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혈변 보는데 진료 거절 당해"… 응급실 찾은 환자들 "추석이 원망스럽다"
연휴 '오픈런'에 전원 거듭...지친 환자들
진료 이후도 문제... 입원까지 수일 지체
“열 펄펄 나는 아기 업고 새벽 6시부터 경기 이천 동네 소아과부터 서울 대형 병원들을 종일 돌았어요.”
추석 연휴 3일차인 16일 오후 4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박창영(37)씨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8개월 된 아기가 어젯밤 열이 39.5도까지 올라 박씨 부부는 오전 6시부터 동네 소아과 현장 접수를 위해 줄을 섰다. 명절이라 오후 진료가 없어 접수 대기 인원은 140명까지 올라갔다.
힘들게 진단 받은 병명은 '요로감염'.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에 박씨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 대형병원 3곳을 돌아야 했다. 박씨는 "모두 입원은 보장이 안 되고, (삼성서울병원은) 일단 와서 진료라도 받아보라 해서 급하게 왔다"며 "항생제 치료 시기를 놓치면 패혈증까지 갈 수 있다고 해 마음이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이날 응급실 앞에서 만난 환자들은 추석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5일 간의 연휴로 동네의원들이 대거 휴진해 응급 상황에도 갈 곳이 없는데, 그나마 문을 여는 응급실도 포화 상태라 진입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의정 갈등에 따른 필수의료 인력 공백이 심화하며 추석 연휴 기간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진료도 입원도 '별 따기'
연휴에는 보통 응급 환자가 1.5~3배 가량 증가하는데, 이날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은 그만한 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병원까지 직접 찾아와 자리가 있는지 수소문하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상 포화' 등의 이유로 진료를 거절 당하자 익숙하다는 듯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온 임모(57)씨는 세균성 장염 증상을 보인 딸이 전날부터 복통을 호소하며 괴로워해 어제 하루를 꼬박 119를 통해 병원에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 썼다고 했다. 대형 병원과 2차 병원 응급실은 '자리가 없다' '기존에 등록된 환자만 받는다'며 거절했고, 아예 응답이 없는 곳도 있었다. 임씨는 "딸이 혈변을 보는 등 증상이 악화해 예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이곳에 왔지만, 또 거절 당했다"며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연휴 내내 진료 '뺑뺑이'를 도는 환자들도 있었다. 동네 의원에서 2차 병원으로, 대학병원까지 전원돼도 정작 제대로 된 처지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복부 통증이 잦아들지 않는다는 한 40대 환자는 이번 연휴 동안 진료만 두 번째, 병원만 세 번째라고 했다. 그는 "동네 병원에서 맹장염 소견을 받아 찾아간 2차 병원에서 '류마티스를 앓고 있으니 신우신염일 수도 있다'며 큰 병원에 가라해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응급실에) 맹장염을 봐줄 수 있는 의사가 없다면서 다른 곳을 가보라 한다"고 말하며 그는 괴로운 듯 복부를 움켜잡았다. 이날 아침 나무에 눈을 베였다는 70대 피모씨도 "일단 와서 진료 받아보라 해 가평에서 이곳까지 왔는데, 안과 상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 처치도 없이 돌아가라고 했다"며 황당해 했다.
다른 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양천구에 위치한 권역센터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을 찾은 60대 환자는 "용접 중 불꽃이 튄 뒤 눈을 아예 못 뜰 정도로 아파서 왔는데, 들어가자마자 진료는커녕 '파업 때문에 의사가 없으니 다른 병원에 가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연휴 절반 남았는데... 응급실 불안
어렵게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또 다시 진료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삼성서울병원으로 올라온 이대연(49)씨는 "암 환자인 가족의 상태가 나빠져 일단 진료를 받았다"면서도 "응급실 베드에서 입원실까지 가는 데 수일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 입원 치료가 안 되면 어쩌나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연휴 기간 동안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한 특별 대책을 13일 발표했지만, 연휴가 절반 가량 지난 지금도 현장은 삐걱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전국 409곳 응급실 중 407곳이 매일 24시간 운영된다. 앞서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연휴 기간에도 정부는 지자체와 함께 준비한 대책을 차질 없이 시행하고 개별 응급의료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할 것"이라 강조했다. 이에 반해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연휴 동안 일평균 약 1만 명의 환자는 응급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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