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4천만 원, 세터 최고 대우 김다인이 현대건설을 떠나지 않은 진짜 이유 3가지

FA 시장 최대어가 '새 도전' 대신 '원점'을 택했다. 단순한 잔류가 아니다. 27세 김다인이 여자배구 개인 보수 상한액 전액을 받으며 현대건설과 3년 계약에 서명한 배경에는, 돈 이상의 계산이 담겨 있다.

배구 선수에게 FA란 단순한 계약 갱신이 아니다. 실력을 숫자로 검증받고, 자신의 가치를 시장에 직접 묻는 과정이다. 그런데 김다인의 FA 여정은 일반적인 경로보다 훨씬 더 길고 험했다.

2017-2018시즌, 김다인은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적잖은 기대를 받은 출발이었지만, 프로의 현실은 냉혹했다. 이후 세 시즌 동안 코트에 서는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출전 기회가 없으면 FA 자격을 채울 시즌 카운트도 쌓이지 않는다. 결국 김다인은 동기들보다 늦게, 9시즌이 지나서야 비로소 FA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다린 시간이 길었던 만큼, 결정의 무게도 달랐다. 처음에는 이적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한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도전하겠냐"는 생각이 앞섰다. 실제로 IBK기업은행 측에서 적극적인 접촉이 있었고, 김다인도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이 쌓일수록, 저울은 조금씩 현대건설 쪽으로 기울었다.

결정적 변수는 강성형 감독이었다. 김다인은 "거짓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시다"라고 표현했다. 감독과의 솔직한 대화, 구단 사무국의 집요한 연락, 그리고 9년간 함께 쌓아온 신뢰가 더해졌다. '핸드폰에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구단 측의 구애가 남달랐다.

2026년 4월 18일, 현대건설은 김다인과의 FA 재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 3년, 보수총액 5억 4,000만 원. 세부 내역은 연봉 4억 2,000만 원에 옵션 1억 2,000만 원이다. 2026-2027시즌 기준 여자배구 개인 보수 상한액 그 자체다.

같은 금액을 받는 선수는 단 한 명, 미들블로커 정호영이다. 정호영은 정관장을 떠나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며 상한액을 받았다. 포지션도 다르고 행선지도 다르지만, 두 선수 모두 이번 시장에서 여자배구의 현재 값어치를 가장 높게 인정받은 이들이다.

세터 포지션만 놓고 보면, 5억 4,000만 원은 역대 최고 대우다. 이는 단순히 한 선수의 몸값이 아니라, 세터라는 포지션의 위상을 새로 설정하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다인은 "제가 더 받으면, 다른 세터들의 대우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개인의 계약이 포지션 전체의 처우를 견인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수치로 본 이번 시즌 김다인의 활약은 이 계약을 납득하게 만든다. 2025-2026시즌 정규리그 34경기에서 세트당 세트 성공 10.963개를 기록하며 부문 전체 2위에 올랐다. 3라운드 MVP를 차지했고, 시즌 베스트7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1-2022, 2022-2023, 2023-2024시즌에 이어 통산 네 번째 베스트7이다. 그리고 현대건설이 통합우승을 차지한 두 시즌, 코트 위에서 토스를 올린 건 언제나 김다인이었다.

FA 계약 이후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김다인의 발언은 흥미롭다. 통상 큰 계약을 마친 선수는 안도감을 드러내거나 팀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는 데서 멈춘다. 그런데 김다인은 달랐다. "불필요한 동작이 많아서 줄이고 싶다", "블로킹이 약점이지만 최소화하고 싶다", "수비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여자배구 최고 보수를 받는 선수가 자신의 약점을 꼽으며 겸손을 연기하는 게 아니다. 이 발언들은 현실 인식에 기반한 구체적인 자기진단이다. 172cm라는 신장은 세터 포지션에서 블로킹에 구조적 한계를 만든다. 해외 진출의 문턱도 신장 앞에서 현실적으로 좁아진다. 김다인은 그 한계를 숨기지 않는다. 대신 "토스를 더 정교하게 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늘려야 한다"는 방향 전환을 택했다.

이런 자세는 지금 현대건설이 마주한 팀 내 상황과도 맞물린다. 19시즌의 커리어를 마친 양효진이 은퇴했다. 현대건설은 배유나, 이한비, 아시아쿼터 메가, 외국인 선수 조던 윌슨을 새롭게 꾸렸다. 낯선 조합이다. 세터에게는 새 멤버들의 특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각자의 강점을 살리는 토스 배분 능력이 요구된다. 단순히 볼을 올리는 역할이 아니라, 팀 전체의 공격 설계를 맡는 역할이다.

강성형 감독은 김다인을 "명실상부 국내 최고 세터"라고 공식 평가했다. 구단은 그를 팀을 새롭게 이끌 '뉴 리더'로 공식화했다. 양효진 이후의 현대건설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기대한다는 선언이다.

팬 커뮤니티에서도 이번 잔류는 긍정적으로 읽혔다. 이적 가능성이 불거졌던 만큼, 오랜 팬들 사이에서는 안도와 기대가 교차했다. 현대건설이 다시 우승을 노리려면 세터의 안정이 선결 조건이라는 인식이 팬층에서도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무대도 김다인에게는 남은 과제다. 2025 VNL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 여자배구는 세계 무대에서 주춤한 상황이다. 차상현 감독 체제에서 아시아선수권은 올림픽 티켓까지 걸린 중요한 무대다. 김다인은 "쉽지 않겠지만 힘 닿는 데까지 도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 클럽과 국가대표, 두 트랙을 병행해야 하는 부담은 크지만, 그 무게를 짊어질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5억 4,000만 원짜리 세터가 돌아왔다. 그런데 정작 김다인이 강조하는 건 돈이 아니라 성장이다. "FA를 위해 여기까지 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결론이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되 그것을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는 세터. 현대건설의 새 시즌이, 그리고 김다인의 다음 챕터가 어떻게 쓰일지, 코트 위에서 확인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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