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자 유족 앞에서 허리 굽힌 김정은
평양 화성지구 ‘새별 거리’ 준공식에 김정은은 딸 김주애, 해외작전부대 지휘관·전투원, 파병군 유가족들까지 총집결시켰다.
준공 테이프를 끊은 뒤 그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살림집이용허가증’(주택이용 허가증)**을 유족에게 직접 전달하고, 허리를 깊게 굽혀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을 북한 매체가 그대로 내보냈다.
YTN이 공개한 영상에서도 김정은이 유가족 앞에서 상체를 깊게 숙이고, 때로는 고개를 거의 수평까지 숙이며 일일이 손을 잡는 장면이 반복된다. 권위주의 체제 최고지도자의 이런 과장된 ‘저자세 연출’은 북한 선전에서도 이례적인 장면이다.

‘새별 거리’에 담긴 의미, 파병군을 새 지도층으로 띄우기
‘새별 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다 전사한 인민군 유가족을 위해 평양 화성지구·대성구역 일대에 새로 조성한 집단주택 단지다.
김정은은 준공식 연설에서 “참전 용사들의 빛나는 생의 대명사로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새별’이라는 이름을 단 거리의 준공은 조선의 힘과 인민의 위대함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서 ‘새별’은 전통적으로 지도자·영웅·희망을 상징하는 단어인데, 이를 파병 전사자와 유족에게 붙여 **“당신들이 새로운 시대의 영웅이자 특권층”**이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다.

피로 물든 러시아 파병, 민심이 흔들렸다
북한은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 등에 수천 명 규모의 포병·특수부대·공병을 파병했다는 관측을 낳을 만큼 장기 파병을 이어가고 있고, 전사·부상 소식이 내부에 퍼지면서 민심 이반 조짐이 거세졌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이미 지난해 8월 김정은은 ‘파병 전사자 유가족 위로연’에서 “속죄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하며 평양 새 아파트를 약속했고, 10월에는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파병기념관)’ 착공식에 직접 나와 새별 거리 조성을 공언했다. 이번 준공식은 그 약속을 실제로 보여주지 않으면 민심이 더 악화될 수 있는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

평양 아파트라는 ‘최고 당근’으로 불만 잠재우기
평양, 특히 화성지구·대성구역의 신축 아파트는 북한 주민에게 사실상 최고 등급 보상이다. 권력 핵심·충성 엘리트가 아니면 거의 접근할 수 없다는 점에서, 파병 전사자 유족에게 이 권리를 준 것은 “당·군 최고 특권층 반열에 올린다”는 상징이 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해외 작전이라는 위험 요소를 영웅 서사와 평양 아파트라는 가시적 보상으로 치환함으로써, 잠재적 불만을 잠재우고 군사적 모험주의를 지속할 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결국 김정은은 피로 얼룩진 파병을 ‘희생=영웅, 보상=평양 아파트’라는 공식으로 포장하며 체제 충성 강화에 재활용하고 있다.

‘무릎 인사’까지 연출한 이유, 군과 주민 모두를 향한 메시지
YTN 자막뉴스가 포착한 장면처럼, 김정은은 새별 거리 준공식에서 몸을 깊숙이 숙이고, 유족 앞에서 거의 무릎에 손을 짚다시피 한 인사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는 단순한 예의의 표현을 넘어,
유가족에게는 “당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
참전 중인 장병에게는 “죽어도 가족은 평양에서 영웅 대접받는다”는 유인,
일반 주민에게는 “파병에 대한 불만은 배은망덕”이라는 압박,
이라는 다층적 신호로 읽힌다.

9차 당 대회에서 러시아 파병을 ‘최대 치적’으로 포장할 듯
북한은 러시아 파병군을 추모하는 전투위훈기념관(파병기념관) 공사를 서두르고 있고, 김정은은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나 현장을 찾았다.
이달 하순 예정된 조선노동당 9차 대회에서는
러시아 파병을 “제국주의와 맞선 국제연대의 승리”로 미화하고,
새별 거리·파병기념관을 “영웅 시대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러시아와의 군사·경제 밀착을 재차 천명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위기를 느낀 지도자’의 방편이라는 해석
러시아 전쟁에 깊숙이 발을 들인 대가로 젊은 피가 계속 전선에서 사라지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더 이상 “외면하고 버티기”만으로는 통제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 앞에서 몸을 굽히고,
눈물을 닦아주는 ‘부드러운 지도자’ 연출을 하며,
동시에 평양 아파트라는 현실적 보상과 ‘새별’이라는 상징적 칭호를 내걸어
체제에 균열을 낳을 수 있는 민심의 폭발을 선제적으로 봉합하려 하고 있다.
결국 국민 앞에서 무릎을 꿇다시피 몸을 낮춘 김정은의 모습은, 영웅을 예우하는 포즈인 동시에 자신이 느끼는 체제 위기의 그림자를 반영한 장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