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스코어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진짜야?” 세계 5위 천위페이가 미아 블리치펠트에게 0-2로 졌다는 건, 그 자체로 뉴스였습니다. 상대 전적 10승 1패의 절대 우위, 큰 대회 경험, 결승 고비에서 보여온 집중력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납득이 쉽지 않은 결과입니다. 1게임 9점에 그쳤고, 2게임도 앞서다가 연속 실점을 내주며 무너졌습니다. 홈 팬의 응원을 등에 업은 블리치펠트가 잘하긴 했지만, 천위페이의 리턴과 움직임이 평소 같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중국 매체가 “몽유병처럼 보였다”는 거친 표현까지 썼다는 건, 중국 대표팀 내부 분위기도 적잖이 흔들렸다는 뜻이겠죠.

이번 탈락이 더 뼈아픈 이유는 맥락에 있습니다. 올해 여자 단식 판도는 안세영이 중심에 있고, 그 옆에 야마구치 아카네, 천위페이, 왕즈이, 한훼가 도전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안세영을 가장 자주, 가장 설득력 있게 막아온 상대가 천위페이였습니다. 올 시즌만 봐도 두 번 이겼고, 통산 전적에서도 근소하게 앞서 있죠. 그래서 덴마크오픈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결승에서 안세영-천위페이 한 판 더 보겠다”고 마음속으로 기대했을 겁니다. 그런데 길목에서 발이 걸렸습니다. 이제 같은 팀의 왕즈이와 한훼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데, 두 선수 모두 안세영과의 맞대결에서 열세인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왕즈이는 결승에서 여러 번 만나 모두 졌고, 한훼도 흐름이 길어지면 수비가 버티질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안세영을 누가 세울까?”라는 질문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경기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게임 9점은 단순한 부진이 아니라 플랜 자체가 흔들렸다는 신호입니다. 천위페이가 강한 건 라켓 각도를 살짝 닫아 네트 가까이에 묻히는 짧은 드롭, 그리고 그 페인트에서 이어지는 역공입니다. 이게 들어가기 시작하면 상대는 하프스텝을 밟으며 앞으로 쏠리고, 그 순간 역방향 클리어로 뒤를 비웁니다. 그런데 블리치펠트는 처음부터 그 패턴을 끊었습니다. 네트 앞에서 랠리를 길게 끌지 않고, 첫 두 번의 교환에서 과감히 깊숙하게 밀어 올렸습니다. 뒤로 한두 발 더 물러선 천위페이는 코트 중앙 회복이 늦어졌고, 그다음 네트 공방에서는 각이 줄어들어 에러가 늘었습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앞뒤 길이 싸움”에서 덴마크 선수가 완승을 거둔 셈입니다.

2게임은 이겼어야 했던 흐름이었습니다. 15-13 리드에서 연속 실점이 나온 건, 체력 이슈와 판단 속도의 문제를 동시에 의심하게 만듭니다. 세계선수권 때 다쳤던 부분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현지 보도들도 있었죠. 부상이 남아 있으면 순간 가속과 멈춤이 무뎌지고, 그러면 네트 앞에서 라켓이 반 박자 늦습니다. 배드민턴은 그 반 박자가 점수 두세 개로 연결됩니다. 포인트가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구간에서, 천위페이의 샷 선택이 평소 같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겁니다. 코트 컨디션과 공(셔틀) 스피드도 영향이 있습니다. 덴마크 실내는 대체로 공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고, 이럴 땐 과감히 밀어 올리는 선수에게 유리해집니다. 블리치펠트의 오래 길게 끄는 랠리 플랜이 먹힌 배경이죠.
중국 대표팀 입장에선 계산이 복잡해졌습니다. 원래 시나리오는 간단했습니다. 천위페이가 결승까지 가서 안세영과 싸운다. 여차하면 야마구치가 반대편에서 섞어 놓는다. 이렇게 삼파전 구도로 시즌 말미까지 끌고 가면 된다. 그런데 천위페이가 16강에서 멈추면, 그 공백을 채울 자가 필요합니다. 왕즈이는 기본기가 단단하고 묵직한 스트로크가 좋지만, 안세영이 템포를 쪼개는 순간 스텝이 무거워집니다. 한훼는 공격 전환이 날카롭지만, 길어지면 실수가 납니다. 그래서 “한 번 세게 때려서 끝내야 한다”는 유혹에 자주 빠집니다. 안세영 상대로는 그 한 방이 잘 안 들어가고요. 어쩌면 지금 중국이 해야 할 건, 누가 이길 거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3게임 승부로 끌고 가느냐”에 대한 전술 재정립일지도 모릅니다. 랠리를 길게 가져가면 체력이 좋은 쪽이 유리해 보이지만, 안세영은 오래 싸울수록 실수가 줄어드는 타입입니다. 차라리 초중반에 스코어 변동을 많이 만들고, 서비스 상황에서 세트플레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서브 이후 첫 셋을 미리 정해 놓고, 네트 앞 낙차를 조금 더 “더럽게” 써야 합니다. 깔끔한 기술 대신 보기 싫을 만큼 까다로운 공, 그게 필요합니다.

