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 한국 골프, 문을 열었던 100년 전 이 순간
일제강점기 시절 골프한 한 사나이
- 골프채 선물받고 골프와 사랑에 빠진 ‘연덕춘’
- 후진 양성에도 아낌 없었던 인물
- 국내 최초 여성 골퍼는 한 명이 아니라는데
최경주, 박세리, 박인비 등 우리나라에도 걸출한 프로 골프 선수들이 많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우리나라 골프 산업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K-골프의 물꼬를 튼 최초의 골프 선수는 누굴까. 골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을 알아봤다.
◇캐디 보조에서 대한민국 첫 프로 골퍼로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 골프 선수는 고(故) 연덕춘(1916~2004) 선수다. 1932년 연덕춘은 서울 어린이 대공원 부지에 있던 군자리 골프클럽에서 캐디(골프에서 플레이를 보좌하는 사람) 보조로 일하면서 골프와 연을 맺었다. 당시 골프 클럽에 있던 일본인 프로 골퍼 시라마스에게서 골프채를 선물 받은 그는 기쁜 마음에 골프 연습에 몰두했다. 그 길로 골프 세계에 빠졌다.
타고난 재능에 열정까지 갖춘 연 선수는 골프를 배운지 1년 만에 1935년 일본관동골프연맹 소속 프로골프자격증을 취득했다. 한국 최초의 프로 골퍼가 된 것이다.
선수가 된 후 1935년 일본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에서 예선 탈락, 경성 골프클럽 소속 아마추어 대회 본선 탈락, 일본 프로 선수권 예선 탈락 등 6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1941년 마침내 일본 오픈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56년 국제골프협회의 초청장을 받고 나서는 대한민국 골프를 전 세계에 알렸다.
다만 시대가 따라주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에 이은 한국 전쟁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골프에 매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척박했던 대한민국 골프계를 비옥하게 일구기 위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신봉식, 심종현, 박명출 등 여러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며 프로로 양성했다.
1958년 국내외 상황이 진정되고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제 1회 한국 프로선수권대회에서는 초대 챔피언이 됐다. 이 대회에서 그는 존재감을 과시하며 골퍼가 걸어야 할 길을 후배들에게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한국 골프의 진흥에도 앞장섰다. 1966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전신 격인 프로 골프회를 창설했다. 여기서 그는 프로 자격을 부여하거나 프로 골퍼의 해외 경기 참가를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4년 뒤 지금의 KPGA가 창설돼 2대 KPGA 회장을 맡았다.
상징적인 인물인 만큼 그가 사용한 골프클럽은 등록문화재 제500호로 지정돼 천안 독립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등록문화재는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클 때 지정하는 문화재다. KPGA 기념관에는 1941년 일본 오픈 우승 트로피가 전시돼 있다.
◇국내 최초 여성 골퍼는 한 명이 아니다
한국 여성 프로 골퍼의 ‘시조’는 한 명이 아니다. 1978년 프로 골프협회가 주관한 제1회 여자 프로 테스트에서 강춘자, 한명현, 구옥희, 안종현 4명의 선수가 최초 여성 골퍼로 등록됐다. 당시 남자 프로 대회 안에 여자부를 개설해 참가만 가능하게 했을 뿐, 여자 프로 대회는 별도로 없었다. 남자 프로 대회에 비해 상금과 규모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큰 무대에 대한 갈증을 안고 일본 무대로 진출했다. 구옥희 선수는 일본여자 프로 골프투어에서 23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들의 해외 진출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부터 KLPGA는 급격하게 성장해 5년 후, 미국 여자프로골프투어(LPGA)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기도 했다.
/윤채영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