고구마 같은 뿌리채소의 냄새를 맡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데 정말 뿌리채소엔 냄새가 없을까? 채소류와 달리 과일은 왜 익을수록 강한 냄새를 풍길까?

‘풍미 과학자’ 아리엘 존슨은 맛의 원리를 파헤치기 위해 분석 화학을 공부하고 향미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가의 파인다이닝으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라고 손꼽혔던 노마(현재는 폐업)의 발효 연구소를 공동 설립했고, 고문을 맡았으며 학제 간 협력 연구사업에서 연구자로도 활약했다. ‘풍미의 과학’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조언하는 일을 하던 저자가 풍미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법을 총망라한 책이다. ‘맛있는 맛’의 기본 법칙을 밝혀내고 미생물의 발효까지 아우른, ‘실패 없는 요리 가이드’인 셈이다.

책의 뼈대를 이루는 풍미의 기본 법칙은 다섯가지다. 풍미가 분자이며, 맛과 냄새로 이뤄졌다는 것, 예측 가능한 패턴이 있고, 농축하고 추출할 수 있다는 것, 만들어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맛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맹’도 맛있는 맛을 만들고,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둔다. 대부분의 요리법은 원하는 풍미 분자를 어떻게 선택적으로 옮기고 만나게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풍미의 패턴을 알고 일정한 경험만 하면 누구나 다양한 맛을 발견하고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혀와 코를 거쳐 궁극적으로 뇌까지 이르는 풍미 분자의 맛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예컨대 드레싱으로 쓰는 식초는 감귤류 과일이나 즙 같은 대체재를 사용할 수 있다. 한국식이라면 유자차나 효소도 가능할 것이고 서양식으로는 요구르트나 피클 국물을 써도 좋다. 짠맛을 낼 때는 소금만이 아니라 안초비를 쓸 수도 있다. 입덧이 심한 임신부가 있는 집이라면 젓갈 대신 치즈를 사용해 보면 좋다. 핵심은 특정 재료가 어떤 맛을 내는지 정확하게 포착하는 일이다. 풍미를 감각하고 미각을 단련하는 방법은 성가시지만 단순한 면이 있다. 일단 특정 음식에서 느껴지는 맛을 목록으로 나열해 엄밀하게 점검하는 것이다. 짠맛, 신맛, 단맛, 감칠맛, 쓴맛으로 나누어 한가지 재료에서 느껴지는 각각의 풍미를 구분해 정리하며 훈련하면 도움이 된다.

맛을 이루는 다섯가지 요소 중에서 신맛, 단맛, 감칠맛, 쓴맛은 세균부터 포유동물까지 다양한 생물의 분자와 관련이 있다. 짠맛은 유일하게 생물 분자와 무관하다. ‘간을 맞춘다’고 할 때 주로 거론되는 짠맛은 무기질 원소인 나트륨의 맛인데, 풍미를 강화하고 맛의 균형을 잡으며 쓴맛을 억제하는 요리의 기본이다. 짠맛을 강화하거나 가라앉히는 맛은 단맛이 아니라 신맛이다. 단맛은 신맛과 쓴맛을 잡는 데 이용하면 좋다.

인류가 가장 늦게 발견한, 대망의 감칠맛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다소 긴장한다. 감칠맛을 맛의 한 종류로 봐야 하는지 의견이 오랫동안 엇갈렸을 뿐만 아니라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나트륨, 곧 엠에스지(MSG) 때문이다. 저자는 MSG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나온 연구 방법 대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도 MSG를 항상 마련해 두고 조금씩 넣곤 한다는데 실제 사용은 각자 경험에 따르라고 한발 물러선다. 조금만 사용해도 맛이 살아나는 효과적인 무기를 안 쓸 이유는 없지만, 찝찝한 마음으로 써야 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마침내 감자의 향을 얘기할 때가 됐다. 감자의 냄새를 맡는 것이 과연 무용한 일일까? 일단, 과일의 경우는 동물에게 먹히도록 진화했다. 과일의 진한 향은 과육을 먹고 경쟁이 덜한 곳으로 씨앗을 멀리 퍼뜨려달라는 신호인 것이다. 채소는 오히려 동물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식물을 씹을 때 생기는 강렬한 휘발성 물질은 헥세날이라는 알데하이드 분자다. 아이들이 냄새난다며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수 있다. 비슷하게 감자 껍질에서도 냄새가 난다. 향이 강하고 점성이 있는 피라진이라는 질소 분자의 향이 감자 껍질에서 나는 흙 내음과 가깝다. 당장 집에 묵히고 있는 감자, 고구마, 무 냄새를 맡아볼 일이다. 뿌리채소의 향을 맡는 경험이 후각을 발달시키고 맛 경험에 도움을 줄지 누가 알겠는가!

이 책이 강조하는 풍미의 상당 부분이 냄새와 관련이 있는 반면, 이연복 셰프처럼 후각을 잃은 이들의 맛 경험을 증진시킬 방법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점은 다소 아쉽다. 어려운 화학식이나 생물학적 이론이라는 허들을 넘어야 하는 점도 독서의 어려움을 더하지만, 유명 레스토랑을 세팅한 경험이 녹아 있는 세련된 레시피나 신화나 고전을 이용하며 ‘썰’을 푸는 부분에서 저자가 공부하고 경험한 깊이를 느낄 수 있어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다.

풍미의 과학 l 아리엘 존슨 지음, 제효영 옮김, 푸른숲, 3만50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