다시 천위페이로 돌아가 보죠. 이 선수는 “강한 밤”을 만들 줄 압니다. 큰 경기에서 분위기를 엎는 경험도 많고, 중요한 순간 라켓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팬들이 더 실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컨디션이 흔들릴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세계선수권 이후 대회가 촘촘했고, 중국 마스터스에서 동료에게 막히며 리듬이 꺾였습니다. 여기에 덴마크 원정, 이어지는 프랑스오픈, 아시아 쪽 대회 일정까지 고려하면 “완벽한 몸”을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중국 매체가 “대회 수를 줄이고 회복에 집중하라”고 쓴 것도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포인트입니다. 월말·연말 큰 대회들을 대비하려면 랭킹 포인트를 모아야 하고, 그러려면 무리해서라도 뛰어야 합니다.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는 게 쉽지 않죠.
그럼 이제 질문. “안세영은 누가 막나?” 덴마크오픈에서만 본다면, 당장은 막기 어렵습니다. 32강, 16강 모두 리드를 놓치지 않았고, 위기 관리가 깔끔했습니다. 발이 가볍고, 샷이 라인에 잘 붙습니다. 동체시력과 판단이 좋은 선수에게 링크 컨디션이 맞아떨어지면 상대는 참 답답해집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첫째, 네트 앞에서 공을 ‘길게’ 묶어 두어야 합니다. 한두 번 들러붙고 바로 미들로 빼면 안세영이 리듬을 잡습니다. 둘째, 하프스매시와 하이클리어의 빈도를 섞어 템포를 흐트러뜨려야 합니다. 단단한 수비 앞에서 풀스매시만 때리면 되려 체력만 닳습니다. 셋째, 복식에서 쓰는 세트피스를 단식에 일부 이식하는 것도 고려할 만합니다. 서브-리턴 이후 짧은 백코트 드라이브, 그 다음 전진 타이밍까지 묶어서 준비하는 식입니다. 이런 준비된 첫 3구가 없으면, 안세영의 수비는 너무 단단합니다.

중국에겐 선택지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천위페이를 잠시 쉬게 하고 프랑스오픈에서 컨디션 체크를 다시 하거나, 아예 덴마크·프랑스 연속 출전을 감수하고 현장에서 감각을 끌어올리거나. 둘 다 장단이 뚜렷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무리한 반등”보다 “안정적인 회복”을 권하고 싶습니다. 천위페이가 강한 건, 강해서가 아니라 정확해서입니다. 이 정확도가 떨어질 때는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빌드업하는 편이 훨씬 오래 갑니다. 중국 진영 전체로 보면, 왕즈이와 한훼의 역할을 더 분명히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왕즈이는 길게, 한훼는 짧게. 서로 다른 플랜으로 안세영의 템포를 흔들어야 합니다. 둘 다 같은 패턴으로 들어가면, 안세영의 대응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덴마크오픈의 이변은 단발성일 수도 있고, 시즌 말미의 경고등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반응입니다. 천위페이는 이미 큰 파도들을 수없이 넘어온 선수고, 이런 패배를 발판으로 더 단단해진 전례가 많습니다. 중국 대표팀도 위기에서 조직적으로 강한 팀입니다. 한두 대회 결과만 보고 “시대가 끝났다”는 식으로 말할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 지금 이 순간,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선수는 안세영입니다. 수비가 공격을 만들고, 공격이 실수를 부릅니다. 체력과 멘탈이 함께 버티고, 하루하루 경기력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모든 경쟁자들은 “어떻게 흔들 것인가”를 새로 설계해야 합니다.
프랑스오픈이 곧 시작됩니다. 팬 입장에선 솔직히 이게 더 재미있습니다. 천위페이가 반등할지, 중국이 전술을 바꿀지, 야마구치가 다시 판을 섞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안세영이 또 한 번 “그냥 내 길 간다”를 보여줄지. 덴마크에서 울림이 적지 않았던 하루가, 파리에서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지켜볼 시간입니다. 스포츠는 늘 그렇듯, 답은 코트가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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